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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 자전거도로.
 섬강 자전거도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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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기후 변화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6월이 언제 이렇게까지 더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세월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6월이 이렇게까지 더웠던 적을 기억해내기 힘들다. 기후가 인간이 적응하기 힘든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 여름 기온은 또 얼마나 높이 치솟아 오를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한낮의 기온이 31도까지 치솟아 오르는 날, 그늘 한 점 찾아보기 힘든 섬강 자전거도로 위를 달린다. 이렇게 더운 날, 왜 사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길게 뻗은 자전거도로 위로, 멀리 신기루가 보인다. 신기루가 떠 있는 도로 한가운데가 마치 물웅덩이라도 파인 것처럼 출렁이고 있다. 그런데 그 물웅덩이마저 태양열을 받아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형국이다.

더위를 피할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자전거도로 양 옆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정경이 펼쳐져 있다. 자전거도로 주변이 온통 총천연색 꽃밭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이 자전거도로 아래 경사진 둑을 빼꼭히 뒤덮고 있다. 그 아래로는, 강가에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섬강이 흐른다. 한강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강이 4대강에 포함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풀숲과 모래톱 사이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려가는 강물이 그저 바라다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다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그 자전거도로에 그 꽃들과 그 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처럼 더운 날씨에 그 길을 그렇듯 한가롭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간현유원지, 야영장.
 간현유원지,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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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셤강은 어듸메뇨?"... 송강 정철을 감동시킨 섬강 풍경

끝이 잘 보이지 않게 곧게 뻗은 섬강 자전거도로.
 끝이 잘 보이지 않게 곧게 뻗은 섬강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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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 자전거도로는 지난해 말에 건설됐다. 이 자전거도로는 섬강 강줄기를 따라서 횡성과 남한강을 연결한다. 전체 길이는 약 50여 km다. 만약에 횡성이나 남한강에서 시작해 자전거도로 끝을 돌아 왕복을 하게 되면, 여행 거리가 100km 정도 되는 셈이다.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거리다. 하루 종일 여행을 해도 다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체력이 좋고 자전거를 타는 데 익숙한 여행자라면 반나절 만에도 여행을 마칠 수 있다. 그래도 100km는 하루 만에 여행을 끝내기에는 너무 긴 거리다. 자전거를 타고 내처 달리기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여행 거리를 적당한 선에서 줄여 잡는 게 좋다. 더구나 이 더운 여름날엔 체력을 지나치게 많이 소모하는 여행은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원주 간현유원지, 간현암과 하얀 백사장.
 원주 간현유원지, 간현암과 하얀 백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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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원주시내에 있는 간현유원지에서 시작한다. 간현유원지는 섬강자전거도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간현유원지에서 남한강과 만나는 지점까지는 약 22km이고, 횡성 쪽으로 자전거도로가 끝나는 지점까지는 약 25km이다. 이번 여행은 간현유원지를 떠나, 섬강이 남한강과 만나는 지점인 '흥원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으로 잡는다.

간현유원지 간현암, 암벽등반연습장. 암벽 등반을 준비하는 사람들.
 간현유원지 간현암, 암벽등반연습장. 암벽 등반을 준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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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현유원지는 섬강과 삼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국민관광지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 유원지는 겉보기에 산이 있고 계곡이 있고, 강과 모래사장이 있어서 다른 유원지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간현유원지는 겉보기와 달리 꽤 유서가 깊은 관광지이다. 야영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원주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섬강은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지나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철은 배를 타고 원주에 있는 강원 감영으로 가는 길에 섬강에 다다라서는, 눈앞에 펼쳐진 경치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섬강 주변에 펼쳐진 풍경에 반해 훗날 관동별곡을 쓰면서 '평구역(남양주) 말을 갈아 흑슈(여수)로 도라드니 셤강(섬강)은 어듸메뇨? 티악(치악산)이 여긔로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섬강과 삼산천이 만나는 곳에 간현암이 높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강가에 병풍이라도 친 듯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간현암은 암벽등산 동호인들이 등반훈련장으로 사용하는데, 때로 산악인들이 암벽을 위태롭게 기어오르는 걸 볼 수 있다. 목을 젖히고 올려다보는 암벽이 거의 직각에 가깝다. 그 암벽에 로프를 걸 수 있는 고리들이 수없이 박혀 있다.

섬강 자전거도로. 비가 내릴 경우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의 표지판.
 섬강 자전거도로. 비가 내릴 경우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의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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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발길이 드문 수변공원, 그늘이 부족한 자전거도로

섬강 자전거도로는 줄곧 강변에 접해 있다. 중간에 일부 일반도로로 우회하는 길이 나오지만,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다. 일반도로라고 해도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자전거도로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길가에 비교적 잘 설치돼 있다. 한눈을 팔지 않는 한, 길을 잃을 염려도 거의 없다. 섬강 자전거도로는 개통을 한 지 얼마 안 돼, 빛이 나는 듯 반질반질 잘 닦여 있었다.

섬강 자전거도로는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다. 그런데 이런 도로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자전거도로 위에서 그늘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늘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요즘처럼 날이 더울 때는 따갑게 내려쬐는 땡볕을 피해 쉬어갈 곳이 절실하다. 벤치는 있는데 그 벤치들이 햇빛 아래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그런 벤치에서는 단 일 분도 앉아 있기 힘들다.

더위를 피해 자동차 밑 그늘을 찾아 들어간 강아지들.
 더위를 피해 자동차 밑 그늘을 찾아 들어간 강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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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자전거도로마다 수변공원이라는 게 있다. 수변공원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라고 만든 공간이다. 하지만 자전거도로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 수변공원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 섬강 수변공원 역시 그늘이 별로 없다. 그 수변공원에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나무들이 이식이 잘못됐는지, 시커멓게 말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수변공원을 만들 예산을 차라리 자전거도로 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건 어땠을까?

그늘 한 점 찾아보기 힘든 자전거도로 위에서 그런 수변공원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갈증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이날 섬강 자전거도로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티 한 점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맑고 푸르렀다. 강물은 막히는 곳 하나 없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머리꼭지를 태우는 듯하는 강렬한 태양만 아니었으면,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꽃이 만발한 섬강 자전거도로.
 꽃이 만발한 섬강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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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에도 자전거여행자들은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이날 섬강 자전거도로 위로는 생각보다 많은 여행자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 모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 길 위에서,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종단여행을 떠난 대학생 둘을 만났다. 전날 인천을 떠나 이날도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온 그들 역시 타는 듯한 한낮의 더위에 몹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섬강 자전거도로에는 오르막이 거의 없다. 그나마 심박 수를 높일 일이 없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두서너 군데 오르막이 나타나지만, 그 길이가 매우 짧다. 가는 길 중간에 몇 군데 낙석 지대가 나타난다. 자전거를 타는 데는 주먹만 한 돌 하나도 치명적인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낙석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 걷거나, 우회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섬강.
 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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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로 변한 남한강,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섬강과 남한강 합수부.
 섬강과 남한강 합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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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운 탓에 간현유원지에서 남한강 합류 지점인 흥원창까지 가는 데 무려 3시간이 걸린다. 평소 같았으면 아무리 느리게 간다 해도,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렸을 거리다. 흥원창은 고려시대 조창이 있던 곳이다. 고려시대 전국에 산재해 있던 조창 중에 하나로, 흥원창은 강원도에서 생산한 조세 물품을 일정 기간 보관했다가 중앙으로 운반하는 중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흥원창은 조선시대에도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섬강을 따라 흥원창에 모인 조세 물품은 다시 남한강을 따라서 개성과 한양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흥원창은 꽤 깊은 역사적 유래를 간직한 곳이다. 조창이 있었던 만큼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그때의 화려했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 옛날의 영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남한강은 4대강 사업 이래, 원래 모습을 모두 잃어 버렸다.

흥원창이 있던 자리에 지금은 정자가 한 채 서 있다. 그 정자 안에 서서 남한강을 바라다보는데 어디에다 눈을 두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강 전체가 황량한 느낌이다. 강가에서 자라고 있던 그 많은 나무들은 모두 베어지고 없다. 그 강가에서 당연히 그 나무들을 서식처로 삼았을 동물들도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강물은 호수만큼이나 잔잔하다. 강을 '호수'로 만드는데,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강이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까? 흥원창을 떠나 섬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나무와 잡풀이 우거진 강변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남한강도 예전에는 섬강과 별로 다르지 않은 자연 환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섬강 자전거도로는 자연 그대로의 강과, 인간에 의해 마구잡이로 훼손된 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섬강이 남한강의 미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남한강.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남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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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강에 수영금지 표지판이 여기저기 서 있는 게 보인다. 여름이 되면, 강물에 몸을 적시려는 사람들이 늘기 마련이다. 섬강은 겉보기에 별로 깊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 다른 강과 마찬가지다. 섬강에서 수영금지 감시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그가 지키는 구역에서만 매년 두 명 정도가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단다. 자전거여행을 하다 말고 갑자기 중간에 강가로 내려가 수영까지 즐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낙석지대를 피해 돌아서 갈 것을 권하는 현수막.
 낙석지대를 피해 돌아서 갈 것을 권하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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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익사 사고 말고도, 자전거여행자가 한여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데 주의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무서운 건 일사병과 열사병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머리가 뜨겁다고 느껴지거나 어지럼증이 있다고 여겨질 때는 무조건 그늘이 있는 곳에서 쉬어가야 한다. 자외선도 골칫거리다.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노출을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자외선 차단 지수와 등급이 높은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해야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만큼 평소보다 더 자주 더 많은 물을 마셔야 한다. 물만 마시면 체내 염분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중간에 염분을 보충하는 일도 고려해야 한다. 섬강 자전거도로 위에서는 물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 더운 날에 마실 물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섬강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그 전에 미리 마실 물을 충분히 준비해 가는 것이 필수다.

섬강 자전거도로에는 더러 난간이 없는 구간이 있다. 이런 곳에서 한눈을 팔다가는 잘못해서 자전거도로 아래로 추락을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섬강 자전거도로의 제한 속도는 30km다. 하지만 30km도 빠르다. 그보다 더 낮은 속도로 달리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회전이 심한 구간이 자주 나온다. 이런 곳에서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를 미처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자전거여행에는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섬강 자전거도로. 이렇게 그늘이 짙은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섬강 자전거도로. 이렇게 그늘이 짙은 구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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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섬강, #간현유원지, #남한강, #흥원창,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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