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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일 천안의료원장은 대학시절부터 '따뜻한 공공의료'를 꿈꿔왔다고 한다.
 허종일 천안의료원장은 대학시절부터 '따뜻한 공공의료'를 꿈꿔왔다고 한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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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일수록 의료혜택은 더욱 절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료는 국가와 자치단체 그리고 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이제 따뜻한 공공의료를 말할 차례다."

경남 진주의료원사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것은 어쩌면 더 건강하고 더 따뜻한 공공의료를 위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전국에는 34개 지방의료원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는 경영부실이다. 경영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민영의료에서 '돈벌이가 안된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의료서비스' 영역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충남에서는 4개의 의료원이 운영되고 있는데 작년 한해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천안의료원이 39억39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공주의료원 17억5100만 원, 홍성의료원 25억8000만원, 서산의료원 6억9200만 원이다.

이런 가운데 충남 천안의료원 허종일(45) 원장으로부터 공공의료 전반에 대한 사정을 들었다. 현재 천안의료원은 체불임금만도 23억 원에 이른다. 허종일 원장은 "불친절하고, 지저분하고,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며 환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던 천안의료원에 지난 2011년 4월 11일 취임했다.

"의료행위가 돈벌이?...얼마나 끔찍한 발상인가

"의료행위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환자가 죽어 가는데 환자 주머니의 돈부터 확인한다면 사람 목숨으로 장사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허종일 천안의료원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스스로 '따뜻한 공공의료'를 주장하며, 몸소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의료기관이나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는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으면 안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배우는 순간부터 의사는 이미 개인이 아닌 공인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직업윤리다.

허 원장이 천안의료원 원장직을 맡기 전까지 그는 태안보건의료원장으로 활동해 왔다. 허 원장은 태안군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그가 태안군을 떠난다고 했을 때 원장실을 찾아와 가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그가 태안의료원장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태안의료원은 병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못해 주민들에게 외면받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진료시설은 열악하고 입원실도 지저분해 진료의 질을 떨어뜨려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든 곳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의료원을 찾는 계층들은 대부분 노인, 다문화가족, 저소득층 등 가장 취약한 계층이었다.

당시 35살의 젊은 허종일 의사는 대학병원을 비롯한 근무여건이 월등한 곳에서 높은 보수와 안정적인 자리로 유혹했지만 과감하게 태안군에 남았다.

태안의료원을 맡은 그는 우선 수술실을 개선해 지역 최초로 복강경 수술법을 도입했다. 또 내시경·초음파 장비도 교체해 의료의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을 신축하고, 요양병동과 보호자 없는 병실, 호스피스병동, 열악한 시설 증·개축 등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민들에게 가장 신뢰받는 의료기관으로 변화시켰다.

'삼성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 피해주민 응급진료

허종일 원장은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의 시작부터 초기대응, 방제활동에 따른 주민영향, 기름의 성분과 독성, 건강영향조사 등을 총망라한 사례를 엮어 ‘재앙을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환경보건백서를 완성시켰다.
 허종일 원장은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의 시작부터 초기대응, 방제활동에 따른 주민영향, 기름의 성분과 독성, 건강영향조사 등을 총망라한 사례를 엮어 ‘재앙을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환경보건백서를 완성시켰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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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당시 허종일 원장은 피해지역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 임시 진료실을 운영했다. 당시 그는 사고 직후 피해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급성건강영향 조사와 유해화학물질 조사를 시작하면서 2008년 태안군보건의료원 산하에 태안환경보건센터를 국내 최초로 설립했다.

또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의 시작부터 초기대응, 방제활동에 따른 주민영향, 기름의 성분과 독성, 건강영향조사 등을 총망라한 사례를 엮어 '재앙을 이기는 사람들'이라는 환경보건 백서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그는 2001년 공중보건의 시절부터 지난 10여 년간 태안군민으로 살면서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지역의 환자들을 돌봐왔다. 태안지역 주민들은 그가 태안을 건강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의 직업윤리이면서 철학인 '따뜻한 공공의료'가 태안군에서는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또 그가 아니었다면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건과 피해상황을 다룬 환경보건백서는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허 원장은 충남도지사, 환경부장관,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그렇게 어려움을 딛고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은 태안의료원에서 허 원장은 2011년 4월 스스로 물러났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부채와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천안의료원이었다. 그리고 2년이 경과한 현재 그는 당시 태안군 사례를 천안의료원에서도 과감하게 도입해 의료환경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계 전반 곪은 부위 정확히 진단해야"

"그동안 쉬쉬했던 국내 의료계의 모든 문제점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쏟아져 나와야 한다. 개인 병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모두 말이다. 특히 병원마다 고가의 의료장비를 들여놓고 얼마나 환자들을 과잉진료하고, 과잉처방하고 있는지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또 진료비를 산정하는 방식부터 의료보험까지 과잉진료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정책적 한계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의료계 전반의 곪은 부위를 정확히 진단해야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종일 원장은 오히려 진주의료원사태를 계기로 국내 의료현실을 정확히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 의료시스템은 93% 이상을 민간의료에 맡기고, 병원마다 양심적인 진료가 이뤄지기만을 기대하는 구조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을 공공의료가 뒷받침한다. 

"우리나라는 의료행위 자체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사를 양성하는 대학조차 경쟁적으로 의사들을 돈벌이로 내몬다. 고가의 의료장비를 들여놓고 환자나 환자 가족들의 나약한 마음을 부추겨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게 만드는 의사를 능력있는 의사로 대우한다. 이러한 틀 속에서 양심적인 진료를 하는 의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천안의료원 경영난?... "이미 극복단계"

따뜻한 공공의료를 추구하는 천안의료원은 그동안 엄두도 못 내던 암수술은 물론 항암치료까지 실시한다. 또 경영여건도 크게 개선되고 있어 머지않아 직원들의 체불임금도 정산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뜻한 공공의료를 추구하는 천안의료원은 그동안 엄두도 못 내던 암수술은 물론 항암치료까지 실시한다. 또 경영여건도 크게 개선되고 있어 머지않아 직원들의 체불임금도 정산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충남시사 이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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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료원은 지난해 39억3900만 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충남도의회 몇몇 의원들은 경영난을 이유로 천안의료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심지어 공공의료 무용론을 제기하는 도의원까지 있다.

민주통합당 소속 윤미숙 의원은 천안·홍성·서산·공주의료원의 통합만이 만성적자를 타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소속 김득응·유병국 의원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충남도에 주문했다.

그러나 천안의료원의 경영적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39억3900만 원 중 26억원은 매년 동일하게 발생하는 시설물에 대한 감가상각비다. 진료를 통한 적자 금액은 13억3900만 원이다. 최근에는 의료환경을 개선하며 매월 적자 폭도 꾸준히 줄고 있다.

그동안 지방의료원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암수술은 물론 항암치료까지 실시하고 있다. 또 공공의료에 대해 뜻을 함께하는 의사들을 초빙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역 주민들의 의식도 바뀌면서 일반 외래환자가 늘어 경영여건도 크게 개선되고있다. 이 추세라면 직원들의 체불임금도 조금씩 정산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공공의료에 대한 의식은 무지에 가까웠다. 체불임금 때문에 고통 받는 직원들을 보다 못한 허종일 원장은 자신의 아파트를 담보로 1억5000만 원을 대출받아 지급하기도 했다. 또 봉명동에서 삼룡동으로 이전할 당시 이전비용과 약품비를 제때 지원받지 못해 은행대출을 이용했다가 부정과 비리로 몰려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허종일 원장을 비롯한 천안의료원 직원들은 매달 하루씩 휴일을 반납하고 도시빈민 의료봉사를 10개월 째 실시하고 있다. 또 외국인 근로자를 비롯한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만성질환관리 등을 실시하고 있다.

허종일 원장은 "국민건강을 국가가 돌보지 않는다면 의료행위를 상업화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과잉진료와 과잉처방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양심적인 의사들에게 양심적인 의료활동을 보장하고, 국민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따뜻한 공공의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시사>와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허종일, #천안의료원, #공공의료, #진주의료원, #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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