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즈음 길을 나서면 초록이 무지 예쁘다. 연두색, 진녹색 등 조금조금 톤이 다른 초록 계열의 색깔들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멋스럽게 어우러진 산과 나무들을 바라다보면 화려하지 않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눈을 싱그럽게 하는 초록은 원초적 색깔이라 할까,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삶에서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힐링(healing)의 색깔로 초록을 단연 꼽고 싶다. 어떠한 삶을 살든, 삶은 늘 무거운 것 같다. 가치관, 삶의 방식, 욕망 등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사는 세상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힐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포늪의 정겨운 징검다리.
 우포늪의 정겨운 징검다리.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지난달 21일, 일곱 살 어린 친구와 함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내륙습지인 우포늪(경남 창녕군)으로 떠났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서 출발한 시간이 낮 12시 20분께. 남지에 가까워지자 마침 낙동강유채축제(창녕군 남지읍)가 한창이라 차가 엄청 밀리기 시작했다. 이날 '우포늪 지킴이'로 알려져 있는 환경운동가 이인식 선생님과 그곳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자꾸 마음에 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I.C를 지나 이인식 선생님과 만나 창녕군 유어면 세진마을을 거쳐서 우리는 우포늪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벌써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차에서 내리니, 정겨운 징검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징검다리를 건너자 홍자색 자운영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군데군데 왕버들이 우람한 몸짓으로 서 있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체구가 큼직한 나무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 여자아이. 어른이 되어 문득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될 때 자기를 품어주던 가슴 넓은 이 나무의 촉감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주던 아빠의 엷은 웃음도 행복하게 떠올릴 것이다.

우포늪에 오니 걷는 게 왜 이리 즐거울까? 어쩌면 우리가 자연과 어우러져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도 건강을 위해 종종 걷지만, 우포늪의 산책은 맛이 달랐다. 더욱이 지금 걷는 길이 여름철 홍수기에 물에 잠겨 버리기도 한다는 말에 길의 소중함마저 느껴졌다.

'우포늪 지킴이'로 알려져 있는 이인식 선생님이 소개해 준 힐링 장소.
 '우포늪 지킴이'로 알려져 있는 이인식 선생님이 소개해 준 힐링 장소.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환경운동가 이인식 선생님의 모습이 참으로 편안하게 느껴진다.
 환경운동가 이인식 선생님의 모습이 참으로 편안하게 느껴진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우포늪을 흐르는 토평천은 낙동강으로 유입되는데, 우포는 낙동강 본류에서 동쪽으로 7km 정도 떨어져 있다. 토평천이 우포늪으로 실어 오는 흙과 모래의 양에 비해 낙동강 쪽 자연제방은 홍수 때 실려 온 퇴적물이 높게 쌓이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낙동강 물이 우포로 역류가 되면서 침수 현상이 일어나는 거다.

모처럼 한가한 마음으로 걸은지 15분이 채 못되었을까, 이인식 선생님이 힐링하기에 좋은 장소라며 잠시 앉았다 가자 하더니 이내 자리 잡고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지나간 젊은 시절을 깡그리 잊고 살다가도 이인식 선생님처럼 오랜 세월 알고 지내 온 지인을 이따금 보게 되면 불현듯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보다는 슬프고 아픈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을 꽉 부여잡고 있는 듯해서 갑자기 눈물이 나려 했다. 흘려보낸 세월이 후회도 되고, 이상스레 그립기도 했다.

백로와 청둥오리 부부. 
 백로와 청둥오리 부부.
ⓒ 이인식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그곳을 떠나 백로와 청둥오리, 햇살 머금어 화려한 은백색을 드러낸 은사시나무 등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전망대 쪽으로 계속 걸어갔는데, 우포늪 따라 걷는 그 자체가 바로 힐링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이 길에는 부부, 젊은 연인, 어린이 등 자전거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전거 타는 광경은 먼발치에서 보면 왠지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평화스러운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에 자전거 길이 따로 없다 보니 한가한 걸음을 걷는 사람 옆을 쌩 지나가는 자전거로 인해 한 번씩 불안하기도 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요즈음 남에 대한 배려가 다소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필요도 있겠지만, 남에 대한 배려 또한 중요하다. 배려의 작은 고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이어진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창녕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은 낙동강의 배후습지로서 유어면 대대리와 세진리에 걸쳐 있는 우포늪, 이방면 안리 일원인 목포늪, 대합면 주매리 일원인 사지포, 그리고 이방면 옥천리 지역인 쪽지벌 등 4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습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로 늪 보전을 위해 지역주민들을 꾸준히 설득하는 등 그동안 시민단체와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1997년 7월에 자연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그 이듬해 1998년 3월에는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협약의 보존습지로 등록되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이인식 선생님이 아들 내외와 저녁 약속이 있어 우포늪 생태관을 600m 앞두고 헤어졌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나갔다. 이런 경우 처음 걸을 때 놓친 풍경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같은 풍경을 다시 보면서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되는 이점이 있어 좋다.

명상, 예술 등을 통한 힐링도 있겠지만, 뭐라 해도 자연을 통한 힐링을 적극 권하고 싶다. 자연을 통한 힐링을 원한다면, 천연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우포늪에서 힐링의 시간을 한번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힐링, #우포늪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