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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종편 출연 금지' 방침을 공식 해제했다. 대선 직후, 민주당 내부에서는 '종편 때문에 선거에 패했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냉소와 무시, 그리고 간과로 일관해오던 종편 대응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제는 종편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 개국 1년 반, 종편은 어디까지 왔을까. 데이터 분석과 취재를 바탕으로 '종편의 민낯'을 입체적으로 해부해본다.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진 종편의 '정상화' 방안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지난 4월 30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TV 앞에 앉았습니다. 회사 출근 안 하냐고요? 이날은 '종편의 민낯' 기획의 일환으로 '체험! 종편 하루 종일 보기'를 실행하는 날이었습니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오직 종합편성채널(종편)만 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TV 귀신'이었습니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예능, '오빠'들이 나오는 가요프로도 빠질 수 없죠. 수능시험을 보던 날 새벽에도 멍한 눈으로 TV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아빠에게 한 소리 들었던 기억도 나네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저와 함께하고 있는 안경은 TV 귀신의 '훈장'입니다.

그런 제게 2011년 12월, 종편 개국 이후 '종편을 보느냐, 마느냐'는 나름 큰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4개의 채널이 생긴다는 것은 'TV 덕후'인 제게 시청권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종편의 모태가 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과정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기에 마음 편히 종편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몇 개의 드라마는 즐겨봤지만요. 이날 만큼은 마음 푹 놓고, 종편을 시청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상양아치, 대가리가 안 여물어" 

'또 만났네, 또 만났어~'. 4월 30일, 채널 A이어 MBN에도 출연한 탈북자.
 '또 만났네, 또 만났어~'. 4월 30일, 채널 A이어 MBN에도 출연한 탈북자.
ⓒ 채널A,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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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TV를 틀었습니다. MBN, 채널A, TV조선을 채널을 돌리며 보는데 모두 뉴스를 하고 있네요. MBN과 채널A는 '특보'까지 달았습니다. 개성공단 사태가 초미의 관심사긴 하죠.

그럼 JTBC는 어떨까요? 명품 가방 '진품' '가품'을 가리는 내용의 예능 프로가 재방송되고 있네요. 명품 감정사가 나와서 진품인지 가품인지 감정을 하고, '짝퉁' 판정이 내려지면 '작두맨'이 나타나서 작두질로 가방을 산산조각 냅니다. "가품을 근절해야 한다"면서요. 가수 현미가 행사비 대신 받은 명품 가방이 사실은 짝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하고 있네요.

오전 10시, 채널을 돌렸더니 또 뉴스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채널A와 TV조선은 둘 다 '신문으로 보는 뉴스' 형식의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채널A는 앵커들이 앉아서 진행하고 TV조선은 사회자 한 명이 일어서서 진행한다는 차이. 주제는 또 다시 개성공단입니다.

MC인 문갑식 <조선일보> 기자가 <한겨레> 신문 기사를 가리키며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문갑식 :
"'단전 조처 땐 개성시민 식수 끊겨... 북한 더 자극'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배진영 : "개성공단 전기 끊긴다고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일 없다. 이전에 전기보다 식량이 끊겨도 가만히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체제다.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도 지도자들이 신경 쓰지도 않을 것이다."
문갑식 :
"양아치 정권이네요."
배진영 : "양아치다. 상양아치다."
(중략)
배진영 : "(북한지도부는) 전략적인 사고방식이 없다. 한마디로 대가리가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갑식 : "'대가리'라는 발언,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 내일 아침에 독극물 배달되는 것 아닌가."
배진영 : "어우, 저보다 더 한 사람 많다. 나는 온건파다." 

방송에서 '대가리가 여물지 않았다'는 표현을 듣게 되니 당황스럽네요(이렇게 말하면 또 '종북세력'이라고 하려나요?). 채널A에서는 전문가들을 불러서 해설을 듣고 있습니다. 똑같은 포맷, 비슷한 주제이긴 하지만 자극적인 발언 때문인지, 채널A보다는 TV조선이 좀 더 귀에 잘 들어오네요. 나름의 전략인가 봅니다.

MBN은 또 뉴스 특보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가 진행하는 정규편성 프로그램인데, 특보 형식으로 하나봅니다. 역시나 각 뉴스마다 전문가들을 불러서 해설을 듣는 콘셉트입니다. 주요현안은 개성공단 사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환, 일본 아베정부 극우화 등입니다. JTBC는 드라마 <가시꽃> 연속 재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전문가 우르르... 너도나도 '집단 토크쇼'

오전 11시가 지나자, 다른 방송사들도 재방송을 내보냅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신경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2월 개국 이후부터 2013년 2월까지 종편의 재방비율은 절반이 넘는 51.3%로 나타났습니다. JTBC가 가장 높은 57.0%, TV조선 54.5%, 채널A 52.6%, MBN이 그나마 낮은 41.1%입니다.

TV조선에서는 <홍혜걸의 닥터콘서트>, 채널A에서는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나오고 있네요. 채널A 대표프로그램인 <박종진의 쾌도난마>에는 이날 김만흠 한국 정치아카데미 원장,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 연구위원, 박상헌 공간과 미디어 연구소장,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패널로 나왔습니다.

종편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또 다른 특징은 MC가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날 박종진 앵커는 '개성 공단이 정상화될 것이다' '북한이 제대로 훈육이 되도록 단전단수 해야한다' '안철수 의원 주식, 백지 신탁해야 한다'는 질문에 패널들과 함께 O·X를 들었습니다. 박 앵커가 "조국 교수가 안철수 의원을 메기에 비유했기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자연스럽게 미꾸라지가 된다"고 말하자, 김만흠 원장은 "그건 아니다, 미꾸라지라고 하지 마라"고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종편에서는 '인포테인먼트'를 표방하는 집단토크쇼가 범람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JTBC <닥터의 승부>, TV조선 <속사정>, MBN <동치미>
 종편에서는 '인포테인먼트'를 표방하는 집단토크쇼가 범람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JTBC <닥터의 승부>, TV조선 <속사정>, MBN <동치미>
ⓒ JTBC, TV조선, 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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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50분, MBN도 재방송을 시작하네요. <고수의 비법 황금알>은 <속풀이쇼 동치미>와 함께 MBN의 대표적인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입니다.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는 집단 토크쇼인데요. 최고 시청률도 5% 가까이 나와,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꼽힙니다. 

MBN의 소개에 따르면, '황당하고 궁금한 알짜이야기'라는 뜻의 '황금알'은 '알아두면 도움이 될 알짜배기 정보를 전달하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요.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주제로 고향 이야기를 나누는 게 도대체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건지 아리송하네요.

이날 방송에서는 '고향이 그리운 이유는 어머니 때문이다' '최악의 결혼상대는 경상도 남자 서울여자다' 등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고부갈등 처방전' '술 공화국 음주병법' 등이 주제였다고 하네요. 연예인들이 우르르 나와서 수다를 떠는 것은 <세바퀴>와 비슷하고,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 한의사·요리연구가·변호사 등 전문 직종을 섞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은 우후죽순으로 범람하고 있습니다. MBN에서만 <황금알> <엄지의 제왕> <신세계> <동치미> <아궁이> 5개가 방영되고 있고요("MBN은 보도전문채널에서 종합편성채널로 전환한 게 아니라, 토크쇼 채널로 전환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JTBC에서는 <닥터의 승부> <신의 한수>, 채널A에서는 <웰컴투 시월드> <웰컴투 돈월드>, TV조선에서는 <속사정> <모녀기타>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일부 프로그램은 연예인, 전문가에 일반인을 더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다보니 신난 건 패널로 나오는 연예인들입니다. 겹치기 출연은 예사입니다. 이날만 하더라도 똑같은 연예인들을 각기 다른 채널에서 몇 번이나 봤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스튜디오물이 제작비가 적게 든다고 하더라도, 연예인들 출연료만 해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JTBC를 틀었더니 이번에는 예능 재방송을 하고 있네요.

연이은 특보, 종편의 극진한 '북한사랑'... '북한전문가' 겹치기 빼도 40명 출연

특보와 재방송으로 점철된 오전이 끝났습니다. 여기에서 지치면 안 됩니다. 오후도 상황은 다르지 않거든요. 배가 출출하네요. 일단 밖에 나가서 먹거리를 사왔습니다.

TV조선은 또 다시 뉴스 특보입니다. 오전 9시 뉴스를 진행했던 엄성섭 앵커가 낮 12시 뉴스도 진행하네요. 채널A라고 질쏘냐. 또 뉴스 특보입니다. 개성공단 사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습니다. 포맷이라도 좀 다르면 모를까. 진행자만 바뀔 뿐, 전문가들의 비슷한 해설이 무한 반복됩니다.

하나, 하나 세어보니 이날 종편 4사에 나온 '북한 전문가'만 무려 40여 명입니다. 겹치기 출연은 뺀 숫자입니다. 통일외교분야를 오래 취재해온 한 종편사 기자가 "나도 모르는 북한전문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전문가 강국'이었습니다.  이처럼 보도프로그램이 계속되지만, 아이템은 북한 그리고 정치 뉴스에 한정돼 있습니다. 사회 뉴스는 단신으로 처리합니다.

종편의 '북한 사랑'은 '종북 저격수'까지 불러냈습니다. 오후 2시 40분,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에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이 나왔습니다.

'종북 저격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그리고 한 남자.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의 한 장면.
 '종북 저격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 그리고 한 남자.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의 한 장면.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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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갑 :
"말은 종북이라지만 이 사람들은 간첩들이다. 우리민족끼리, 거기 가입한 사람이 한 1만여 명, 이 사람들은 전부다 북한 측에 김정은이에게 충성맹세한 사람들이다. 이만큼 종북세력이 많이 있다. 종북은 하나의 쓰레기다. 대응할 가치도 없다. 전략이라면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밖에 없다."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명단의 신빙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람들 전부다 북한 측에 김정은이에게 충성맹세한 사람들"이라는 이러한 주장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진행자는 이를 바로잡아주지 않습니다. 사실 관계가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만 내보내는 방송을 언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날 서 본부장은 "지금 민주당에도 종북세력이 있다, 새누리당에도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개성공단을 이야기할 때, JTBC는 묵묵히 재방송을 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오전 11시 40분 뉴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방송으로 채웠습니다. JTBC의 'J'가 알고 보니 '재방'의 약자였나 봅니다. 오후 4시 30분에 방송된 <임백천, 임윤선의 뉴스콘서트>에서는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을 초대 손님으로 불러 '민주당 우향후 논란'을 다뤘습니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본회의 '땡땡이'까지 쳤다고 하네요. 

'TV 귀신', 뻗어버리다

오전 9시부터, 12시간 넘게 종편만 보고 있으니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TV를 많이 봐서요? 저, TV 귀신입니다.

종편이 4개 채널이나 있지만 차별화가 안 됩니다. '종합편성채널'이라고 하지만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곳은 JTBC 단 한 곳뿐입니다.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100억 원 넘게 드는 제작비 때문입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종편이 택한 것이 스튜디오 제작물입니다. 스튜디오 제작물은 둘로 나뉩니다. 뉴스와 집단토크쇼. 그런데 이들 프로그램에 나오는 전문가·연예인들이 겹치다보니 어느 방송이 어느 방송인지 헷갈립니다.

TV를 좋아하는 저는 종편이 도입되면서 볼 만한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물론,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청자들에게는 종편이 반가운 존재일 것입니다. 한 독자는 '종편만큼 안보와 관련해 심층적인 분석하는 방송은 없다'고 하더군요. 이 '심층성'이 '다양성'과 함께 갈 수는 없는 걸까요? 지금 종편에게는 콘텐츠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보입니다.


태그:#종편, #종편의 민낯, #종합편성채널,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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