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를 즐겨주세요, 행정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지난 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노원구의 무소속 국회의원 안철수에게 한 말이다. <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의 저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날 오후 7시, 홍대 카톨릭 청년회관에서 독자들과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다.

학생시절 박시장의 강연에 참석했다가 불시에 질문을 받아 악연(?)이 있었다는 한 독자와 즐거운 대화가 진행중이다.
 학생시절 박시장의 강연에 참석했다가 불시에 질문을 받아 악연(?)이 있었다는 한 독자와 즐거운 대화가 진행중이다.
ⓒ 정태승

관련사진보기


240여명을 초대한 조촐한 규모로 예상된 자리에는 좀 보태서 표현하자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뒷자리에 마련된 프레스석 기자들의 취재경쟁, 각 언론사들에서 나온 카메라맨들의 분주한 움직임, 마련된 의자에 한 자리도 빠짐없이 빼곡히 들어앉은 독자들, 그 사이사이로 입석으로 들어선 또 다른 독자들, 와중에 정연함을 잃지 않은 오마이뉴스 스태프들의 빠른 몸놀림 등 <정치의 즐거움>에 소개된 '박시장의 꼼꼼한 일솜씨를 꼼꼼하게 읽고 모인 분들이어서 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염을 뚫고 모인 독자들과 주최 측의 교감은 아름다웠다.

국회의원 안철수의 등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자진 사퇴로 열린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폭발적이었다. 출마와 동시에 당선 확정이라는 완전한 기득권을 5% 지지율의 박원순에게 양보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원순의 능력과 도덕성, 품성 등을 간파한 안목을 지녔다면 그 또한 비범한 잠룡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현실정치의 한계를 말한다.

"정치 밖에 있을 땐 자유롭게 비판하고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만 막상 정치를 하면서는 조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정치를 걱정해야 하는 이런 현실이 우려스럽습니다"라며 안 의원에게 공감 어린 짠한 시선을 보내며 말한다.

"정치 잘 해주세요. 행정은 제가 잘 맡아 하겠습니다."

독자들의 박수가 쏟아지며 안의원은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안 의원이 떠나고 나서 본격적인 질문의 시간이 이어진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질문과 대답시간은 약 1시간 반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격무로 늘 피로할텐데 건강관리는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엔 '수요일과 금요일은 가정을 위한 날이기 때문에 오후 7시면 시청사 전체를 소등한다. 저녁 약속이 있더라도 오후 9시나 10시쯤 귀가해 가족과 TV도 보고 쉰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때로는 끼니를 도시락이나 짜장면으로 간단히 때우기도 하는데, 이는 이른바 3·3·3법칙이라고. '3개월 동안 3kg을 빼서 그간의 남는 여력을 어려운 분들께 보태고, 3개월 유지한다'는 것이다.

천안시에서 왔다는 한 독자는 박시장의 꼼꼼하고 시민들을 배려하는 시정에 다른 지역의 시민들이나 도민이 부러워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안시에서 왔다는 한 독자는 박시장의 꼼꼼하고 시민들을 배려하는 시정에 다른 지역의 시민들이나 도민이 부러워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 정태승

관련사진보기


오 대표기자의 노량진 수몰사고나 방화대교 사고에 대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서울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저의 책임이라는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밝히는 박 시장. 자신이 시장이 되기 전 발생했던 우면산 산사태나 강남의 상습 침수 등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산사태 방지과'를 신설할 정도로 올 여름을 대비해 기존의 홍수피해예방 현안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 집중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행정을 처리하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 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잠결에도 스마트폰을 수시로 들여다 보며 어떤 문제가 보고되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의 설명에서 이번 사고가 현 행정의 공백이나 태만으로 인한 사고라기 보다 그간 축적되어 있던 문제들 중의 하나가 터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일링 등의 서류작업이 그의 취미이자 특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결국 조만간 처리될 수 있는 문제일 수도 있었다는 예상이 가능한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폭우로 예년에 발생했던 산사태 등과 같은 인재는 없었다니 말이다.

굿뉴스도 있다. 돌고래 제돌이가 방사 16일 만에 무리에 합류한 사실에 대한 즐거운 소식에 대해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신경 쓸 만큼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느낍니다"라며 지난날 철학자 피터싱어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장문의 칼럼을 기고한 계기로 동물보호협회에서 홍보대사를 권유한 일도 있다고. 또 최근 서소문 청사에 원앙 어미가 새끼 13마리를 데리고 둥지를 튼 일도 있다는 일화를 소개 하며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징조지요?"란다.

이어지는 시민들의 질문, 일 말고 해보고 싶은 일이 뭐냐는 질문에는 자유로운 여행을 꼽았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역사(驛舍)를 돌아본다거나 해외의 독특한 풍경 등을 파일링할 때 따로 해놓고 언젠간 가볼 예정이라고 한다.

시청 앞 국정원 선거개입사건에 대한 항의 집회나 일인 시위 등에 대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직무상 같이 참여할 수는 없지만 시민들께서 시청 앞 광장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서울시청 주변 뿐 아니라 중랑천변 등을 이용해 캠핑이 가능하도록 심지어는 와이파이가 되도록 퇴근하고 굳이 집에 가지 않고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한다. 

또 한 시민의 갑작스러운 질문, '경전철 사업을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서울시에도 교통소외지역이 38%나 됩니다. 이런 지역에 계신 분들이야말로 이러한 대중교통수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였다. 보여주기 행정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공청회와 같은 기회를 통해 충분히 시민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다고도 한다.

박 시장은 <정치의 즐거움>이란 책을 준비하면서 자신을 어느 정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독자들에게 "하기 싫고 힘만 드는 일을 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시장으로서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시민들이나 공무원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어디에 딱히 하소연 하기도 힘든 답답함 등 어려움은 많이 있지만 모든 것을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중략… 큰 구호보다는 시민들의 작은 바람이나 소망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큰 보람이고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비정규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저자와의 대화 직후 이어진 사인회에 독자들이 귀가를 미룬 채 줄지어 서서 오연호 대표와 박원순시장의 사인을 받고 있다.
 저자와의 대화 직후 이어진 사인회에 독자들이 귀가를 미룬 채 줄지어 서서 오연호 대표와 박원순시장의 사인을 받고 있다.
ⓒ 정태승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오 대표기자의 질문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듯이 우린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함께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때론 맥빠져 있는 저에게 시민들의 트윗 한마디가 큰 격려가 되어 다시 힘을 내게 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요"라는 메시지도 잊지 않는 인간미를 보였다.

신나고 즐거운 정치를 위해서는 시민들, 아니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역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민주주의는 가만히 있는데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5%의 미미한 지지율에서 안철수의 양보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해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 그도 이미 그 전에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연호 대표기자와 박원순 시장은 24년 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그들이 나눈 사담 중엔 또 어떤 것이 있었을까. 독자와의 대화 2탄이 필요한 대목이다.


태그:#오연호,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