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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의 그리동화 작가 이희빈이 한 카페 앞에서 앙증맞게 포즈를 잡았다. 한 눈에 봐도 아주 소녀 같은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 이희빈 로즈마리의 그리동화 작가 이희빈이 한 카페 앞에서 앙증맞게 포즈를 잡았다. 한 눈에 봐도 아주 소녀 같은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 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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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우리 집으로 배달되는 안성의료생협 소식지. 그 속엔 뻔한(?) 소식들이 있다. 일테면 기관의 소식들이다. 그 속에서 자꾸만 눈에 밟히는 한 코너 '로즈마리의 그림동화'. 로즈마리,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이런 궁금증이 지난 27일, 그녀를 만나게 했다.

"언니는 눈 뜨고 코 베이기 좋은 사람"

그녀와의 전화 통화부터 독특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나이 54세(안성의료생협 소식지에 명시되어 있음). 하지만 전화 목소리는11세 소녀 목소리, 바로 그거였다. 그녀가 사는 집 근처 커피숍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커피보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그녀. 그녀와 몇 마디를 나누니 그녀의 나이는 더 오리무중이다.

이런 그녀의 모습 탓에 주위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했다. "언니, 정신 차려. 요즘 세상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가. 언니는 코 베이기 딱 좋아. 언닌 착각나라 착각공주야"라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녀는 한 없이 슬퍼진다고 했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이 두렵기만 했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계기도 독특했다. 18년 전, 그녀가 아끼는 애완견이 죽었다. 그 죽음 앞에서 한 없이 울었단다. 마치 벼랑 끝에서 자신이 떨어질 거 같은 느낌이었다고. (그때 상황을 말하면서 바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살려보려고 미친 듯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그 그림을 그리고 한참을 울다보니 치유가 되더란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런 그녀의 그림을 "웬 초딩 그림?"이냐고 반응했다. 하지만, 안성의료생협 소식지에 게재 횟수가 거듭될 수록 "그녀를 만나고 싶다, 얼굴이 보고 싶다, 이렇게 좋은 글 그림을 누가 하는 거냐"고 반응해왔단다.
▲ 작품 1 사람들은 처음엔 이런 그녀의 그림을 "웬 초딩 그림?"이냐고 반응했다. 하지만, 안성의료생협 소식지에 게재 횟수가 거듭될 수록 "그녀를 만나고 싶다, 얼굴이 보고 싶다, 이렇게 좋은 글 그림을 누가 하는 거냐"고 반응해왔단다.
ⓒ 이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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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기처럼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 전엔 '미술대를 나왔으니 그림을 그려 어떻게 먹고 살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젠 그림이 '자신과의 대화상대'라는 것.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녀는 그림을 그려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림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정화해간다고 했다.

그녀의 '글 그림'은 이런 거였다

"'난 11시가 좋아요'란 그림을 그렸어요. 9시는 출근 시간이라 싫고, 10시는 여러 가지 기념식을 시작하는 시간이라 싫고, 12시는 점심 먹는다고 떠들썩해서 싫고, 11시는 여유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하루 종일 11시만 그려진 바늘시계를 그렸죠."

이게 그녀의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 '잊게 되겠지'를 볼까. 한 마리의 새가 작은 나뭇가지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장면이다. '아프고 슬픈 그때 기억을 언젠가 잊게 되겠지'란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나면 후련하단다.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그 상황이 불현듯 한 장면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예컨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하늘에서 바늘 비가 막 내려오고, 자신은 그걸 맞지 않으려고 한 곳으로 움츠러드는 장면이 떠오른다고. 그게 글이 되고 그림이 된다는 것. 그녀는 일상에서 그것을 길어 올린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상에서 길어 올림을 당한다고 해야 될까.

그녀의 그림은 이런 스타일이다. 어쩌면 초등학생이 낙서한 듯한 그림이지만, 그 속에 생각해볼만한,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의 거리들이 담겨져 있다. 글과 그림이 조화되어 만들어낸 그녀만의 묘한 매력이 묻어 나온다.
▲ 작품 2 그녀의 그림은 이런 스타일이다. 어쩌면 초등학생이 낙서한 듯한 그림이지만, 그 속에 생각해볼만한,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의 거리들이 담겨져 있다. 글과 그림이 조화되어 만들어낸 그녀만의 묘한 매력이 묻어 나온다.
ⓒ 이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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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림에 적혀있는 글이 좋다. 그림만 있으면 유치하게 볼 수도 있고, 글만 있으면 '교장의 훈시'쯤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이 만나 조화를 이루니,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듯 보인다. '이희빈'만이 할 수 있는, 아주 묘한 구석이 있는 '글그림'으로 탄생한다.

'착각나라 착각공주', 피고 보니 로즈마리

2년 전부터 안성의료생협 소식지에 월간으로 내기 시작한 '글 그림'. 아주 조심스레 세상에 내놓은 자신의 작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정신세계다. 처음에 사람들의 반응은 '웬 초딩 그림?'.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아하 그랬구나'로 동감한단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요즘 그림 잘 보고 있어요"란다. 한 아주머니가 "그거 정말 좋던 데요"란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사진이 게재됐다. 독자들의 요청을 반영한 웹진에서 그녀의 코너를 귀퉁이에서 한 면 가까운 크기로 바꿨다.

그녀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이게 웬일이지, 웬일이야"를 연발했다. 전혀 상상도 못한 반응이었단다. 반응 좋은 사람들('팬'이라고 해야겠지)을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순간만큼은 '장동건, 김태희'가 부럽지 않은 듯 보였다. 한 없이 추락하던 그녀의 세계가 요즘은 세상 밖으로 나와 악수하고 있다. 그동안 숨겨졌던 그녀의 세상이 로즈마리로 피고 있다. 

여기서 잠깐. 참고로 그녀의 닉네임 '로즈마리'는 이런 꽃이다. 로즈마리에서 얻은 벌꿀은 프랑스의 특산품으로 최고의 꿀로  인정받고 있다. 강한 향기와 살균력까지 가지고 있어 서양에서는 집안에서 살충제를 겸한 방향제로 사용한다. 각종 요리에도 많이 첨가되며, 특히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 요리에 로즈마리를 첨가하여 구우면 고기 냄새를 없애주고,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빈혈, 혈중콜레스테롤이 높은 경우, 저혈압, 변비, 불면증, 방광염 등의 치료요법을 위한 약초로도 사용된다.

어쩌면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메시지이지만, 그녀의 손에서 나오면 한편의 심오한 철학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단순한, 하지만 심오한 매력에 빠져든다.
▲ 작품 3 어쩌면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메시지이지만, 그녀의 손에서 나오면 한편의 심오한 철학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단순한, 하지만 심오한 매력에 빠져든다.
ⓒ 이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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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즘 너무 어른이 되어 버린 세상, 어른들이 너무 많아 상대방을 아이 취급하는 세상이다. '이희빈'의 '착각나라'가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닮아 있다고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태그:#그림동화, #이희빈, #안성의료생협, #작가,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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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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