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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연합회의 제7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참가한 이상운 씨
 환자단체연합회의 제7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참가한 이상운 씨
ⓒ 엄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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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장애인이라 불리며 사는 것이 달가운 사람이 있을까?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그 장애가 자신의 부주의나 실수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터. 다른 이들에게는 달콤한 일상이 자신에겐 비수로 돌아와 죽음이라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과연 우리는 올바로 살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튼튼하고 평범한 청년이었던 31살의 이상운씨. 그 역시 병을 예방하기 위한 주사를 맞은 것뿐인데 한순간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큰일을 겪었다.

예방을 위한 주사, 삶의 독이 되다

2010년 7월에 두산인프라코어에 입사한 이상운씨는 누가 보아도 신체건강하고 활발한 청년이었다. 단 한 번도 늦잠 때문에 지각을 해본 일이 없으며 새벽에 영어 학원을 다닐 정도로 부지런한 삶을 살았다. 또 그는 학생, 교직원, 관공서 재직자, 연구원 등을 대상으로 전자캐드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각종 재료를 집필하는 등 그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2009년 전 세계를 들끓게 만들었던 신종플루 바람을 타고 이씨에게 불행이 닥쳤다. 그가 근무 중이었던 두산인프라코어는 해마다 전 직원에게 반드시 계절 독감 예방주사를 의무적으로 맞도록 했다. 상운씨 역시 그해 11월 동료들과 함께 예방접종을 했다.

이상운씨의 생활이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주사를 맞은 후 졸음이 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평소 별다른 건강에 이상이 없던 이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고, 2011년 2월 언론을 통해 예방접종으로 인한 기면병 발생 사례를 접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기면병 여부를 의심하게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졸거나 지각을 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없었고 급기야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하거나 저도 모르게 조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처음엔 10분, 20분이었지만 잠시 눈 감았다 싶은데도 두세 시간이 지난 경우도 생겼죠. 그때부터 정말 제 자신에 대해 심각한 상태라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혹시 기면병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상운씨는 병원에서 기면증 치료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상태는 악화되었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져 쓰러지기도 하고 운전 중에 졸음으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아졌으며 무엇보다 간질과 같은 탈력 발작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화되는 상황에 다시 병원을 찾은 이상운씨는 2011년 7월 26일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서 기면병 확진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계절 독감 예방주사의 부작용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는 2011년 9월 다시 한 번 계절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고 결국 회사생활은커녕 개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9월에 예방주사를 다시 맞게 된 즈음에 교통사고가 났어요. 증세가 심각해지는 것도 예방주사 때문이 아니라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한 기면증은 국내에서 발견된 사례가 없었기에 의사들 역시 해외 사례만 이야기할 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심해지는 증상에 홀로 해외 사례와 자료들을 찾아가며 자신의 증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 이상운씨는 2012년 5월 삼성서울병원에서 기면병 및 탈력발작의 진단과 더불어 '졸음 때문에 낮의 의식청명도의 감퇴가 있거나 야간수면장애가 있다. 일상생활 동작에 상당한 제한이 있고 보호자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판단을 받았다. 그는 최종 노동력 상실율은 무려 69%라는 평가도 받았다.

고통에 고통을 더한 세상의 편견

계절독감예방접종 포스터.
 계절독감예방접종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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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씨는 자신의 병과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서울의 크다는 병원은 모두 순회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더욱 답답한 것은 자신의 병명이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며, 이로 인해 어떠한 증상이 일어나는지 의사들에게 듣기보다 자신이 의사에게 설명하고 알려주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의사들에게 기면병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에게만 보일만한 심각한 증세이며 아마도 자기가 본 환자들 중에 제가 제일 증상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답답하기는 하지만 국내 사례가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이해하기도 했죠. 하지만 예방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밝히는 것이 무언가 큰 대가를 바라는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신의 병의 원인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에게 대가가 그리 중요할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상운씨는 실제로 한 병원의 의사에게 "내가 10억 원을 줄테니, 제 병 가져가실래요"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보건소 그리고 방송 등에 자신의 사연과 억울함을 알리고 호소하는 1년여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2013년 2월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장애3급으로 결정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또 영등포구 보건소를 통해 예방접종피해보상도 받았으며 4월에는 신경과 전문의로부터 기면병이 발병하였다는 점과 탈력발작이 매우 심해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확진 받았다.

끝나지 않은 싸움, 길고 긴 여정

이상운씨는 2013년 2월 영등포보건소를 통해 예방접종피해보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상운씨는 2013년 2월 영등포보건소를 통해 예방접종피해보상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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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판정만 받게 된다면 그리고 제 기면증의 원인이 예방접종 부작용이라는 것만 밝히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아주 먼 거리를 두었다. 이상운씨는 분명 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보상비도 받았지만, 그것은 정말 보상기준의 최저 중에서도 가장 낮은 보상기준에 해당됐다. 그 이유는 현재 장애는 외부장애만을 인정하고 있으며 내부장애는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있는 경우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장애인도 판정받기 어려운 최종노동력상실율 69%로 밝혀졌음에도 온전한 혜택과 권리를 주장하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인 것이다.

"기면병 환자의 90%는 약물치료를 받으면 그 효과가 나타나죠, 하지만 나머지 10%정도는 그러지 못해요. 특히 저는 그 10% 중에서도 가장 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약물치료에 대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질 않습니다."

현재 그가 복용하고 있는 약은 마약과 같은 성분이 포함될 정도로 강도가 세다. 또 이 약의 부작용마저 만만치 않은 증상을 나타낸다. 급격히 살이 찌는 것뿐만 아니라 어지러움과 침마름 그리고 불면증도 유발한다. 특히 각종 성인병 유발과 우울증,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경우가 생겨 모든 상황에 대해 날카롭게 대하는 등 성격마저 공격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약마저 먹지 않는다면 그 순간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는 상황에 놓이기에 그 고통과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약을 끊을 수 없다.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세 가지 바람

이상운씨 역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증상이 심해지며 매 순간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기면증환우들의 모임에 나가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기면증 환자들은 약을 먹지 않으면 특유의 표정이 나와요.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여학생을 만났고 그 얼굴에서 특유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살아봐야겠다. 세상과 부딪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을 다진 이상운씨는 이후 더욱 자신의 병을 알리고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세 가지 바람이 생겼다.

첫째, 중증 기면증 환자의 장애인 등록이 실현되는 것이다.

"저는 기면증 중에서 중증에 속합니다. 또한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해 69%의 노동력상실이라는 판정을 받아 회사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가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병원에서도 기면증이 중증이라 해도 기면증으로 장애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합리함을 넘어 저와 같은 피해자들이 장애인 이전에 한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바른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산재인정이다.

이씨가 근무하던 두산인프라코어는 해마다 전직원에게 의무적 예방접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씨가 근무하던 두산인프라코어는 해마다 전직원에게 의무적 예방접종을 받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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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운씨는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회사에서 해마다 일괄 접종하도록 하는 예방접종을 통해 기면증이라는 부작용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방접종 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 법제화 되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또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제 갓 서른이 넘은 앞길이 창창한 청년에게 벌어진 일은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이상운씨를 보았을 때 너무도 훤칠한 모습에 저렇게 건강해 보이는 청년에게 그런 병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심각성이 마음으로 전해왔다.

"우리나라는 건강하다가 졸리는 증상이 오면 단지 내가 많이 피곤하구나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주위에서도 피곤하구나 혹은 요즘 게을러졌다며 타박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졸음이 아니라 기면병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사례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졸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저와 같은 피해를 통해 기면병을 얻게 된 이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사회적인 인식까지 바뀌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10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 진행한 제7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참석한 이상운씨의 귀가 길을 걱정하는 저에게 이상운씨는 "갈 때는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발작과 졸음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상운씨.

다행인 것은 지난 7월 12일과 22일 각각 류지영 새누리당 의원과 최동익 민주당 의원이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 신설에 관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보다 많은 의약품 부작용 피해자들이 힘겨운 세상살이를 이겨낼 가느다란 희망의 끈 하나를 더 붙잡게 될 것이다.

작은 변화들을 통해 이상운씨와 같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온전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변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본다.


태그:#한국환자단체연합회, #샤우팅카페, #기면증, #예방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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