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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3종류의 지도로 확인할 수 있는 건 노무현 정부가 남북공동어로구역 설정에 있어 'NLL을 기점으로 남북 등면적' 원칙을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이후의 각급 군사회담에서 변함없이 지켰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해 남북정상회담 전인 2007년 8월 18일 회담 대책회의에 논의된 내용을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가 왜 남북군사회담 결렬을 감수하면서까지 'NLL 사수'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1 정상회담 준비회의 '평화협정 체결 통한 NLL 남북 공인' 구상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뉴한반도 비전-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 218쪽 중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뉴한반도 비전-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 218쪽 중
ⓒ 백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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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8일 청와대에선 문재인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남북정상회담 준비회의가 열렸다. 청와대 안보분야 관계자들과 결막염으로 불참한 김장수 국방장관을 대신해 김관진 합참의장,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국가정보원 산하 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선임연구위원의 '서해 평화·번영벨트'라는 제목의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 설정방안이 논의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 방안으로 'NLL 불거론' → 'NLL 묵시적 인정' → 'NLL의 남북 해상경계선 공인' 3단계를 제시했다. 

NLL을 남북한 간 의제로 삼는 걸 피하면서 실제로는 NLL을 중심으로 한 남북 평화·경제협력을 확대하면서 평화를 유지해가면, 북한군의 NLL무력화 시도를 원천차단하면서도 '묵시적 인정'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방안이었다.

마지막 3단계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완성하고 인천-해주-개성 삼각지대 형성 등으로 '북부수도권 남북경제협력벨트'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이 단계에선 한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묵시적 인정' 상태에 있는 NLL을 남북이 인정하는 해상경계선으로 공식화한다는 구상이었다. '영토선 논쟁이나 국제법적 한계를 넘어 NLL을 남북의 공식 해상경계선으로 획정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설정했던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남북 간에 어떤 협상, 어떤 회담에서라도 NLL 경계선 재설정 문제는 일절 없다"고 언급했던 것이나 김장수 국방장관을 대리해 참석했던 김관진 합참의장이 국방부 복귀 직후 "청와대 회의에 가보니 NLL은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고 보고한 데서 이날 청와대 회의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민간인 전문가로 당시 회의에 참석한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회의 때 여러 사람들이 NLL과 관련한 의견을 밝혔지만, 정상회담에서 의제화 할 경우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직접 의제화는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의제화 하지 않는다는 것과 'NLL을 포기한다'는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10월 새누리당은 이런 내용을 정반대로 해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근거 중 하나로 삼기도 했다. (관련기사 : "NLL 공식경계선 만들자"를 '무력화 논의'로 왜곡)

#2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NLL 남북 등면적' 지도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14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한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를 공개했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14일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한 '서해평화특별지대' 지도를 공개했다.
ⓒ 윤호중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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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초반, 국정원이 공개한 정상회담 회의록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이 주장하는 NLL과 우리(북측)이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사이에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하자'고 제안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가 높아 NLL을 건드릴 순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반복하면서 버텼다. 노 대통령은 대신 'NLL을 평화·경제지도로 덮자'는 구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공동어로구역을 어디에 설정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해 북방(한계선, NLL), 군사분계선(북측) 경계선을 쌍방이 다 포기하는 법률적인 이런 거 하면…"이라면서 NLL 관련 문제를 회담 의제화할 낌새를 보였다. 이에 노 대통령은 "서해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기로 하고 그것을 가지고 평화문제, 공동번영의 문제를 다 일거에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거기에 필요한 실무 협의를 계속해 나가면 내가 임기동안에 NLL문제는 다 치유가 된다"고 말하며 의제화를 제지했다. 8월 18일의 대책회의 논의 내용 중 1단계 'NLL 불거론' 방침에 따른 발언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오후 회담이 끝나갈 즈음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내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 중에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내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라며 보따리를 건넸다. 이 안에는 3개의 문건이 들어있었고, 그 중 '남북한 경제공동체 구상' 문서에는 남측이 구상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표시한 지도가 포함돼 있었다. 이 지도에는 'NLL을 기점으로 남북 등면적' 원칙이 적용된 4개의 공동어로구역이 표시됐다. 회담장에서 공동어로구역 설정안을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남측의 'NLL을 기점으로 남북 등면적' 방침을 실질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3 대폭 북상한 '해상경비계선' 제안한 북측 타협시도에도 'NLL 사수'는 여전

2007년 12월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남북공동어로 및 평화협력지대 설정안. 북측이 1999년 9년부터 주장한 서해군사분계선 보다 훨씬 북상한 '12해리 영해선'과 서해5도 북쪽으로 그어진 북측 해상경비계선이 제시돼 있다. 북측은 '12해리 영해선'과 남측의 NLL 사이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것을 주장했다.
 2007년 12월 남북장성급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남북공동어로 및 평화협력지대 설정안. 북측이 1999년 9년부터 주장한 서해군사분계선 보다 훨씬 북상한 '12해리 영해선'과 서해5도 북쪽으로 그어진 북측 해상경비계선이 제시돼 있다. 북측은 '12해리 영해선'과 남측의 NLL 사이에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할 것을 주장했다.
ⓒ 윤호중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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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7~29일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김장수 국방부장관과 북측의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만나 공동어로구역 설정에 대한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결렬됐다. 남측 안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건넨 보따리 속 지도에서 크게 변화된 점 없이 'NLL을 기점으로 남북 등면적' 원칙이 그대로 적용됐다.

2007년 12월 13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7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선 남북 회담대표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기자들에게 공개된 전체회의 모두발언 부분에서 북측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공동어로구역을 표시한 지도를 빔프로젝터로 띄웠다가 남측 대표단이 빔프로젝터를 손으로 막는 등 제지하자 벌어진 일이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1999년 9월부터 주장해온 해상군사분계선보다 북상한 '12해리 영해선'과 이보다 더 북상한 서해5도 북쪽으로 그려진 '해상경비계선'을 제시했다. '12해리 영해선'과 NLL 사이의 '해상경비계선'에  걸쳐지도록 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주장이었다.

북측으로선 해상군사활동의 범위를 이론적으로는 축소한 것이었고, '우리도 양보했으니 남쪽도 양보하라'는 제안이었지만, 남측은 'NLL 남쪽으로 경계선이 설정돼 NLL이 무력화된다'는 이유로 원래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회담은 결렬됐고, 이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관련 군사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이처럼 회담 대책회의 단계에서부터 정상회담, 군사회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게 'NLL 변경은 없다'는 원칙이었다. 이는 정상회담 의제 발굴·기획단계에서부터 'NLL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립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태그:#공동어로구역, #NLL,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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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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