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6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6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남문 앞에서 MBC 노조원들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올해 초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5년 동안 이명박 정부가 처참하게 훼손시킨 공영방송의 공영성 회복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가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는지를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KBS, MBC, EBS 등 공영방송 3사의 봄 개편 과정을 보면 박근혜정부가 지난 5년의 이명박 정부처럼 공영방송을 정권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어 가는 듯하여 안타깝다.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나 압력에 의해서든 아니면 공영방송사 간부들이 알아서 새로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이든 이번 공영방송 3사의 봄 개편은 방송 제작자들의 제작 자율성을 철저히 무시한 채 방송사 간부들이 정권에 입맛에 맞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KBS는 이번 봄 개편에서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폐지하는 과정에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실무 제작진들과의 사전협의나 논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밀실에서 간부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제작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실무 제작진과의 상의도 없이 기존 진행자들을 일방적으로 하차시키고, 정치적으로 친정부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을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내정하는 등 정권의 눈치를 보는 밀실, 관제 개편을 단행해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의 공영성을 훼손하고 있다.

또 다른 공영방송인 MBC의 경우도 지난 5일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컬투의 베란다쇼>가 갑자기 결방되는 사태가 발생을 했는데, 그 이유가 해당 프로그램이 거짓말을 소재로 방송을 제작하면서 여당 인사와 보수 인사들의 거짓말을 사례로 들었다는 점을 교양제작국장이 문제 삼아 방송을 결방시켰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은 얼마든지 방송소재로 희화화되어 다루어질 수 있고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사실에 근거해 정치인들을 방송에서 희화화하는 것은 언론의 표현의 자유 보장과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의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방송국 간부가 지배권력을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방송을 결방시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EBS도 최근 오는 8월 방송 예정으로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 편을 제작 중이던 PD를 갑자기 타 부서로 인사발령을 내어 사실상 프로그램의 제작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대사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이 현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간부진이 프로그램의 제작에 압력을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송사 사장들의 과잉충성... '편성규약' 실효성 높여야

이처럼 이번 봄 개편 과정에서 공영방송사 간부들과 경영진들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과잉충성의 모습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과잉충성을 할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공영방송사 사장들의 거취문제가 정권의 의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시청자의 권리도, 방송의 공정성도, 그리고 방송의 독립성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영방송사 간부들과 경영진들이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정권에 과잉충성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방송 제작자들의 제작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방송 제작자들의 제작 자율성이 보장이 되지 않으면 모든 프로그램이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 특히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의 프로그램들은 제작진들이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영향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자율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유명무실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방송법상의 방송편성규약을 실효성 있는 규정으로 바꿔 방송사 간부들이 방송 제작종사자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관제편성을 하는 횡포를 근절시켜야 한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과 개편과정에서 단순히 취재 및 제작 종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되어있는 현행 방송법을 개정해, 방송 제작과 편성 과정에서 방송사 경영진과 취재 및 제작 종사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송제작∙편성위원회를 만들고 방송의 제작과 편성과정에서 이 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반드시 거치도록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방송의 제작과 편성이 소수의 간부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고 방송 제작종사자들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KBS 보도본부 국장과 부국장들이 편집회의에 참석한 KBS 기자협회장이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을 두고 "편집권 침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공영방송의 편집권은 소수 간부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공영방송의 편집권은 외부 또는 내부의 어떠한 권력과 압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사 내부에 감시와 견제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 있어야 하고, 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경영진과 방송 제작종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송제작∙편성위원회의 구성과 심의, 의결 의무화 조치이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PD저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 #제작자율성, #공영방송, #최진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