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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구조물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다. 실체적으로는 우리가 먹는 밥에도, 잠을 자는 집에도, 타고 출근하는 지하철에도 모두 노동자의 땀이 배어 있다. 노동의 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추상적으로 확장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다. 경제성장도, 재벌 대기업도, 그리고 민주 정부도 모두 노동에 기반을 두고 서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노동 없는 경제', '노동 없는 시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위험한 질주가 계속된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흔들리면 그 위에 쌓여 있는 구조물들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최장집 교수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은 바로 이 위험한 질주에 대한 경고다. 노동 현장을 직접 들여다본 저자는 '우리가 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면 이럴 수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노동의 시민권이 억압되거나 배제되지 않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동체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생각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노동의 시민권이 노사 관계와 정당 체제에서 취약해질 때 그것의 부정적 효과는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결속을 해체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노동이 배제되면 노동자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주요 이익 모두가 배제된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여기에 있다.(저자의 서문 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곁표지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곁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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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수동 혁명', 그 악순환의 고리

사회를 위협하는 현안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사안의 범위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거나, 시민들 개개인이 스스로 올바른 이해에 근거해 사회의 중요한 쟁점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중대 문제는 민주주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

정치권에서의 정당 간 경쟁이 아무리 격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아무리 높고, 시민들의 참여가 아무리 열성적이라 하더라도 사회경제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정치 사안에서 배제되고 쟁점으로 떠오르지 못할 때,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의 내용은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로부터 멀어진다.(119쪽)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다면, 적어도 이상적 기준에서만큼은 정치 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입각해 모든 구성원들의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대표되고 조직됨으로써 그들의 요구가 정치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실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책에서 저자가 들여다본 이들,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하층들의 삶 속에서 당연한 권리들은 고된 하루의 무게에 짓눌려 흩날려버리고 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 노동자, 봉제 공장 노동자, 기초 생활 보장 수급자, 이주 노동자, 재래시장 상인들, 비정규직, 신용 불량자, 이들은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가 표출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것을 상상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시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시장으로부터 소외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적극성을 가지기보다는 정치 참여로부터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소외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정치과정이 곧 경제력의 크기 내지 시장의 불평등성을 그대로 반영하여 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거대 자본이나 사회경제적으로 강한 힘들이 정치 현장에서 일방적으로 대표되고 압도적이었던 결과, 반대편에 있는 서민과 약자들은 정책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갑자기 여당이나 야당이나 모두가 한 목소리로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복지국가를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자율적 결사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소외되고 배제된 세력들을 대신해 정치권이 나서준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온정주의적 권위주의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개개인의 자율성과 평등한 시민권에 기초하는 민주주의의 이상과는 배치되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사회의 저항에 위기감을 느낀 통치 세력들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개혁에 나서는, 이른바 '수동 혁명'이라 지칭했다. 그리고 그 악순환을 지켜보는 것이 몹시 괴로운 일이라 했다. '사회적 힘의 관계를 더 넓게 다원화하는 작업 없이, 정당들이나 정치인들이 무정형의 여론 매체 위를 둥둥 떠다니며 공허한 개혁 언술을 남발하는 것으로 과연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기면서 말이다.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민주주의가 사회 통합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으로 전락하게 되고, 이는 사회 공동체의 해체와 분열로 이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결과가 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다.

이를 치유하고 방지하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작동시켜야 한다. 제도나 절차로서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아닌, 역동성을 뿜어내며 실제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체제의 중심에 서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그렇게 힘든 투쟁을 벌였던 이유도 그것이 아닌가. 경제나 시장의 영역에서 비록 약자지만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방법을 통해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한 목소리를 낸다면 실현되는 체제가 바로 역동적인 민주주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이들의 목소리를 투영할 대상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이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외부로 이슈화시키지 못하면, 개혁적 대안이 그 내부에서 소멸하고 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간 야당과 진보 세력들은 격렬한 언사를 동원해 집권 세력과 보수 세력을 공격하는 데만 혈안이었다. 마치 반대편 세력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비난하느냐가 진보의 척도인 양.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정부를 대신해 집권하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에 맞게 조직적 능력을 최대화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시민들로부터 유능함을 인정받고 신뢰를 얻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공익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선거 전략으로서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147쪽)

추상적 가치와 명분의 동원에 의존하는 다툼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올 뿐이다. 정치 현장에서 잘못된 쟁점과 중요하지 않은 의제에 열정을 쏟는다면, 그 반대급부로 정작 중요한 이슈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책은 야당과 진보세력에게 묻고 있다. 아니,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요구하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를 대표하는가? 그에 기초해 어떤 한국 경제, 어떤 한국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지난 실패를 딛고, 노동 문제를 포함해 사회경제적 사안들을 좀 더 잘 다루고 유능하게 집행할 대안적 정부가 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에 산적한 노동 현안들을 두고 또 다시 맞는 노동절에, 그들은 이 물음 앞에서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l 최장집 지음 l 폴리테이아 펴냄 l 2012.10 l 10,000원
이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지음, 후마니타스(2013)


태그:#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폴리테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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