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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된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또다시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작권은 이미 2012년 4월 17일 환수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의해 2015년으로 연기되더니, 박근혜 정부에 의해 또다시 연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작권 환수는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이었다. 그런데 취임 1년도 되지 않아 공약을 파기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자주국방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직접 행사해야 할 전작권을 받지 않겠다며 수십 년간 겸양을 표시하는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 능력이 확충될 때까지는 미군이 전작권을 행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면서도 그것을 명분으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행동이다. 위기가 고조될 때는 군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인데도, 이런 상황에서 군에 대한 통제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탕샤오이.
 탕샤오이.
ⓒ 위키피디아백과사전 중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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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에 초대 중화민국 총리를 지낸 인물이 있다. 탕샤오이(한국 발음은 당소의)라는 외교관 출신의 청나라 정치인이다. 조선에 대한 열강의 경쟁이 가장 극심했던 1880년대 중반부터 1890년대 후반까지 조선에서 외교관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조선 근무 시절의 상관인 위안스카이(한국 발음은 원세개)는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에 이어 황제에 오르고 탕샤오이 본인은 중화민국 총리에 오른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조선에 근무한 청나라 외교관들은 여타 외교관들에 비해 역량과 관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바로 그 탕샤오이가 이명박 정부의 전작권 환수 연기와 박근혜 정부의 환수 연기 움직임을 봤다면, 아마 "한심하다!"며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래에서 소개할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일전쟁 직후 관계회복에 나선 조선-청나라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신하국과 황제국의 관계였다. 그런데 1894년에 일본이 조선 정부를 장악하고 청나라를 상대로 청일전쟁을 도발하는 과정에서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 양국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재개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조선 입장에서는, 국교 단절로 인해 북방 주민들의 주식인 만주산 콩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또 청일전쟁 와중에 일본 시장을 상실한 인삼업자들을 위해 청나라 시장을 뚫어줘야 했기 때문에 조선 입장에서는 국교 회복이 시급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조선에서 활동하는 화교 상인들을 보호하고 조선에 빌려준 차관을 받아내자면 조선과의 관계부터 회복해야 했다.

관계 재개의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조선과 청나라가 똑같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재개할 것이냐 하는 점에서는 양국이 의견을 달리했다. 조선은 '기존의 황제국-신하국 관계가 파기되었으니 상호 대등하고 평등하게 수교하자'는 입장을 세웠다. 

청나라의 입장은 좀 미묘했다. 전쟁에 패해 조선에서 쫓겨난 마당에 황제국-신하국 관계를 복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상호 평등한 관계를 맺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청나라는 정치관계가 아닌 상무관계를 맺는 수준에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다. 청나라가 희망한 관계는 200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과 대만이 맺고 있는 관계와 유사했다. 

청일전쟁 이전부터 조선에서 근무했던 탕샤오이는 전쟁이 끝난 뒤 임지에 복귀했다. 청일전쟁 직전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위안스카이가 '근무지를 사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조선을 탈출한 뒤부터 탕샤오이는 조선 문제에 관한 실무 책임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임무는 '조선과의 관계를 재개하되, 그 관계를 어떻게든 상무관계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조선과 수교할 수 없는 이유

관계 회복을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던 상태에서 1896년 6월 17일 탕샤오이와 조선 통역관 박태영의 회동이 이루어졌다. 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오늘날의 외교통상부) 참의인 변원규가 고종의 명령을 받은 뒤 박태영을 탕샤오이에게 파견함으로써 성사된 만남이었다.

이때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에 있었다. 전년도에 벌어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일본의 간섭을 피할 목적으로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었다. 그래서 탕샤오이를 따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변원규를 통해 박태영을 탕샤오이에게 파견했던 것이다.

러시아공사관. 지금은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다.
 러시아공사관. 지금은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다. 서울시 중구 정동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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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조선문제 책임자인 북양대신 왕원샤오에게 보고된 박태영-탕샤오이 회담 내용은 대만 중앙연구원이 1972년에 편찬한 <청계 중·일·한 관계 사료> 제8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청계(淸季)는 '청나라 말기'를 의미한다. 이 날 박태영과 탕샤오이 사이에서는 상당한 설전이 있었다. 

선공은 박태영한테서 나왔다. 그는 "조선과 청나라가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할지 모릅니다"라며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자고 제안했다. 이것은 변원규를 통해 전달된 고종의 메시지였다. 참고로, 청일전쟁 직후의 국제사회에서는 일본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청나라와 조선이 관계 회복을 지지할 필요가 있었다.

박태영의 말을 들은 탕샤오이는 "조선 군주가 러시아 공사관의 손님이 됐으니, 어찌 독립국 군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독립국이 아닌 나라와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응수했다. 군주가 왕궁을 버리고 외국 공사관에 몸을 의탁한 상태에서 어떻게 외국과 대등한 조약을 체결할 수 있겠느냐며 핀잔을 준 것이다.

그러자 박태영은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러 간 민영환이 러시아 병사 3천 명을 조선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오면 우리 군주께서 반드시 환궁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고종이 왕궁으로 돌아가면 조약을 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참고로, 당시 러시아 군대는 한양과 인천 등지에 주둔하고 있었다. 민영환이 요청한 것은 추가 파병이었다.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 러일전쟁 때 중국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일본 군인(왼쪽)들과 만나는 장면. 도쿄에 있는 세이토쿠 기념 회화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일본 출판사인 세카이분카가 1967년에 펴낸 <일청·일러 전쟁>이란 책에 실려 있다.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 러일전쟁 때 중국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일본 군인(왼쪽)들과 만나는 장면. 도쿄에 있는 세이토쿠 기념 회화관에 전시된 이 그림은 일본 출판사인 세카이분카가 1967년에 펴낸 <일청·일러 전쟁>이란 책에 실려 있다.
ⓒ 세카이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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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환궁하면 독립국의 체면도 서고 조약 체결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박태영의 말을 듣고 탕샤오이는 다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다른 나라 군대가 당신 나라의 도성에 주둔한다는 것은 당신 나라가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군대 없이는 독립할 수 없다는 뜻이고, 또 당신 나라 군주에게 자주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도대체 (러시아의) 속국과 무엇이 다른 겁니까?"

탕샤오이의 말은 '외국군이 도성에 주둔하면 외국의 통제를 받게 되므로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으며, 청나라는 독립국가가 아닌 나라와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군주가 왕궁으로 돌아간다 해도 외국의 군사적 통제를 받는 한은 독립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탕샤오이의 말을 넓게 해석하면, 외국의 군사적 통제를 받는 나라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도에 외국군을 주둔시키는 나라뿐만 아니라 외국군의 전작권에 의존하는 나라도 모두 독립국이 아닌 것이다. 이런 나라들을 상대로 탕샤오이는 "너희가 그러고도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느냐?"며 질책한 것이다. 이 말을 전달받은 고종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미국이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전작권을 받지 않겠다며 겸양을 표시하는 것은 스스로 독립국가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해치는 행위이므로, 그보다 더 큰 반국가적 행위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영토나 영해를 외국에 헌납하는 것 못지않은 범죄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그:#전작권, #전시작전통제권, #탕샤오이, #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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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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