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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석운행금지차량'이라고 적힌 부착물이 붙은 삼화고속 광역버스
▲ 입석운행 금지를 알리는 부착물 '입석운행금지차량'이라고 적힌 부착물이 붙은 삼화고속 광역버스
ⓒ 민주노총 삼화고속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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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없어요?"

퇴근길,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광역버스 '삼화고속'을 자주 이용하는 기자가 버스기사에게 늘상 하는 질문이다. 답은 늘 똑같다.

"없어요. 이 앞에서 서서 가든지, 아니면 뒷 차 오니까 그거 타세요."

잠시 망설였지만 뒷 차에도 자리는 없을테니 그냥 올라탄다. 승객을 문 앞까지 꽉 채운 버스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기사는 사이드 미러가 보이지 않는다며, 앞쪽에 서 있는 승객들에게 연신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고속도로에서의 입석은 위험이 커 법으로 금지됐지만, 퇴근시간 이 버스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심할 때는 45인승 버스에 70명도 넘게 탄다.

'인천 시민의 발'로 불리는 삼화고속은 서울-인천 간 11개 노선을 운행하며 하루 4~5만 명의 이동을 책임진다. 그런데 최근 3년간, 삼화고속을 타는 이들의 불편이 점점 커졌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5분~20분이던 배차 간격이 점점 늘어나 길이 밀릴 때면 30분 이상 벌어지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을 빽빽이 세운 채 고속도로를 드나들었다.

버스의 창문에는 '여러분께서 이용하시는 버스는 (주)삼화고속의 일방적인 감차로 인하여 위험한 입석운행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위험한 입석승차, 원인은 '감차운행'에

버스 노선을 신설할 때, 시에서는 하루에 운행 가능한 버스 수를 정해 면허를 내준다. 이는 배차시간과 평균 이용 승객 수를 고려해 산정된다.

그러나 삼화고속 내 6개 노조 중 제1노조인 민주노총 삼화고속지회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삼화고속이 보유한 11개 노선 중 9개 노선은 면허 대수보다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50%정도 부족한 상태로 운행하고 있다.

시에서 28대의 면허를 받은 1500번은 14대만, 23대의 면허를 받은 1400번은 하루 13대나 14대만 운행한다. 이 버스들이 전체 노선을 한 번 도는데 4~5시간 정도가 걸린다. 면허대수의 반 밖에 안 되는 운행차량으로 15분의 배차 간격을 지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에게 돌아간다.

잦은 입석으로 인한 위험과 불편은 물론이고, 배차간격이 심하게 벌어질 때면 환승할인도 받지 못한다. 현재 수도권 광역버스의 기준에 따르면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는 하차 후 30분 내에,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는 하차 후 60분 내에 환승을 해야 할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차 운행에 대해 사측은 "잇따른 적자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반면 노조 측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노동자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더 나은 삶 기대했으나... 파업 이후 시작된 악순환

승객이 많지 않은 노선에서 일부 이뤄지던 감차운행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그 해 삼화고속 노동자들은 37일간 전면파업을 했다. 근로조건 개선이 목표였다.

파업 이전까지 삼화고속은 격일근무 체제였다. 기사 한 명이 특근을 포함해 월 360~370시간 일했다. 휴일 없이 30일 내내 출근한다고 쳐도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수준이다. 출근하는 날이면 보통 20~21시간을 운전대 앞에 있었다.

그러나 휴식시간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기사 A씨는 "그때는 4~5시간 걸려 한 바퀴를 돌고 차고로 들어오면 내려서 화장실 갈 틈도 없이 그대로 다시 차를 돌려 나가곤 했다"며 "사고 안 난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급여는 세후 160~180만 원 정도였다. 처우 개선은 절실했다.

긴 파업 끝에, 노사는 인천시의 중재로 간신히 타협했다. 호봉제를 적용시키고 격일근무를 1일 2교대제로 바꾸며, 월 기본 22일 근무에 특근 4일을 더해 한 달에 26일의 근무를 보장하는 조건이었다. 기사들은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회사는 노선을 없애기 시작했다. 11년에만 광역노선 8개가 폐선되고, 1개가 매각됐다. 고속버스 1개 노선도 함께 매각했다. 12년에는 광역노선 두 개와 고속노선 1개가 매각되고 1개의 광역노선이 폐선됐다. '인건비 증가와 승객 감소로 인한 적자'가 이유였다.

사라진 노선의 기사들은 다른 노선으로 재배치됐다. 노선은 줄었는데 기사가 늘어나니, 인당 운행수가 줄었다. 한 달에 26일은커녕 22일을 일하기도 어려웠다. 급여는 운행 수에 따라 책정되므로 그들은 오히려 파업 전보다 적은 130~150만 원(세후)을 받았다. 생계가 어려워진 기사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파업 이전 600여명에 달했던 기사가 현재는 480명 정도로 줄었다. 회사는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그만큼의 버스를 또 줄였다. 악순환이었다.

삼화고속 본사 관계자는 "기름값과 인건비가 오르고, 승객은 한정되어 있으니 수익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면허 대수에 맞춰 차를 내보내면 승객이 많지 않은 낮 시간의 경우 손해를 보게 되고, 지금 배차간격이 늘어지는 것은 일부 기사가 고의적으로 차를 늦게 운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천시에서는 환승할인 금액을 보조받는 것 외 어떤 지원금도 받지 않아 지금 회사의 적자가 심각한 상태"라고도 했다.

그러나 노조(민주노총)는 "기사와 운행수가 줄어 오히려 인건비는 줄었고, 12년에 요금을 300원이나 인상했다"며 "시에서 받는 유류보조금도 있고 노선 매각으로 거둔 수익도 있으니 회사 재정이 사측의 말만큼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08년부터 12년까지의 삼화고속 재무감사표를 확인한 결과, 2008년과 2011년에만 적자가 났다.

그 중 08년 적자는 유가의 폭등에 기인한 것으로, 공공운수연맹의 파업자료집에 의하면 09년의 각종 정부 보조로 손해를 대부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시 지원금이 없다는  사측의 말도 사실과 달랐다. 노조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삼화고속은 인천시에서 11년에 20억여 원, 12년에는 15억여 원의 유가보조금을 받았으며 현재도 받고 있다.

삼화고속 민주노총 소속인 한 조합원은 "2000년대 들어 08년 이전에는 적자를 낸 적이 없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정말로 회사의 적자가 심각한 상태라면, 회사 문을 닫는 게 아니고서야 고수익을 내는 고속버스 노선을 매각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공방이 3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노사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다. 지난 6월에도 통상임금 소송과 노선의 추가 매각 문제로 이틀간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교섭은 잘 되지 않았다. 모든 노동자가 참여한 파업이 아니었기에 큰 효과가 없었던 탓이다.

노조만 6개... 모이지 않는 힘

삼화고속 사무실의 직원들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붙인 '입석금지'경고문을 보는 즉시 떼어내고, 해당 기사들에게 근무정지 징계를 준다.
▲ 부착물을 떼어내는 삼화고속 직원 삼화고속 사무실의 직원들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붙인 '입석금지'경고문을 보는 즉시 떼어내고, 해당 기사들에게 근무정지 징계를 준다.
ⓒ 민주노총 삼화고속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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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화고속에는 노조가 6개 있다. 이명박 정권인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된 직후부터 새 노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10개까지 늘어난 적도 있었다.

이 중 교섭권을 가진 제1노조는 민주노총이다. 하지만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해도 소속원은 총원의 반수를 간신히 넘긴 260명 정도다. 교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노조 간 갈등도 심해졌다. 한 노조 관계자는 "노조마다 사측과의 관계도 모두 다르고 해서, 어려운 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회사로서는 유리한 고지를 점한 셈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운행시 '입석금지', '입석운행 중입니다. 시에 불편신고 바랍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차에 붙인다. 그러나 사무실 직원들은 이 스티커를 보면 해당 기사에게 근무정지 징계를 내린다. 기사 B씨는 "(스티커를 붙이고) 나가려는데 직원이 차를 가로막더니 '오늘은 일하지 말고 들어가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노총 삼화고속지회는 면허 대수를 지키지 않는 삼화고속을 인천시에 고발한 상태다. 기사들은 운행 정상화와 통상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8월 5일부터 사주의 집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그들도 낙관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삼화고속지회의 나대진 지회장은 "시가 회사의 위반 행위에 더 확실한 조치를 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속 노조를 막론하고, 노동자들은 긴 싸움에 지쳐 있었다. 기자와 만난 한국노총 소속의 기사 C씨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끝은 날지 모르겠다"며 "나처럼 정년이 가까운 사람이야 곧 그만두겠지만, 아직도 책임질 가족이 많은 젊은 사람들이 문제"라고 한숨을 쉬었다.

덧붙이는 글 | 유정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8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삼화고속, #감차운행, #입석, #광역버스,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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