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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를 앞둔 아현동 85번지. 아현동 85번지의 재개발 구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웃한 한 동짜리 서서울 아파트는 거대한 성처럼 보였습니다. 방수포로 덮인 낮은 지붕에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버젓한 아파트는 필생의 '꿈'이었습니다.
 철거를 앞둔 아현동 85번지. 아현동 85번지의 재개발 구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웃한 한 동짜리 서서울 아파트는 거대한 성처럼 보였습니다. 방수포로 덮인 낮은 지붕에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버젓한 아파트는 필생의 '꿈'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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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현동 85번지를 기억하세요?"

2년 전 걸려온 수화기 너머 한 부인의 목소리는 저의 정신을 곧추세웠습니다.  

"그럼요!"  

저는 서둘러 대답하면서 그 다음 질문에 귀를 쫑긋했습니다.  

"그럼, 혹시 이나리 아빠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취조에 순응하는 피고인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마음을 풀지 않은 채 답했습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나리네 가족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저를 모르실 겁니다.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까요. 나리엄마는 저를 기억하실 거예요."  

그 분은 아현동 85번지에서 저희 가족과 1990년대를 함께 살던 분으로, 모티프원의 블로그에서 제 첫째딸 나리에 관한 글을 읽고 우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신 것이었습니다.

#2  

아현동 85번지. 저희 가족은 그곳에서 8년 정도 살았습니다. 막내 영대를 그곳에서 낳았고 첫째 나리와 둘째 주리의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유난히 검은 머릿결이 매력적이던 80년대 아내의 흑단 같은 머리칼은 이제 온통 흰머리로 바뀌었습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유난히 검은 머릿결이 매력적이던 80년대 아내의 흑단 같은 머리칼은 이제 온통 흰머리로 바뀌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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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에게 둘러싸인 채 외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고개를 잘 들지도 못했던 막내아들 영대가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조카들에게 둘러싸인 채 외할머니의 무릎 위에서 고개를 잘 들지도 못했던 막내아들 영대가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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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삼거리를 지나자마자 충정로는 이대방향의 신촌로와 여의도방향의 마포대로로 갈라지게 됩니다. 바로 그 삼거리의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아현중학교와 마포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아현1-3주택재개발지역'입니다.   

마포대로 밑으로 지하철 5호선이 만들어졌고 아현동 85번지는 지금의 5호선 애오개역에서 지척입니다. 애오개는 아기고개, 아이고개라는 뜻으로 한자명으로는 아현(兒峴) 혹은 아현(阿峴)으로 표기합니다.

이 동네는 서울시청과 불과 2.5km에 불과한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마치 반세기정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모습으로 박제된, 가장 낙후된 모습을 하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주로 한국전쟁전후에 허술하게 지어진 집들이 큰 보수 없이 비가 새는 지붕만을 방수천막으로 덮고 또 덮어서 견뎌온 곳으로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집이 허물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해야하는 모습이었지요.

아현동 85번지 집들의 지붕은 몇 겹의 비닐과 방수포를 쓰고 있습니다. 햇빛에 바래고 삭아서 찢어진 방수포는 다시 여름의 장마가 오기 전에 새것으로 바꿔야했습니다.
 아현동 85번지 집들의 지붕은 몇 겹의 비닐과 방수포를 쓰고 있습니다. 햇빛에 바래고 삭아서 찢어진 방수포는 다시 여름의 장마가 오기 전에 새것으로 바꿔야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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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 주인이 직접 사는 경우는 드물었고 단지 재개발의 수혜를 노린 사람들이 소유하고 실거주자들은 싼 셋방을 찾아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3

결혼 후 이미 10여 차례의 이사로 지친 아내는 몇 백만 원의 전세금으로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다가 이곳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찾아놓은 이곳을 처음 방문했다가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은 낮아서 처마가 키 작은 제 머리에 닿을 지경이었고 골목은 좁아서 두 사람이 몸을 틀지 않고는 비켜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 살 결심을 한 아내의 뜻에 순순히 따랐습니다. 이곳 외에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이 서울 어디에도 없었기도 하지만, 무척 노후한 집들이었으므로 곧 재개발이 되지 않고는 더 이상 지탱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작은 방이 3개나 되어 제 서재를 별도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뿌리칠 수 없는 또다른 유혹이기도 했습니다. 전세금에 대출을 얹어 생애 최초로 부동산의 소유권자가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딱 5년만 살고 재개발 여부와 관계없이 그곳을 떠나자고 약속했습니다. 여름이면 비가 새서 눅눅하고, 틈사이로 바람이 들어올 만큼 금이 간 건물 벽에서 연탄가스 중독의 위험을 무릅쓴 5년이 지났지만 재개발은 논의만 무성한 채 무산되곤 했습니다. 아내와 약속한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갈 곳을 찾지 못해 다시 3년을 더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때 저와 우애가 각별했던 손위의 동서가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은퇴하면 한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리산 자락에 좋은 3층 건물이 나왔는데 그것을 사서 내가 들어가 살면서 집을 건사하고 한 층은 이서방 몫으로 두었다가 은퇴하고 들어오면 함께 살면 노후는 걱정이 없을듯한데…."  

그 집에 큰 매력을 느낀 형님은 꾀나 큰 아파트를 팔고, 저는 아현동 85번지 집을 팔아 보탰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은행에서 그 집을 담보로 큰 빚을 얻었습니다.  

형님과 제가 받는 월급으로 그 은행 빚을 갚아나가겠다는 계획은 1년 만에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IMF환란이 닥친 것입니다. 무리해서 산 집의 전세금은 반토막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형님의 사업은 IMF의 직격탄을 맞아 수입이 반의 반으로 줄었습니다.

제 월급을 모두 넣어도 은행이자의 연체 횟수가 늘어났고 이자는 애초의 다섯 배로 치솟았습니다. 두 가족이 힘을 합쳐 어떻게 해서든 그 상황을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발버둥 2년 만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형님은 꽤 큰 아파트 한 채를 날렸고 저희 가족은 다시 전셋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4

저는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에게 낮에 통화했던 분의 얘기를 전했고 일주일 뒤에 저희 부부는 그 분과 한자리에 앉았습니다.  

- 아현동 85번지는 언제 떠나셨나요?
"저는 지금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논술을 지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도 아현동 85번지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방송통신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방통대는 학생의 대부분이 직장인들이고 학사관리를 스스로 해야하기 때문에 4년 만에 졸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과 씨름하면서도 남편의 협조로 4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화곡동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아파트에서 논술을 지도할 수 있는 아이들을 구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김포에 더 큰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살고 있습니다."  

- 치열하게 사신 덕으로 순탄하게 성장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군요?
"아파트 평수로 보면 그렇지요. 아현동 85번지에 살 때만해도 행복은 아파트 평수에 비례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을 떠나 살아보고서야 알게되었습니다."

- 그 좁고, 불편하고, 위험했던 85번지가 그리우신 거군요?
"그래요. 그곳은 제 생애 가장 행복한 시기였어요. '황소슈퍼' 기억하시나요? 저희는 아침을 먹고 남편이 출근하면 만날 그곳에 모여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여름에는 가게 앞 평상에서, 겨울에는 안방과 사랑방의 구분이 없는 그집 단칸방에서 동네의 온갖 사정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동네의 아주머니들에게 그 황소슈퍼는 하루 종일 슬픔을 삭이는 곳이었고 다시 희망을 만들어내는 곳이었습니다. 아파트로 이사하니 후덕했던 그 황소슈퍼의 주인아주머니는 어디에도 없었고, 더 큰 아파트로 가니 내집과 네집의 경계는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 저희 집은 그 아현동 85번지 시절에도 무슨 탓인지 바빴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쨌든 직장생활을 계속해보려고 아등바등이었고 아이들 엄마도 일을 했었지요.
"맞아요. 나리네는 황소슈퍼아줌마들에게는 호기심 대상이었어요. 아역탤런트였던 나리가 인사도 잘하고 아주 똘똘했어요. TV드라마에서 얼굴을 보고 아줌마들끼리 좋아하곤 했지요. 나리엄마와 함께 나리네집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는데 집안에 책만 가득해서 저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때 나리아빠는 어느 잡지사의 편집장이라고 얘기 들었었어요."

황소슈퍼 아줌마들이 기억하던 시절의 나리는 숙녀로 바뀌었습니다.
 황소슈퍼 아줌마들이 기억하던 시절의 나리는 숙녀로 바뀌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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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잡지일을 하고 있었는데 낮에는 취재하고 밤에는 원고를 쓰는 일로 귀가가 늦었고, 매월 마감 때는 그나마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때가 많았거든요.
"그집 아이들이 모두 밝고 착해서 황소슈퍼의 아줌마들도 모두 좋아했지요. 저는 아이들을 따라 나리네 집을 몇 번 더 드나들었습니다."  

- 골목이 좁아 연탁도 지게로 나르거나 손으로 날라야했잖아요.
"네. 황소슈퍼 바로 옆이 연탄가게였습니다."  

-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전히 아파트에서 아이들의 논술을 가르치고 마음이 통했던 국문과 동기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독서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지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한 달에 한권씩 책을 읽고 만나서 서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세상에 대한 푸념도 나누는 겁니다. 아파트 이웃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을 그 모임에서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5 

저는 그 부인이 다녀가시고 아현동 85번지에서의 기억이 점점 더 또렷해지는 며칠을 보냈습니다.

"행복은 아파트 평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부인의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아현동 85번지의 구불구불한 골목과 겹쳐졌습니다.

좁고 불규칙하게 이어진 골목은 미로 같아서 처음 온 사람이 들어왔던 출구를 한 번에 찾아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좁고 불규칙하게 이어진 골목은 미로 같아서 처음 온 사람이 들어왔던 출구를 한 번에 찾아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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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아현동85번지의 안위가 몹시 궁급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신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마포구 아현동 85번지 일대 1만8937㎡ 용지에 아파트 492가구를 짓는 내용의 '아현1-3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건축계획안'이 통과되어 용적률 268% 이하를 적용받아 지하 3층, 지상 29층 규모 아파트 6개동이 건립되게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재개발을 첫 추진했던 것이 1973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재개발을 해야할 만한 낡은 주거환경으로 40년을 버텨온 것입니다.   

2013년 2월 중순까지 이주를 마무리하고 철거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2012년 12월 26일, 서둘러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집의 철거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동네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만 무너진 집의 헤어진 방수포 지붕을 오가고 있었습니다.

철거가 임박한 아현동 85번지는 이제 길고양이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철거가 임박한 아현동 85번지는 이제 길고양이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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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이사를 가면서 남겨진 생활쓰레기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공가'라는 붉은 스프레이 글씨가 대문과 벽 곳곳에 휘갈겨져있었습니다.

좁은 골목에 리어카도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게로 연탄을 날라야했습니다.
 좁은 골목에 리어카도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게로 연탄을 날라야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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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스프레이의 '공가'라는 글씨가 한 시대를 지탱해온 서울의 한 커뮤니티의 기억이 사라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붉은 스프레이의 '공가'라는 글씨가 한 시대를 지탱해온 서울의 한 커뮤니티의 기억이 사라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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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가게는 문이 굳게 닫혀있고 황소슈퍼의 선반들은 누군가가 쌓아놓은 재활용쓰레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슈퍼의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 초입의 '황소슈퍼'. 이곳의 주인아주머니는 마음이 순하고 넉넉해서 마을아주머니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를 등에 업고 이 황소슈퍼에 모여서 수다를 즐기고 점심도 함께 먹곤 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소식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또다시 이곳에서 번져나갔습니다.
 재활용 쓰레기가 슈퍼의 선반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 초입의 '황소슈퍼'. 이곳의 주인아주머니는 마음이 순하고 넉넉해서 마을아주머니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이를 등에 업고 이 황소슈퍼에 모여서 수다를 즐기고 점심도 함께 먹곤 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소식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또다시 이곳에서 번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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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한 바퀴 더 돌고서야 제가 8년을 살았던 그 집의 골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던 작은 방이 있었던 아래채가 보이고 그것을 돌아가자 낡은 나무대문이 나타났습니다.

저의 서재가 있었던 아래채.
 저의 서재가 있었던 아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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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칠이 터고 일어난 그 대문에 '85-43'이라는 매직 글씨가 선명했습니다. 아마 우편집배원 아저씨의 필체이리라.

아현동 85-43번지. 저희 가족이 8년을 살았던 곳입니다.
 아현동 85-43번지. 저희 가족이 8년을 살았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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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막내 영대의 백일을 맞아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비손을 해주던 모습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발가벗은 딸아이가 엄마의 하이힐을 싣고 골목을 오르내리던 볕 좋은 그 여름날이 되살아났습니다.

막내 영대의 백일을 맞아 상경하신 장모님이 백일 떡을 놓고 비손을 했습니다. 그 장모님은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외손자를 위해 치성을 드렸던 일은 물론, 현재 외손자조차 몰라보곤 하지요. 서울에서 제 아내와 아이들이 모시고 있습니다.
 막내 영대의 백일을 맞아 상경하신 장모님이 백일 떡을 놓고 비손을 했습니다. 그 장모님은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십니다. 외손자를 위해 치성을 드렸던 일은 물론, 현재 외손자조차 몰라보곤 하지요. 서울에서 제 아내와 아이들이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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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수돗물로 더위를 식힌 첫째딸 나리가 엄마의 하이힐을 싣고 85-43번지 앞 골목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동생 주리가 이렇게 청년이 되었습니다.
 여름날 수돗물로 더위를 식힌 첫째딸 나리가 엄마의 하이힐을 싣고 85-43번지 앞 골목에서 놀고 있습니다. 그 아이의 동생 주리가 이렇게 청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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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천천히 그 골목을 되밟아 나왔습니다. 그 동네를 관통하던 큰 도로(?)변에 집배원의 오토바이가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성큼성큼 골목으로 들어가 한 집앞에 섰습니다. 그 집의 낮은 굴뚝으로 옅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집배원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집배원이 돌아 나온 그 집에는 노인부부가 계셨습니다. 

"이사는 언제가세요?"

저는 눈이 마주친 할아버지에게 얼떨결에 물었습니다.  

"가긴 해야 하는데……."  

그 어투로 보아 아직 옮겨갈 장소를 정하지못했음이 분명했습니다.

아직 85번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집배원 아저씨 때문에 알았습니다. 이 집에서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어르신 부부께서 아현동 85번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듯싶습니다.
 아직 85번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집배원 아저씨 때문에 알았습니다. 이 집에서 아직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어르신 부부께서 아현동 85번지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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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배원을 뒤따라 아현동 85번지를 떠났습니다.  

풍경 속에서는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행복은 넓은 아파트 평수에 있는 줄 알고 버리고 떠났던 그 자리에 행복이 있었음을 곧 사라질 아현동 85번지의 좁은 골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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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아현동85번지, #재개발, #황소슈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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