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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인 나는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Gandhi)가 말한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하다. 기독교인 대신 목사를 넣으면 바로 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독교인과 목사만 그럴까? '청출어람'(靑出於藍] )이란 말이 있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뜻이다. 스승을 뛰어넘는 인격과 학식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다.

역사에서 '청출어람'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사람들은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 역사가 더 진보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보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남북관계는 박근혜 정부들어서 '100% 단절' 상태에 들어섰다. 한국전쟁과 '1.21청와대 습격사건'과 '육영수 피격사건' 따위로 가장 긴장도가 높았던 유신독재정권때보다 더 후퇴했다. 역사에서 청출어람은 언감생심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만 역사를 후퇴시킨 것이 아니다. 이른바 민주정부라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하 직위 생략)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는 그렇지 않는데 '친노'는 들을 때마다 주홍글씨같은 느낌이 강하다. 보수세력이 노무현을 공격할 때마다 써 먹었던 프레임에 너도나도 갇혀버렸고, 민주당 안에서 조차 2012년 총선과 대선 패배 책임이 친노패권주의라며 맹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주당 의원 김영환은 "친노 잔도를 불태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노무현이란 이름이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너도나도 "나도 '친노'"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정치세력이 친노를 맹비난할 때 또 다른 이들은 흙으로 돌아가진 4년이 지난 지금도 노무현이란 이름 석 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처럼 '노무현'이란 이름만큼 극도의 반감과 양다리 그리고 극도의 친밀감을 가진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노무현'으로 검색하니 129권이 나왔다.

전문가 아닌 시민으로 노무현 보기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 왕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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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권 중 하나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왕의 서재)다. 팟캐스트 <이이제이> 진행자인 작가 이동형이 쓴  "대학 졸업장도 없는 고졸 출신 대통령"으로 "비주류에 타협도 모르는 정치인" '노무현 평전'이다.

그는 "전문가의 눈이 아닌, 참여정부의 공과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서 '사람 노무현'을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평한 노무현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노무현을 보고 싶다고 하는 이동형 말에 그동안 그이 관련한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다시 한 번 들었다.

사실 배웠다고 하는, 좋은 대학 나왔다고 하는 '전문가'들 눈에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은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2004년 노무현을 탄핵한 가장 큰 이유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었다. 하지만 노무현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도 여당을 '팍팍' 밀어줬다. 

누구처럼 '말로만' 원칙주의자가 아닌 '행동하는' 원칙주의자 노무현

한나라당 최병렬과 민주당 조순형 그리고 국회의장 박관용은 삼두마차가 되어 탄핵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내심 이들은 노무현이 사과하면 탄핵안 가결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이 누구인가 "내가 잘못이 있어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하면 언제든지 사과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시끄러우니 사과하고 넘어가자, 그래서 탄핵만 모면하자, 이렇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행동하는' 원칙주의자가 되었다.

노 대통령의 타협할 줄 모르는 습성은 어릴 적부터 몸에 배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때 교내 붓글씨 대회에서 선생님이 "한번 잘못 쓰면 종이를 바꿔주지 않는다"는 주의 사항을 그대로 믿고 제출했다. 그런데 시험장에 와서는 자기 아들이 글씨를 보고는 잘못 썼다며 종이를 바꿔주는 모습을 보고 억울했다. 선생님 아들은 1등은 노무현은 2등이었다. 노무현은 "나는 승복할 수 없다며 붓글씨 담당 선생님에게 상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소년 노무현이 학교에서 인정받고,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상을 타려고 했다면 '우리 이승만 대통령' 작문을 멋지게 완성해서 손바닥 비비고 머리 조아리면 됐다. 그게 싫다면 대충 끼적이는 흉내라도 내면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지냈으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소년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94쪽)

그것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기에. 노무현 정치 인생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1990년 3당 야합 때 "이의 있습니다"를 외칠 수 있었다. 노무현이 눈 한 번 질끔 감고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국회의원 편하게 할 수 있고, 부산시장 아니 대통령도 됐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랬다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며 수백 만명이 그를 위해 눈물 흘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탄핵 주역 최병렬 "노무현은 평상심이 부족"

행동하는 원칙주의자 노무현을 탄핵한 주역 중 하나인 최병렬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 전 언론개혁을 주장할 때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린애 같은 얘기지요. 대권을 의식해 좀 튀어보려고 그런 발언을 한 것 아닌가요. 뭔가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상심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저는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 평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보는 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28쪽)

학벌 운운하며 노무현을 "평상심이 부족하다"고 한 최병렬은 대한민국 '최고대학'(세계 100위에는 들어가지 못함)인 서울대를 나왔고, 노무현은 상고 출신이다. 하지만 정작 평상심을 부족한 이는 최병렬 자신이었다. 그는 학벌주의 늪에 빠져 자신이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임기 두 달밖에 안 남은 국회의원들이 끌어내리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들 마음을 읽지 못했다. 최병렬만 아니라 민주당 조순형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집권 내내 한나라당은 노무현을 비난을 넘어 '조롱'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퇴임 이후에도 별 다르지 않았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때 "김영삼 대통령 집 앞에는 주차할 데가 없어요. 전직 대통령들 살고 있는 집 현황을 한 번 살펴보세요. 지금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 지어서 살고 있는 사람 없어요"라고 했다.

같은 당 의원 이은재는 "산 깊숙이 들어가면 골프 연습장까지 만들어놨어요. 또 지하에 안을 볼 수 없는 아방궁을 만들어서 컴퓨터를 들여놓고 웬만한 회사에서도 안쓰는 그런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놨어요"라는 막말을 했다.

'홍도저' 홍준표 "봉하마을은 아방궁"

하지만 이들은 '학살자' 전두환이 29만 원을 가지고 호화골프를 치고 국외여행을 다니고 경호 경비로 수십 억 원을 쓴다는 것에는 애써 침묵한다. 물론 그들은 노무현이 "아 기분 좋다"고 했던 그 봉하마을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당연히 아방궁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노무현 사저가 시민 품으로 돌아온다. 그 때 홍준표가 꼭 가보기를 바란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때 그 일과, 노무현 깎아내리기에 힘썼던 '1등신문'의 왜곡기사도 이동형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행위는 더 이상 떠올리기 조차 싫다. 하지만 언론이라면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하기에 2002년 12월 19일자 <조선일보> 사설만은 기록하고 싶다.

鄭夢準, 노무현을 버렸다
16대 대통령 선거의 코미디 대상(大賞)은 단연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다. 선거 운동 시작 직전, 동서고금을 통해 유래가 없는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 선거운동 마감 하루 전까지 공동 유세를 펼치다가, 투표를 10시간 앞둔 상황에서 정씨가 후보 단일화를 철회했다. 이로써 대선 정국은 180도 뒤집어졌다.

이런 느닷없는 상황 변화 앞에 유권자들은 의아한 심정이지만, 따지고 보면 '노·정 후보 단일화'는 처음부터 성립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북한 문제와 한·미관계를 보는 시각부터, 지금의 경제상황과 사회적 문제를 보는 눈이 기본적으로 다른 두 후보가 단지 여론조사에서 우세한 사람을 단일후보로 뽑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設)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투표 직전이긴 하지만, 정씨가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은 결국 이런 근본적 차이를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희극적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급격한 상황 변화 앞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판단 기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것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20일 동안 모든 유세와 TV토론, 숱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졸인 판세 및 지지도 변화 등 모든 상황은 노·정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이 같은 기본 구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전국의 유권자들은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투표소로 향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고 유세를 함께 다니면서 노무현 후보의 손을 들어줬던 정몽준씨마저 '노 후보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급작스러운 변화의 뜻을 슬기롭게 읽어내야 하는 일이다.                                                                                                                           


최병렬-조순형-홍준표 그리고 이명박 정권과 <조선일보>을 비롯해 노무현 기일만 되면 묘역을 찾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당선되면 노무현 묘역을 찾아 노무현 정신을 잇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불리하면 비난에 동조하는 민주당 일부세력들에게 이동형은 이렇게 따져 묻는다.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흔들었던 그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 문재인도 흔들었다. 친노를 배제하고 노무현의 색깔을 빼겠다는 2013년 현재 민주당은 과연 그렇게 해서 국민이 원하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까? DJ가 살아있다면 지금 민주당을 보고 어떤 말을 했을까."

물론 노무현은 대통령 시절 비판받을 정책을 많이 폈다.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FTA추진 등등. 이같은 정책은 그가 가장 즐겨쓰고, 좋아했던 '사람사는 세상'과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다. 하지만 노무현은 자기 생명을 내려놓는 날까지 사람사는 세상을 이루고 싶었다.

'사람사는 세상'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지만, 그를 더 이상 이용하지 말자

13대 총선 당시 노무현의 구호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20년 후, 노무현이 대통령 퇴임 후에 만든 공식 홈페이지 이름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그가 평생을 추구한 정치 이념이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노무현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면서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작은 비석하나 남겨라"는 글을 남기고 훌훌 떠났다. 그가 떠나자 사람들은 '지못미'했다.

전국에서 일어난 추모 열기는 실로 엄청났다. 봉하마을은 추모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가버린 후에야 그의 마음을 국민이 헤아리게 된 것이다.

비록 노무현이 '사람사는 세상'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지만, 자신 이익에 따라 그를 더 이상 이용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이동형 지음 ㅣ 왕의서재 14000원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

이동형 지음, 왕의서재(2013)


태그:#노무현, #최병렬, #민주당,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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