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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축구전문가 화천군청 황인성 주무관.
 자칭 축구전문가 화천군청 황인성 주무관.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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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열린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 한국축구 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내건 슬로건은 '즐겨라 대한민국'이었다. 경기시작 전 많은 국민들은 즐기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았고, TV 앞에 모였다. 그러나 0:1로 패하자 모두 독설가로 변했다. 즐기자는 초심은 어디로 간 걸까.

축구는 이렇게 즐기는 것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이란과의 경기에서 축구 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브라질 월드컵 슬로건인 '즐겨라 대한민국' 대형 통천을 펼쳐보이고 있다.
▲ 브라질 월드컵 슬로건 '즐겨라 대한민국' 18일 저녁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이란과의 경기에서 축구 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브라질 월드컵 슬로건인 '즐겨라 대한민국' 대형 통천을 펼쳐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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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청 주민생활지원과는 청소년을 비롯한 노인, 여성, 주민복지를 담당하는 부서다 보니 남자직원들보다 여직원들이 월등히 많다. 그러나 축구에 대해서는 어느 부서보다 관심이 많다.

A매치 경기가 있기 전날 점심시간이면 30여명의 직원들이 회의실로 모여든다. 승패를 맞추기 위한 게임 참여를 위해서다.

"오늘 경기는 수중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수중전에 익숙치 않다. 따라서 나는 2:0승리를 예견한다."

황인성 주무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말을 믿고 2:0에 베팅하는 여직원들은 거의 없다. 틀린 정보를 흘리고 본인은 다른 스코어를 찍기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황 주문관의 입장에서는 혼자 스코어를 맞추어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배당이 높다는 판단에 엉뚱한 정보를 흘린다는 것은 막내직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몇 년 동안 황 주무관이 스코어를 맞힌 적이 거의 없다는 거다. 오히려 그가 흘린 엉뚱한 정보를 믿고 베팅을 했다가 맞춘 여직원이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기까지 하다.

피자 한 조각이 만 원?

한국 대 이란 스코어 맞추기 표. 한국이 진다는 쪽으로 배팅을 한 사람은 뭐냐!
 한국 대 이란 스코어 맞추기 표. 한국이 진다는 쪽으로 배팅을 한 사람은 뭐냐!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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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서의 베팅엔 룰이 있다. 개별적으로 무조건 1만 원이다. 그 이상의 금액은 허용되지 않는다. 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결과를 맞춘 사람은 점심을 사야한다. 그러다보니 획득한 상금보다 점심 값이 더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간식을 사는 제도로 변경됐다.

"이 피자 한 조각이 만 원이라니..."

스코어를 맞춘 사람이 간식으로 피자를 사든 통닭을 사든 풍족하게 사는 경우는 드물다.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양이 피자 한 조각, 닭다리 한 개 정도다. 그러니 피자 한 조각이 1만 원이란 표현이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 상황에서 그 선수가 슛을 하는 게 아니고 우측으로 밀어 주었어야 했어요."

짧은 휴식시간엔 모두 전문가다. 여직원들도 열을 올리며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맞히지 못한 사람들의 해설이 더 전문성을 띤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주민생활지원과 여직원들로 대표선수를 구성했으면 패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한국이 패한다는 쪽에 베팅을 한 이유

경기시작 전 화면. 당당히 1위로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믿었다. 경기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종료후 많은 사람들이 독설가로 변했다.
 경기시작 전 화면. 당당히 1위로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믿었다. 경기를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종료후 많은 사람들이 독설가로 변했다.
ⓒ SBS TV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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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에 이란에 진 것은 너무 억울하다."

황인성 주무관의 말에 모두 주목했다. 노인담당 부서에 근무하는 황 주무관의 말은 이랬다. 4명의 노인부서 직원들은 몇 년 동안 한 번도 스코어를 맞춘 적이 없었단다. 그래서 전날 대책회의를 열었다. 네 명이 각각 1:0승, 2:0승, 2:1승, 3:1승으로 분산해서 걸었는데, 그것도 물거품이 되었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건전성을 해친 담합이란 주장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국심 때문일까.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기는 쪽에 베팅을 한다. 그런데 패에 베팅을 하는 직원들도 몇 명 있다.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 아닌 순전히 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사실 나도 이기길 바란다. 그런데 지는 쪽에 걸은 건..."

한국이 패한다는 쪽에 돈을 건 직원의 변명은 이렇다. "우리가 이기면 이겨서 기분 좋은 거고, 지면 돈을 따니까 좀 덜 억울하다는 거다." 철저한 자기보호 주의다. 어차피 모든 직원들의 참여 속에 직원들의 단합을 위한 것. 어떤 스코어에 걸든 그것을 따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순수하게 즐기는 축구를 지향하기 때문이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관광정책과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태그:#월드컵, #황인성,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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