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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왼쪽으로 이어진 덕수궁 돌담길. 돌담을 따라 50여 미터를 걷다보면 돌담길 양쪽으로 그림 수십 점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덕수궁 돌담길의 그림들 그림 수십 점이 돌담에 기대어 서 있다.
덕수궁 돌담길의 그림들그림 수십 점이 돌담에 기대어 서 있다. ⓒ 이홍찬

그림들이 서 있는 돌담 맞은편으로는 한 노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비가 오지만 않는다면 늘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조용준 화가는 올해로 81살이다. 그의 그림 인생은 벌써 예순 해를 훌쩍 넘겼다. 열일곱 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고 그는 먹고 살 방편으로 붓을 들었다.

"그림은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재주는 있었어요. 그래서 미군 초상화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꾸렸지요."

그 뒤로 쭉 초상화 그리는 일을 밥벌이로 삼았다. 젊어서 열심히 일한 덕에 노후 생계에는 문제가 없고, 지금은 그저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워서 매일 이곳으로 나온다고 한다.

"집에 있어봐야 적막강산이지요. 노인정에 가봤자 소주 마시는 일밖에는 없고요."

요즘 노인들은 다들 할 일이 별로 없는 반면, 자기는 다르다는 조용준 화가는 그래서 자기 인생에 후회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늙은 나에게 이렇게 할 일을 준 거지요. 그림만 그리며 살아왔던 게."

또, 잊을 만하면 구매자가 한 명씩 나타나니 용돈도 벌 수 있다. 그는 지금의 생활이 만족 그 자체라고 덧붙인다.

예수의 부활 조용준 화백의 작품
예수의 부활조용준 화백의 작품 ⓒ 이홍찬

그가 가장 애착을 가졌던 그림은 예수의 부활화다.

"지금 저기에 있는 것은 다시 그린 것이고요. 저 그림을 처음 그렸을 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가 그림을 사가서는, 그걸 복사해서 미국 전역의 교회에 그걸 판 거죠. 내가 생각할 때는 미국 넘어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나 싶어요. 나름의 명화가 된 셈이지요."

조용준 화가가 그린 작품은 그밖에도 여러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 번은 그가 KBS 뉴스에 출연한 적이 있다. 방송을 보고는 지방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그림 수십 점을 한꺼번에 사 갔다. 특별히 잘 팔리는 그림이 있는지 묻자, 모사화가 잘 나간다고 답했다.

"박수근의 빨래터나 밀레의 만종 같은 그림,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익숙하고 유명하니까."

그가 그린 그림의 가격은 1호당 만 원으로 균일가다. 정사각형 캔버스를 기준으로 1호의 한변은 15.8센티미터, 10호는 45.5센티미터다.

거리의 화가 오후,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제목은 '월하의 연인' 달빛 아래서 이뤄지는 동물들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화가는 말한다.
거리의 화가오후, 그림이 완성되어 간다. 제목은 '월하의 연인' 달빛 아래서 이뤄지는 동물들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화가는 말한다. ⓒ 이홍찬

그는 뭘 그릴지 늘 고민한다. 현재 살고 있는 양주역에서 시청까지 오는 거리는 한 시간 남짓이다. 경로석에 앉아 상상의 캔버스를 만들어내 스케치를 하면서 그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덕수궁 돌담가에 앉아 나이프를 들고 그 상상을 실재하게 함으로서 작업을 마친다. 작업 시간은 대중없다. 마지막 나이프질이 끝나는 때까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이틀이 넘게 소요된다. 그는 미술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그림에 뜻을 둔 어린 학생들이 미술을 겁낸다고 한다.

"우리 교육은 미술을 하는 데 엄청난 능력이 필요한 것처럼 가르치지요. 즐기려고 하는 마음이 들게끔 해야 하는데 말예요. 그 마음이 또 창의성이고. 어렵다고 생각하니 따라하는 걸로 연습을 하고, 결국 다들 똑같은 것만 그려요."

거리의 화가 뒤로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돌담길 일대에는 그가 그리 100여점의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거리의 화가뒤로는 그가 그린 그림들이 있다. 돌담길 일대에는 그가 그리 100여점의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 이홍찬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사람들이 돌담에 세워진 그림을 둘러보고, 조용준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오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퇴근할 시간이라고 했다. 담배를 피워 물었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림들을 쌓아서 길 한쪽에 두고 퇴근한다. 그림이 없어지면 어쩌냐는 걱정에, 훔쳐갈 사람은 없단다. 훔쳐간 대도 또 그리면 된다며 씩 웃는다.


#조용준#거리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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