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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망이 뜨거웠던 70~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은 '민중 속으로'란 기치를 내걸고 공장으로, 농촌으로 이른 바 현장 투신이라는 것을 했다. 그들은 기름밥 묻는 작업복을 입고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려 했고, 수입 개방의 파고가 높았던 농촌에서 농민들과 막걸리 잔을 나눴다. 그리고 가난하고 못 배운 이웃을 위해 야학을 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역, 윤상원도 야학 출신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극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극적으로 동시 달성했다. 세계사 초유의 일이다. 많은 대학생들은 노동 현장을 떠났고, 야학도 이젠 잊혀졌다. 더 이상 문맹의 이웃이 없는 것처럼. 그러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중 중졸 이하의 학력 소유자는 25%에 달한다.

인구 12만 명의 전북의 작은 도시 정읍에는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못한 할머니들을 위해, 중도에 탈락한 학생들을 위해 29년째 운영되고 있는 야학교가 있다. 이 학교 40대 여성 교장은 대학 4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19년째 이 학교서 자원활동 교사로 일하고 있다. 물론 생업은 따로 있다.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이 학교 교장인 이수진(40)씨다.

1남 3녀의 엄마이기도 한 이수진씨는 대학 4학년 때인 지난 1994년 정읍 소재 울림야학교에서 교사로 자원 활동을 시작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계기였다고. 그녀는 울림야학교 자원봉사를 위해 날마다 밤이슬을 밟았고, 부모님은 연애하러 다니는 줄 오해했단다. 정읍이 고향인 그녀는 이곳에서 결혼했고, 야학 교사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남편과 함께 자영업을 하고 있다. 애초 교장이었던 최동렬씨가 생업 때문에 바빠지면서 올해부터 그녀는 교장이 됐다.

가난도, 배움도 대물림된다... 한 명 한 명, 사연이 많다

정읍시 중심가에 위치한 울림야학교는 1984년 정읍에서 익산 원광대로 기차 통학했던 대학생 20명이 설립했다. 건물은 6.10만세 사건으로 복역했던 고 최태환 옹의 자녀들이 기증했다.
▲ 설립 29년을 맞는 정읍 울림야학교 정읍시 중심가에 위치한 울림야학교는 1984년 정읍에서 익산 원광대로 기차 통학했던 대학생 20명이 설립했다. 건물은 6.10만세 사건으로 복역했던 고 최태환 옹의 자녀들이 기증했다.
ⓒ 장남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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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현대식 2층 건물의 울림야학교는 고 최태환 옹의 생가를 개보수한 것으로, 6·10만세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자녀들이 기증했다.

울림야학교는 1984년 익산 원광대학교로 기차 통학을 했던 정읍지역 대학생 20여 명이 설립했다. 그동안 487명의 학생이 졸업했고, 자원활동을 한 교사들도 270명에 달한다. 현 이석문 정읍교육장도 평교사 시절 이곳에서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대중 현 전북도의원도 이곳에서 자원봉사 교사로 일했다.

"할머니 학생들이 아침 밥숟가락만 빼면 공부하고 싶다고 9시부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대부분 정읍시 외곽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죠."

이수진 교장의 말이다. 정읍시가 양성한 문해교육사들이 이들을 가르친다. 검정고시반은 현직 교사·직장인·정년 퇴직자 등 다양하다. 이들 교사는 모두 20명. 

한글반과 검정고시반으로 운영되는 울림야학교는 오전 10시부터 2시간 개설되는 한글반에는 15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50~80대 할머니들이 많다. 오후 7시부터 운영되는 검정고시반엔 27명이 초등·중등·고등반으로 나눠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학생 구성은 50~70대를 비롯, 중도탈락한 학생들, 외국인 중도입국자녀 등 다양하다. 검정고시시험이 과목별로 진행돼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일주일에 2시간씩 한두 차례 가르친다.

"지난해 60대 부부와 그 여동생이 입학했어요. 고아원에서 자란 남편은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었죠. 아내는 동생들이 많아 학교를 못 다녔고. 남편은 넉달 만에 초등 검정고시시험에 합격하더니 올해 4월 중학교를 합격했어요. 여동생은 고등학교 시험도 합격했죠. 한 명, 한 명이 사연이 많아요."

대학 4학년때인 1994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했던 이수진 씨는 지난해부터 교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정읍이 고향이다.
▲ 이수진 울림야학교 교장 대학 4학년때인 1994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했던 이수진 씨는 지난해부터 교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정읍이 고향이다.
ⓒ 장남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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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교장은 "야학교 교사를 하다 보니 가난도, 배움도 대물림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글을 몰라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마다 통장과 도장을 내줬더니 예금을 몽땅 빼갔더라는 할아버지. 79세 할머니는 못 배운 것이 한이 돼 할아버지에게 '나 죽거들랑 관에 연필과 공책을 넣어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단다. 그 할머니가 올해 8월 초등 검정고시시험에 도전한다. 

중학교 졸업장이 없어 막노동을 했던 39세 아버지 학생은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시험을 합격한 후 대학 건축학과 졸업, 지금은 건축기사로 일하고 있다. 울림야학교 최고의 성공 스토리는 학교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 30대 여성이다. 이곳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한 그녀는 현재 정읍 소재 공립학교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여성도 울림야학교에 입학, 검정고시를 차례로 합격한 후 사회복지학과를 졸업,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정읍은 지역이 좁아서 한 집 건너면 알아요. 입학 문의하러 왔다가 아는 얼굴을 보고 발길을 돌리기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자원봉사 교사들은 학생들이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아는 척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에요."

'이번만 하자'던 게 벌써 19년째

한글과 초중등 검정고시시험을 보려는, 울림야학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담당자가 전라북도 인구 중 중졸 이하 학력이 25%, 정읍은 37%에 달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수진 교장은 "정확한 수치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고령 인구가 많은 정읍의 현실을 감안할 경우, 상당한 규모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정읍시 시민창안대회에 응모해 선정됐다"며 "300만 원을 지원받아 정읍시 칠보면과 입암면 주민을 대상으로 정확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월부터 이 지역에서 찾아가는 야학교를 연다고.   

이수진 교장은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때때로 있다"며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버스가 오면 모조건 뛴다"고 말했다. 19년째 이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며 "'이번만 하자, 이번만 하자' 했던 것이 오늘까지 온 것 같다"고 웃었다.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울림야학교가 마지막 기회인 까닭에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태그:#야학,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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