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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는 웃고 있는 체셔 고양이를 만나 묻는다. "제가 어디로 가야할지 말해주시겠어요?" 고양이는 우습다는 듯 대답한다. "그거야 네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느냐에 달렸지." 앨리스는 다시 묻는다.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고양이는 다시 말한다.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 "하지만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있다고요. 그게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대답하면서 앨리스 자신도 우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체셔 고양이가 옳았다. 앨리스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일은 결국 앨리스의 몫이다.(본문 12쪽-프롤로그 중에서)

'먹고사니즘'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찾아서
▲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먹고사니즘'을 벗어나, 우리 사회의 미래 비전을 찾아서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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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진심캠프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던 경제평론가 이원재의 책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은 '체셔 고양이'와는 다르게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길에 대해서 자세히, '진심'어린 마음으로 알려준다.

이원재는 먼저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중요하다. 질문이 있어야 우리가 우리를 돌아볼 수 있다. 성찰은 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과연 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도구인가? 정치가 삶을 바꾸는가? 아니면 삶이 정치를 바꾸는가?

저자는 '정치가 바뀌어야 삶이 바뀐다'는 정치 슬로건은 '삶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로 바꾸어야 하며, 삶의 문제, 경제의 문제, 자본과 노동의 문제, 그리고 욕망의 문제를 먼저 다루면서, 그것이 어떻게 정치에 반영이 되고, 정치는 그러한 삶의 문제를 어떻게 담아내는가를 보여준다.

51대 49의 정치구조와 '먹고사니즘'

저자는 2012년 대선에 대해 간단한 분석을 시도하지만, 그 분석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대선은 과거와 과거가 맞붙어 경쟁하는 최악의 선거였다고 하며, 경쟁자들이 과거에 대한 해석을 놓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든 선거였다고 평했다. 그리고 그 선거 결과 양당 구도 속에서 득표율로 상징되는 '51대 49'의 사회가 되었다고 하며, 이 숫자는 앞으로 우리 사회가 겪을 여러 가지 시련을 예고한다고 했다.

이렇게 대립이 양분된다면 아무래도 정책과 비전 중심의 선거가 아니라 '누구 편'이냐가 중요시 되고, 그럴 경우 상대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가 강화되어 미래와 삶에 대한 비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말이겠다. 이미 오래 전에 51대 49의 양당 구도가 자리 잡은 미국 역시 증오의 사회, 극단적 당파의 사회라고 규정지었는데, 우리 정치도 그런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이 문제를 바라본다면, 패자인 49는 2%만 가져오면 모든 걸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는 '만만찮은 패자'이고, 승자인 51도 2%만 빼앗겨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위태로운 승자'이기에, 정치와 선거가 곧 2%를 얻기 위한 전쟁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절반에 이르는 지지를 유지하되, 조금만 더 세력을 넓히면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굳이 실험적이고 혁신적이며 장기적인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을 필요를 못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 선심성 지역 개발 정책 같은, '먹고사니즘'의 욕망을 자극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독특한 조어인 '먹고사니즘'은 부자 이데올로기이고, 이는 이미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세대의 차이 없이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이 '먹고사니즘'을 51대 49의 정치구조 속에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혁신해야, 즉 삶을 바꾸어야 정치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형마트, 냉장고, 그리고 대기업

왜 여전히 '먹고사니즘'인가? 당연한 질문이다. 1인당 월평균 20만 원 벌던 사회에서 200만 원 버는 사회로 바뀌었는데도, 국민 소득이 2만 달러를 훌쩍 넘었는데도, 전자, 자동차, 철강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는데도, 연간 매출이 200조 원짜리 기업이 나타났는데도, 왜 아직도 여전히 우리는 불행하며, 왜 '먹고사니즘'에 매달려, 정치와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인가?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면 가 닿을 수 있는 곳이 '대형마트'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우리 삶에서 대형마트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라고 주문한다.

한국에서 대형마트가 생긴 건 1993년. 이마트가 첫 점포를 낸 뒤, 2000년에는 171개로, 2010년에는 437개로 급증했다. 매출액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00년 총 10조 6000억 원이던 대형마트 매출액은 2011년 36조 6000억 원으로 늘어났다.

그렇다. 대형마트가 늘어나고 매출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오는 건 골목 상권의 붕괴이다.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전통시장의 상인들이 문을 닫고, 어릴 적 두부 심부름을 하던 두부공장이 문을 닫았다. 대형마트 3개가 새로 들어오면 전통시장 10개가 없어진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문을 닫은 전통시장만 500개가 넘고 거기에서 생계를 꾸리던 상인들은 10만 명이 넘게 피해를 본다고 추산할 정도이다. 이는 문 닫은 동네 슈퍼마켓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렇게 되어 우리는 대형마트에 가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슬리퍼만 끌고 가서 그 때 그 때 먹을 수 있는 것만 사왔던 소비형태가 이제는 차를 몰고 가서 일주일치 식료품을 한꺼번에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패턴으로 변했다. 이러니 탄소배출이 늘고, 과잉소비를 부추기므로 대형마트는 환경파괴적인데다, 대형마트에서 사는 물건이 싸다고 하지만 그 싼 물건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가야 하니 기름값과 시간 소비를 더한다면 대형마트의 가격은 결코 '착한' 가격이 아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대형마트에서 사온 물건을 저장하기 위해선 더 큰 냉장고가 필요하고, 대형마트가 감당해야 할 물류 창고를 집안에 들여놓은 냉장고가 대신하여 감당하는 꼴이므로, 물류 저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각 가정에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결국 대형마트는 이래저래 손쉬운 돈벌이가 되고, 그 가운데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이 자꾸만 커지므로, 국민 소득이 늘어나도 우리 살림은 계속 팍팍해지고,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반면에 대형마트, 냉장고, 자동차가 얽히어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들이 바로 대기업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 소비의 고리를 연결 지으면서 스스로 덩치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갖고 싶어서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자동차를 산다. 집에 있는 차를 굴리고 싶어지니 두부를 사러 삼성 총수 일가가 분가해 만든 신세계 이마트에 간다. 두부와 함께 냉동식품을 잔뜩 사와서는 LG전자에서 만든 대형 냉장고에 넣는다. 끊임없이 우리는 대기업에 입금한다. 대기업이 성장하지 않을 수 없는 순환 고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본문 108쪽)

그렇다면 저자가 집요하게 대형마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기업과 소비에 대한 성찰에 있다. 기업이 얼마나 많은 지원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그러면서 이러한 소비 패턴과 순환 고리로 얼마나 부를 축적하였으며,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서 먹고 사는 굴레를 짊어지게 되었는지를 성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골목 상권이 살아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또한 대기업이 돈을 긁어모아서 잘 사는 것과 시민과 상인들이 유대와 협동 속에서 이익을 나누어 잘 사는 것의 차이를 성찰하라는 것이며, 대형마트와 냉장고를 통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

무작정 성장하기만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삶은 피폐해진 상황, 나라와 대기업은 커지고 강해지는데 개인은 약해지는 상황. 이런 결과가 우리 미래의 비전이라고 하면 슬프다. 저자는 대안을 말한다. 대안의 핵심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있고, 경제·사회·환경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삶은 이 세 가지 영역 아래 지속되는데,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해도 빈부격차, 인권침해, 부패 등의 문제 때문에 사회적인 지속가능성이 붕괴되거나, 지구환경이 파괴되어 청정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환경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삶의 지속성도 훼손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사회혁신'을 제안한다. 지속가능성이 한국사회가 가야할 방향이라면, 사회혁신은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방법이라고 했다.

저자가 사회혁신을 이루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분야는 역시 '기업 문제'이다. 경제민주화가 당연히 등장한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어 경제민주화란 대기업의 '지배구조' 혁신과 기업의 '사명감'을 높이는 쪽(장하준)으로 개혁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두 가지는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대기업을 구조적으로 개혁해서 덜 탐욕스럽고 더 투명하게 만든 뒤 생긴 공간에, '처음부터' 사회적 사명과 민주적 운영 원리를 가진 기업들이 들어서게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결승점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사회적 기업'을 말한다. 처음에는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다가 나중에 필요에 따라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나서는 기업 말고, 아예 출발부터 사회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사업 활동을 선택하는 기업 말이다. 여기에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협동조합을 포함한다.

저자는 특히 '사회적 기업가'를 마더 데레사의 가치를 지키면서 구글 같은 효과적 경영을 하겠다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이는 세계적 흐름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두 종류의 꿈을 꾼다. 하나는 구글의 꿈이다. 가장 앞선 곳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경험하며 일하고 싶은 꿈이다. 다른 하나는 마더 데레사의 꿈이다.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올바른 삶을 살고 그 삶을 인정받고 싶은 꿈이다. 구글이 마더 데레사처럼 고결한 가치를 가지고, 마더 데레사가 구글처럼 빠르고 효과적인 세상, 그것을 만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비영리부문의 경영자들이고 사회적 기업가들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혁신이 사회혁신이다.(본문 184쪽)

주식회사라는 기업의 이상한 지배구조를 벗어던지고,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공유경제 등으로 사회혁신이 이루어낼 때, 우리 삶이 지속가능해지며, '먹고사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강한 정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구상이다.

나는 이원재의 진심을 읽는다. 그 진심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질문 속에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묻는 물음이다. 체셔 고양이처럼 답한다. "그거야 어떤 삶으로 살기를 원하느냐에 달렸지." …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진정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질문과 성찰 속에 답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이원재, 한겨레출판, 2013년 4월 18일, 1만 3천 원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 왜 우리는 여전히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이원재 지음, 한겨레출판(2013)


태그:#51대 49 정치, #먹고사니즘, #사회혁신, #사회적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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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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