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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인부와 주민들이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설치된 임시주거시설로 이삿짐을 옮기고 있다.
 6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인부와 주민들이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 설치된 임시주거시설로 이삿짐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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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지나갔지만 하늘은 좀처럼 해를 내놓지 않았다.

5일 찾은 서울시 영등포구의 쪽방촌. 주민 몇몇이 파란색 박스에 이삿짐을 담고 있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때문이다. 다음날인 6일, 쪽방촌 31가구의 이사가 예정돼 있었다. 이들은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석달 동안 쪽방촌 내에 마련된 임시거주시설에서 생활을 이어간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던 5일 오후,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쪽방 사이를 오가다 소형 아날로그 텔레비전 앞에 우두커니 있는 강진수(가명) 할아버지를 만났다. 불 꺼진 할아버지의 쪽방은 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밤낮이 다르지 않았다. 텔레비전 빛이 힘없이 빠져나오는 문틈 새로 "할아버지는 이삿짐 안 싸세요?"라고 물었다.

쪽방촌에 살고 있는 강진수(가명)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공공근로를 한다. 할아버지의 쪽방은 한 평 남짓, 방에서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이긴다. 몸을 쭉 펼수 있는 공간도 안된다.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임시주거시설로의 이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중풍 때문에 이삿짐도 못싸고 있다.
 쪽방촌에 살고 있는 강진수(가명)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공공근로를 한다. 할아버지의 쪽방은 한 평 남짓, 방에서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이긴다. 몸을 쭉 펼수 있는 공간도 안된다.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임시주거시설로의 이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중풍 때문에 이삿짐도 못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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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짐 못 싸."
"왜요?"
"중풍 때문에 한쪽 손을 못 써."

"내일 아침에 와서 짐 싸드릴게요"라고 약속하고 여러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집 복도를 빠져나왔다.

이사 앞둔 쪽방촌... 도망간 세입자들

쪽방촌의 골목에 "8월 6일(화) 임시거주시설로 이사가 있겠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오늘은 이사하는 날 쪽방촌의 골목에 "8월 6일(화) 임시거주시설로 이사가 있겠다"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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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곳곳에 이사 안내문이 붙었다. 제법 큰 글씨로 된 다섯 줄짜리 안내문은 붉은 글씨로 '8월 6일(화)' '이사' '이사 준비', 이렇게 세 군데을 강조하고 있었다. 강 할아버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이사 대상자들은 이날 짐을 싸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대부분 1평도 안 되는 쪽방의 1인 가구지만 이것저것 담다 보니 이사 박스 여러 개가 채워졌다. 강 할아버지 옆방의 아저씨는 "부자들은 이사해서 웬만한 건 다 새 걸로 바꾸잖아. 원래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삿짐이 많은 법이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유기용(가명)씨는 속옷차림이었다. 작은 창문은 있지만 통풍이 전혀되지 않는 탓에 흐르는 땀 때문이었다.
 유기용(가명)씨는 속옷차림이었다. 작은 창문은 있지만 통풍이 전혀되지 않는 탓에 흐르는 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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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쪽방에 살면서 동시에 방을 빌려주고 세를 받는 이미희(58, 가명) 아주머니는 이날 뿔이 나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방세가 밀린 세입자 여럿이 도망을 간 것.

"얼마가 밀렸는지도 몰라. 나쁜 놈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라면 박스에 버릴 거리를 담아 나온 아주머니는 투덜거리며 박스를 내던졌다. 그러더니 박스 사이에서 쇠로 된 대접 하나를 다시 집어 들었다. 대접엔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과 잡다한 쇳덩이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구석에서 대접 안의 동전을 골라내던 아주머니는 잠시 후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와 옆 방 아저씨와 나눠 먹었다.

변덕스런 날씨 덕분에 비와 햇빛이 쪽방촌 바닥에 번갈아 스몄다. 습기와 열기 탓에 이삿짐을 싸는 쪽방촌 사람들의 윗옷에 소금기가 쌓여갔다.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200가구 혜택

쪽방촌 이사 도중 문제가 생겼다. 꺾인 통로에서 냉장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냉장고의 방향을 몇번씩 바꿔가며 어른 한명이 겨우 구부려야 통과 할 수 있는 통로를 나오고 있다.
▲ "예전에 이 큰 냉장고가 어떻게 들어간거야?" 쪽방촌 이사 도중 문제가 생겼다. 꺾인 통로에서 냉장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냉장고의 방향을 몇번씩 바꿔가며 어른 한명이 겨우 구부려야 통과 할 수 있는 통로를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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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등포 쪽방촌의 이사 풍경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가 영등포구청, 건물주, 광야교회 등과 협력해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하면서 겨우내 95가구가 리모델링을 마쳤다. 당시 리모델링 대상 주민들은 추위 속에서 임시거주시설로 이사를 했다. 서울시는 올해와 이듬해에 각각 100가구씩 총 200가구를 대상으로 추가 리모델링을 실시할 계획이다. 6일 이사한 쪽방촌 31가구는 올해 리모델링이 계획된 100가구 중 첫 대상자들이다.

이삿날인 6일 이른 오전, 다시 영등포 쪽방촌을 찾았다. 두터운 구름 뭉치가 전날보다 더 짙게 회색빛을 냈다.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가니 역전파출소가 나왔다. 고개를 조금 쳐들자 '청소년 출입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조금 더 가니 똑같은 팻말 하나가 더 나왔다. 비로소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임시거주시설이 보였다. 서울시가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하면서 만든 이 시설이 이날 쪽방촌 사람들의 이사 행선지다. 빨강, 노랑, 파랑 등 원색의 컨테이너박스들은 장난감 '레고'를 떠오르게 했다.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에 설치된 임시거주시설. 6일 쪽방촌 2차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해당 주민이 이사를 하던 중 폭우가 쏟아져 이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영등포역 고가차도 아래에 설치된 임시거주시설. 6일 쪽방촌 2차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해당 주민이 이사를 하던 중 폭우가 쏟아져 이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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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3개의 컨테이너 박스들을 조립한 3층(약 8m)짜리 임시거주시설에는 1.5평의 거주공간 36개가 마련돼 있다. 공용 샤워실, 조리실, 화장실, 관리실, 창고 등도 보였다. 시설 곳곳엔 '희망 서울, 국민을 가족처럼 행복중심 영등포'라고 적혀 있었다.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 컨테이너 박스들 덕분에 층간 소음은 없어 보였다. 대신 바로 위의 영등포역 고가차도와 옆의 영등포역 기찻길이 종일 소음을 뿜어냈다.

좁은 방에 가구 배치, '퍼즐 맞추기'가 따로없네

전날 이삿짐을 싸주기로 약속한 강 할아버지 방을 찾았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자활센터에서 공공근로를 마치고 오전 9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이불 두 채와 베개 하나, 위아래 합쳐 옷 두 벌, 선풍기, 전기밥솥을 이사 박스에 담았다.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함께 할아버지 이삿짐의 전부였다. 아침에 산 목장갑이 민망해졌다. 박스를 임시거주시설로 옮겼다. 냉장고와 텔레비전은 광야교회 영등포쪽방상담소가 고용한 젊은 쪽방촌 주민들이 할아버지의 방 앞까지 옮겨다 줬다. 할아버지는 김치가 걱정된다며 연신 냉장고의 상태를 물었다.

강진수(가명) 할아버지가 공사기간 동안 머물게 될 집은 빨간 컨테이너박스다. 이사를 마치고 홀로 이사한 새방으로 들어갔다.
 강진수(가명) 할아버지가 공사기간 동안 머물게 될 집은 빨간 컨테이너박스다. 이사를 마치고 홀로 이사한 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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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거주시설 방 한 쪽 벽면은 수납장으로 메워져 있었다. 무작정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넣으니 누울 자리가 안 나왔다. 전기 플러그도 두 개뿐이었다. 우선 할아버지가 걱정하는 김치를 위해 냉장고 코드를 플러그에 꽂았다. 이후 멀티탭을 구해 텔레비전, 냉장고, 선풍기, 전기밥솥 등을 알맞게 배치했다. 할아버지의 누울 자리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선 마치 퍼즐을 하듯 물건들을 이리저리 옮겨대야 했다.

퍼즐이 맞춰지고 할아버가 이부자리 위에 누웠다. 내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기자를 대하던 할아버지는 냉장고가 잘 돌아가는 걸 확인하자 "고맙다"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이삿날 결국... 병원에 실려간 최씨 아저씨

최철순(가명) 아저씨의 쪽방,  최 아저씨의 집은 곰팡이, 악취, 거미줄, 바퀴벌레 등 으로 뒤덮혀 있었고 리모델링을 위한 이사를 마쳤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강원도 춘천의 예현병원으로 후송됐다.
 최철순(가명) 아저씨의 쪽방, 최 아저씨의 집은 곰팡이, 악취, 거미줄, 바퀴벌레 등 으로 뒤덮혀 있었고 리모델링을 위한 이사를 마쳤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강원도 춘천의 예현병원으로 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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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사가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미리 임시거주시설의 열쇠를 받아 간 김미옥(가명) 아주머니는 전날 밤 외출을 한 뒤 자취를 감췄다. 이사를 해야 하는데 당사자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날 이사가 끝날 때까지 아주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최철순(54, 가명) 아저씨였다. 이 아저씬 사전취재를 위해 지난달 31일 처음 쪽방촌을 찾았을 때부터 기자의 핵심 취재 인물이었다. 산업재해를 당한 후 쪽방촌에 들어온 아저씨는 손발에 부종이 있었고, 무릎도 좋지 않아 보였다. 제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이던 그를 며칠 더 지켜보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도 알게됐다

주민과 인부들 사이로 최철순(가명) 아저씨가 앉아있다. 이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를 보여 격리돼 있다가 오후 2시께 강원도 춘천의 예현병원으로 이송됐다.
 주민과 인부들 사이로 최철순(가명) 아저씨가 앉아있다. 이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를 보여 격리돼 있다가 오후 2시께 강원도 춘천의 예현병원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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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살고 있는 쪽방의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언제 사용했는지 가늠할 수 없는 냄비가 방 입구에 굴러다녔고, 주변엔 담배꽁초와 바퀴벌레가 놀고 있었다. 새까만 이부자리 위 곳곳엔 거미줄이 보였다. 방에 있는 물건 중 유일하게 하얀 것은 교회에서 나눠 준 올해 달력 뿐이었다. 직관적으로 '취재고 뭐고 청소가 먼저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리모델링 덕분에 따로 청소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정작 이날 이사를 돕던 인부들이 질겁을 하고 나섰다. 짐을 빼며 인부들이 본 방 곳곳은 기자가 며칠 둘러본 것보다 훨씬 심했다. 결국 영등포쪽방상담소는 아저씨에게 치료와 요양이 필요하다고 판단, 아저씨를 강원도 춘천의 예현병원으로 이송했다. 가까운 보라매병원과는 달리 상황이 비교적 좋지 않은 경우 가는 병원이다. 아저씨는 오후 2시께 구급차를 타고 춘천으로 떠났다.

"난 쪽방 못 떠나"

 6일 낮 1시께 쪽방촌 하늘이 시커멓게 뒤덥히고 폭우가 쏟아졌다. 이사를 하던 한 주민이 우산을 쓰고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6일 낮 1시께 쪽방촌 하늘이 시커멓게 뒤덥히고 폭우가 쏟아졌다. 이사를 하던 한 주민이 우산을 쓰고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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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마무리 돼 가던 정오, 짙은 먹구름이 비가 돼 쏟아졌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였다. 쪽방촌 곳곳에 물이 고였고, 쪽방 건물의 처마는 세차게 빗물을 토해냈다. 잠시 짐 옮기는 작업이 중단됐다.

비는 오후 3시께가 돼서야 멈췄다. 남아 있던 마무리 작업이 진행됐고 얼마 안 있어 이날 이사가 마무리됐다. 장마 후 가장 강한 햇볕이 쪽방촌을 내리쬐고 있었다.

강진수 할아버지를 포함해 29가구가 이날 임시거주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원래 계획인 31가구에서 김미옥 아주머니와 최철순 아저씨를 제외한 숫자다. 이들은 석 달 정도 이곳에 머물다가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면 원래 살던 쪽방으로 되돌아 간다.

이정호(가명)씨가 이사 한 자신의 방에서 짐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씨는 소아마비 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불편한 오른쪽 다리 탓에 신발이 모두 휘어졌다.
 이정호(가명)씨가 이사 한 자신의 방에서 짐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씨는 소아마비 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불편한 오른쪽 다리 탓에 신발이 모두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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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다시 돌아갈 쪽방은 전보다 좀 더 나아져 있을까. 지난 겨울 리모델링을 마친 쪽방을 둘러봤다. 새 문이 달렸고, 장판과 도배 작업이 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는 소방·전기 등 안전시설, 난방 및 단열시설, 공동 화장실, 주방의 환경에도 손 쓰겠다고 밝혔다.

컨테이너 박스 곳곳엔 영등포쪽방상담소에서 붙여 놓은 "우리 한 번 해 봅시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빨리 이사를 마치고 강아지 두 마리와 쉬고 있던 이미희 아주머니에게 "언제 좋은 집으로 이사갈 거예요?"라고 물었다.

"평생을 여기서 살았는데…. 난 이 쪽방을 못 떠나."

이사를 마친 이미희(가명) 아주머니가 "강아지 두 마리와 사진을 찍고 싶다"며 포즈를 취했다. 사별한 남편의 사진을 이사 후 가장 먼저 벽에 걸었다. 이 아주머니는 "추억이 있고 삶이 있었던 쪽방촌 이제는 못떠나"며 눈시울을 적셨다.
▲ "나는 쪽방촌 못떠나" 이사를 마친 이미희(가명) 아주머니가 "강아지 두 마리와 사진을 찍고 싶다"며 포즈를 취했다. 사별한 남편의 사진을 이사 후 가장 먼저 벽에 걸었다. 이 아주머니는 "추억이 있고 삶이 있었던 쪽방촌 이제는 못떠나"며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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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공채6기 신입 기자들로 구성된 '독립편집국'에서 생산한 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독립편집국'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립편집국'은 오마이뉴스 모든 기자들이 뉴스게릴라본부(편집국)에서 독립해 1인 혹은 팀을 짜서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기획-취재-생산합니다.



태그:#영등포, #쪽방촌, #이사,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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