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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九州) 아소산(阿蘇山)의 아소산니시역(阿蘇山西駅)은 아소산을 오르내리는 로프웨이가 서는 역이다. 이 로프웨이 역 안에 들어서니 수많은 기념품 가게와 함께 소박한 갤러리가 하나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역 안의 갤러리에서 아소산의 사계절을 과시하는 사진들을 마음껏 감상한 뒤 아소산에서 무언가 특색 있는 특산품을 먹어보기로 했다.

시골에서 소박하게 먹는 튀김우동이다.
▲ 이나카 우동 시골에서 소박하게 먹는 튀김우동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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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대로 일본은 각 지역별로 우동의 종류가 수없이 다양하다. 아소산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소산니시역의 식당에서 아소산에서 유명한 우동을 맛봤다. 나는 식당에서 덴푸라 우동(天ぷらうどん)의 일종인 이나카우동(田舍うどん)을 주문했다. 우동 이름을 보니 시골에서 소박하게 먹을 수 있는 우동이라는 뜻이다. 우동 안의 튀김을 우동 국물에 말아서 저어 먹는 맛이 괜찮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우동이지만 면발이 쫄깃하다.

독가스를 씻어주는 듯한 아이스크림

흑임자가 들어간 회색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 아소산 아이스크림 흑임자가 들어간 회색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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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에 와서 꼭 해야 할 또 한 가지의 일은 아소산의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 일본 사람들이 아소산에서 맛있게 먹는 아이스크림은 '화산재 아이스크림'으로도 불리는 아소산 흑임자(黑荏子·くろえごま) 아이스크림이다. 흑임자와 우유를 섞은 아이스크림은 달콤하고 고소하다. 부드럽게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은 마치 아소산 분화구에서 마셨던 독한 가스들을 모두 씻어내 주는 듯하다.

역에서 아소산의 산록 앞으로 다시 나오니 붉은 깃발이 아소산의 강한 바람에 계속 휘날리는 사찰이 있다. 이 사이간덴지오쿠노인(西巖殿寺奧之院)은 깊은 산속에 자리한 우리나라의 사찰 암자와 같은 곳이다. 726년에 인도의 승려에 의해 최초로 건립됐다는 사이간덴지오쿠노인의 현재 건물은 1889년에 세워졌다.

아소산 분화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원이다.
▲ 아소산 사이간덴지 아소산 분화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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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살아있는 화산의 높은 산록에 자리한 사찰들은 대개 신비스러운 신령을 모시기 마련이다. 이 작은 사찰도 역시 화산의 안녕과 함께 개인들이 복을 기원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동안의 수많은 아소산 분화 때에도 이 사찰의 건물이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찰은 자기 주변의 위험을 없애고 안전을 기원하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이 사원은 결혼의 사원으로 알려져 왔으며, 연애·결혼 등의 좋은 인연을 성취하는 기복 사찰로 이름을 알려왔다.

화산 아래의 사원은 결혼과 연애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 소원을 비는 사람들 화산 아래의 사원은 결혼과 연애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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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산을 보고 내려온 여행자들은 자신이 신비스러운 기운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여행자들은 사찰의 에마(繪馬) 나무판에 소원을 적어 기원하고 오미쿠지(おみくじ)를 통해 자신의 행운을 바란다. 일본인 참배자들은 이 사찰 입구에서 종을 한번 치고 박수를 두 번 친 후 기도를 올린다.

참배자들은 기도가 끝나자 동전을 던지며 참배를 마무리한다. 동전이 나무함 바닥을 울리는 땡그랑 소리가 둔탁하게 들린다. 그들은 사찰 옆의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과 애마령혼지비(愛馬領魂之碑) 앞에서도 자신의 복을 기원한다. 사찰 앞에 걸린 형형색색의 천들과 붉은 깃발이 아소산의 강한 바람에 계속 휘날리고 있다.

화산 아래 목가적 풍경... 여기 산 속 맞아?

휴화산 분화구에 펼쳐진 대평원이다.
▲ 구사센리 휴화산 분화구에 펼쳐진 대평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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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원을 지나 화산 속의 대초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과거에는 불을 뿜는 분화구였지만 이제는 아름다운 화산호와 대초원으로 대변신을 한 구사센리가하마(草千里ヶ浜)가 우리를 반긴다. 아소고가쿠산(阿蘇五岳) 중의 한 봉우리인 에보시다케산(烏帽子岳)가 화산분출로 만든 이 대평원은 이름답게 천리에 걸쳐있는 듯 넓게 펼쳐져 있다. 맹렬히 화산활동을 했던 구사센리가하마는 지금 평화롭기만 하다. 가스를 내뿜는 화산 바로 아래에서 나는 느닷없이 목가적인 풍경을 만났다. 직경 1km의 원형 초원은 아름다운 데다가 녹색의 싱그러움마저 느껴진다.

화산 아래 평원에서 승마를 즐길 수 있다.
▲ 구사센리 승마 화산 아래 평원에서 승마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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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센리가하마 대초원은 제주도처럼 오래 전부터 말을 방목해 기르던 곳이다. 도로에서 초원을 향하는 입구, 아소화산박물관 반대쪽에는 지금도 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나란히 정렬한 말들의 궁둥이가 탐스러울 정도로 건강하다. 이곳은 정녕 화산섬 제주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서 말을 타고 화산으로 형성된 초원을 달릴 수 있는데, 넓은 초원에서 말처럼 마구 뛰어다니면 가슴이 후련할 것 같다. 나는 잠시 말을 타고 아소산의 살아있는 분화구까지 오르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 평원은 정말 이 곳이 산속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드넓은 세상이다.

우리가 구사센리가하마에 도착했을 때도 다행히 화산호수의 물은 조금 남아 있었다. 물이 가득 했을 때의 화산 호수의 모습은 참 아름답던데 물이 많이 줄어 있는 모습이 조금 아쉽다. 이 화산호에서는 이곳의 초원을 누비는 말들이 목을 축이기도 한다. 이 호수의 물이 모두 마르면 지금도 연기를 뿜고 있는 아소산에서 화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깊은 산속 초원의 호수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앞에 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기업들에서 후원한 삼나무들이 산록에 가득하다.
▲ 아소산 산림 기업들에서 후원한 삼나무들이 산록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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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소산의 나카다케(中岳)에서 내려오는 규슈횡단버스를 탔다. 이 버스를 놓쳤다면 2시간 이상을 산 속에서 기다리며 후쿠오카까지 돌아가는 일정이 늦어질 뻔했다. 창밖으로는 다시 아소산의 숨 막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산 정상 부근에는 나무가 많지 않지만 조금씩 산 아래로 내려가자 곳곳에 다시 눈길을 돌리게 되는 삼나무의 빽빽한 산림이 지나간다. 아직도 숨을 쉬는 활화산의 땅이고 땅 속에 영양분이 많지 않지만, 일본 기업들이 기증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아소산을 천천히 어슬렁거리던 버스는 한 산봉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표고 954m의 코메즈카(米塚)! 옛날 옛적에 아소산의 신이 수확한 쌀을 쌓아 둔 곳이 시간이 지나면서 산으로 변했다는 곳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작은 화산 중에서 예쁘기로 치면 세계 최고인 것 같다.

이 화산 정상이 파여 있는 진짜 이유

마치 쌀눈을 닮은 작은 화산 봉우리의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 코메즈카 마치 쌀눈을 닮은 작은 화산 봉우리의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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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즈카의 정상 부분은 누가 파낸 것 같이 부드럽게 파여 있다. 아소산의 신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거대한 쌀 한 톨을 빼서 나눠줬기 때문에 가운데가 움푹 파였다고 한다. 어찌 보면 코메즈카의 지름 100m에 이르는 작은 분화구는 푸딩을 한 숟가락 떠 먹은 자리 같이 생겼다. 코메즈카의 밑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이 길도 쌀을 옮기기 위한 길이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코메즈카의 이름에 왕의 고분을 뜻하는 '총(塚)'자가 붙었는데 얼핏 보면 우리나라 경주 대릉원의 고분들과도 많이 닮아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수많은 오름과도 마치 형제같이 닮은꼴을 하고 있다. 오름과 코메즈카 모두 큰 화산의 기생화산이기 때문이다.

코메즈카는 무엇보다도 한 여인의 몸매 같이 아름다운 선을 가지고 있다. 코메즈카의 산록에는 나무가 없고 목초로만 덮여 있어서 능선의 아름다운 선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손으로 깍은 듯한 코메즈카의 능선은 정말 자연의 작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 모습에 반한 내가 차창 밖으로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자 버스에 탄 많은 여행자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를 빼 들고 코메즈카에 집중하고 있다.

아소산 들판에는 황소와 함께 와규가 눈에 띈다.
▲ 아소산 소 아소산 들판에는 황소와 함께 와규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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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는 소들을 풀어서 키우는 목장들이 한가롭게 자리잡고 있고, 소들은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 속의 우거진 숲 사이 사이에서는 황소와 함께 일본에서 자랑하는 '와규(和牛)'라는 검은 소가 풀을 뜯고 있다. 고베가 원산지인 와규는 소를 사육하기에 좋은 기후와 지형을 가진 규슈에서 특히 많이 길러지고 있는데, 아소산 산록은 와규를 키우는 데도 최적지로 꼽힌다.

풀밭의 억새들이 오후의 햇빛에 펄럭인다.
▲ 아소산 억새 풀밭의 억새들이 오후의 햇빛에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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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나가는 길 앞의 아소산 언덕에는 억새풀밭의 억새들이 오후의 태양을 만나고 있다. 억새는 햇살 속에서 바람에 이리저리 나풀거리고 있다. 억새의 갈색 빛깔 초원은 이국적인 정경을 자랑스럽게 펼치고 있다. 황량해 보이지만 아름답게 다가서는 풍경이다. 보기 힘든 풍광의 경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하늘은 구름 속에서도 파랬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아소산, #구사센리, #코메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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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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