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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뒤쪽은 다 떨어져 나갔고 페달도 온전치 않습니다. 자전거 앞, 뒤를 화려하게 꾸몄던 장신구들은 나사 하나 없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멀쩡한 곳은 바퀴 세 개와 손잡이 뿐, 딱 필요한 부분만 있는 자전거입니다.
▲ 세발자전거 좌석 뒤쪽은 다 떨어져 나갔고 페달도 온전치 않습니다. 자전거 앞, 뒤를 화려하게 꾸몄던 장신구들은 나사 하나 없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멀쩡한 곳은 바퀴 세 개와 손잡이 뿐, 딱 필요한 부분만 있는 자전거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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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현아! 다른 자전거 가져가자."
"아니, 아니. 내 자전거 가져갈래요."
"성민이 자전거 잠시 빌렸다가 돌려주면 돼!"
"싫어요. 남의 거잖아요. 내꺼 탈래요."

막내가 자전거를 탑니다. 안장 뒤쪽이 많이 부서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성한 곳이 없습니다.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막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낡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즐겁게 '라이딩'에 몰입합니다. 집을 나서기 전, 막내에게 옆집 자전거 잠시 빌리자고 했더니 손사래 치더군요.

제 자전거를 버젓이 두고 남의 물건 욕심 낼 필요 없답니다. 이치에 맞는 말이긴 한데 자전거가 너무 낡아 제 얼굴이 화끈 거립니다. 큰애와 둘째를 거쳐 막내 차지가 된 이 물건, 꽤 오래됐거든요. 막내가 허름한 자전거에 집착 하는 이유는 뭘까요? 웬만하면 잘 빠진 새 자전거 사달라고 응석을 부릴 나이인데요.

지난 11일, 여수 공화동 ‘해양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불 토해내듯 뜨거운 태양이 힘 잃을 시간인데 광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 해양공원 지난 11일, 여수 공화동 ‘해양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불 토해내듯 뜨거운 태양이 힘 잃을 시간인데 광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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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5시, 여수 공화동 '해양공원'에 도착했습니다. 불을 토해내듯 뜨거운 태양이 힘을 잃을 시간인데 광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여수에 며칠째 이어지는 '마른장마' 탓입니다. 그나마 바닷바람은 시원해서 다행입니다. 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잽싸게 그늘 속으로 숨었습니다.

반면, 세 아들은 이글거리는 태양은 두렵지 않다는 듯 즐거운 비명을 지릅니다. 두 아들은 익숙한 솜씨로 인라인스케이트를 바꿔 신었고 막내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꺼낸 허름한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멋진 폼으로 아내와 저를 바라봅니다. '라이딩'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입니다.

막내가 자전거를 탑니다. 안장 뒤쪽이 많이 부서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성한 곳이 없습니다.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 라이딩 막내가 자전거를 탑니다. 안장 뒤쪽이 많이 부서졌습니다. 자세히 보니 성한 곳이 없습니다.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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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꼬마가 멋져 보이는 자동차로 바꿔달라고 아빠에게 떼 쓰고 있습니다.
▲ 꼬마 자동차 한 꼬마가 멋져 보이는 자동차로 바꿔달라고 아빠에게 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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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모습 보며 행인들이 '피식' 웃습니다

자세는 그럴듯한데 자전거 상태가 영 말이 아닙니다. 좌석 뒤쪽은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페달도 온전치 않습니다. 자전거 앞뒤를 화려하게 꾸몄던 장신구들은 나사 하나 없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멀쩡한 곳은 바퀴 세 개와 손잡이 뿐입니다. 딱 필요한 부분만 있는 자전거 페달에 막내가 발을 올립니다.

이윽고 자전거 손잡이를 꽉 부여잡고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속도를 높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빠르게 페달을 굴리며 드넓은 광장을 헤집고 다닙니다. 앙증맞은 막내 모습을 보며 지나는 행인들이 '피식' 웃습니다. 꼬맹이가 세발자전거 타는 모습, 꽤나 우습나 봅니다.

낡은 자전거 보고 비웃는 건 아니겠죠? 막내는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라이딩'을 즐깁니다. 그렇게 광장을 몇 바퀴 질주하던 막내가 멋진 꼬마 자동차 앞에서 갑자기 자전거를 멈춥니다. 그곳에서는 젊은 아빠와 막내 또래 아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막내가 아빠와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또래 아이가 잘 타던 자동차를 버리고 더 멋져 보이는 자동차로 바꿔달라고 아빠에게 떼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던 막내가 이내 인라인스케이트 경주 벌이는 형들 뒤를 쫓습니다.

고집을 피우는 또래 아이를 보며 막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 속은 알 길 없지만 세발자전거 버리고 자동차 타겠다고 앙탈 피우지 않아 다행입니다. 기특한 녀석이죠. 막내는 허름한 자전거에 만족한 걸까요? 언젠가는 녀석도 새 자전거 사달라고 조를 겁니다. 그렇게 열기로 가득 찬 광장을 한참 싸돌아다니던 셋째가 또 한 곳에서 다시 자전거를 멈춰 세웁니다.

자전거 위에서 하염없이 넘어지는 아들과 무더위에 지친 아빠가 자전거 꽁무니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 아빠와 아들 자전거 위에서 하염없이 넘어지는 아들과 무더위에 지친 아빠가 자전거 꽁무니에서 몸부림을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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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아들 넘어지지 않도록 자전거 힘껏 붙잡고 뜁니다.
▲ 연습 아빠가 자전거 뒤에서 아들 넘어지지 않도록 자전거 힘껏 붙잡고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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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긴 한숨, 괴롭기는 아들도 매한가지

자전거를 멈춘 곳에서는 아빠와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아빠가 아들에게 두발 자전거 타는 법 가르치느라 고생입니다. 막내가 진땀깨나 흘리는 아빠와 아들을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두발 자전거 위에서 하염없이 넘어지는 아들과 무더위에 지친 아빠가 자전거 꽁무니에서 몸부림치는 모습이 막내 눈에는 신기한가 봅니다.

막내가 쉼 없이 넘어지는 두발 자전거를 천천히 따라갑니다. 한두 번 페달을 굴리면 어김없이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는 아들 주변을 빙글빙글 돕니다. 두발 자전거 뒤에서 통사정하는 아빠 옆을 기웃거리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라는 목소리에 맞춰 세발자전거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마치 자신처럼 따라 해 보라고 시범을 보이는 듯합니다. 하지만 두발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 선 아들은 아빠의 간절한 외침과 막내의 시답잖은 시범과 상관없이 자꾸 애먼 곳으로 굴러갑니다. 결국, 몇 바퀴 못 가 아들은 또다시 자전거와 함께 8월의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굽니다. 그 모습 보며 아빠가 고개 들어 마른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긴 한숨을 푹 내 쉽니다. 속이 답답한 게지요. 막내는 그 주변을 빙빙 돌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될 텐데 엉뚱한 짓만 하니 가르치는 아빠 마음 오죽 답답하겠어요. 하지만 괴롭기는 아들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까요.

아빠 괴성에 응답하려고 하면 이미 몸은 자전거와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칩니다. 막내는 그런 두 사람을 끈질기게 따라갑니다. 그렇게 한참 옥신각신한 끝에 드디어 아들이 자전거 타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니 자전거가 살아납니다.

해양공원에 줄지어 서 있는 자전거입니다.
▲ 자전거 해양공원에 줄지어 서 있는 자전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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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깨달음, 쉼 없이 요구하면 그 사람 싫어진다

기쁨에 겨운 아들이 아슬아슬하게 자전거를 몰고 달립니다. 아버지는 자전거 뒤에서 아들이 넘어지지 않게 힘껏 붙잡고 뛰어갑니다. 막내도 힘껏 따라갑니다. 그러더니 아빠가 드디어 자전거에서 손을 뗍니다. 그리고 멀리 달아나는 아들을 바라봅니다. 아빠는 그제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환하게 미소 짓습니다.

비틀거리며 달리던 아들도 곧 자전거에 적응합니다. 아직 조금은 어설프지만 신나게 광장을 달립니다. 막내가 술 취한 듯 비틀대며 달리는 두발 자전거 꽁무니를 힘차게 쫓더니 어느 순간 제게 달려옵니다. 처음 걸음마 떼듯 느리게 움직이던 두발자전거가 자신의 세발자전거를 가뿐히 재치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조금 상했나 봅니다.

세발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두발 자전거가 타고 싶답니다. 그런 막내를 제가 말렸습니다. 키가 조금 더 자라야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일렀더니 순순히 물러납니다. 막내가 이제 막 자전거 타는 원리를 깨달은 두발 자전거 꽁무니를 힘차게 따라 다닙니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빠가 두발 자전거 뒤를 조용히 따릅니다.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나봅니다. 행여 빨리 달리다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그 모습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하니 막내가 기특합니다. 남과 비교하면 슬퍼진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네요. 또, 누구에게든 쉼 없이 달라고만 하면 그 사람이 점점 싫어진다는 단순한 진리도 터득했습니다. 그날 막내와 저는 뜨거운 광장에서 시원한 깨달음 얻었습니다.


태그:#세발자전거, #자전거, #해양공원,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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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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