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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크라잉넛'이나 '국카스텐'같은 밴드의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아마 있을 것이다. 장르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 하고, 많은 사람들은 방송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인디 음악을 알게 모르게 듣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음악을 '인디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당신이 들리는 순간>의 저자 정강현의 글에 의하면, 인디 음악은 독립적인(Independent)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다. 홍대를 기반으로 한 지역에서 공연하고 활동하며, 전문 마케팅이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의 창작과 제작·유통의 과정이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디 뮤지션이라 부른다는 것.

<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저자 정강현이 대중음악 기자로 일하면서 <중앙일보> 문화면에 '인디 카페'라는 연재기사로 썼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자신의 첫 산문집이라 밝힌 그의 책에는 국내의 다양한 인디 밴드들의 살아숨쉬는 기록이 담겨 있다.

1년간의 기사로 풀어낸, 인디 음악의 풍경

<당신이 들리는 순간>의 표지.
 <당신이 들리는 순간>의 표지.
ⓒ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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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다양한 인디 밴드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30개 이상의 팀을 인터뷰하고 취재하며 쓴 글에는 각 밴드의 결성과정과 멤버들의 소개·추구하는 장르 등이 나와있다.

산울림부터 크라잉넛·장기하와얼굴들·언니네이발관·브로콜리너마저 같은 유명 밴드들은 물론이고, 와이낫·보드카레인·루시아 등도 다루었다. 뿐만 아니라 10cm(십센치)·검정치마·옥상달빛과 같은 소규모 밴드도 빼놓지 않았다. 톡톡 튀는 각 뮤지션들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국내 인디 음악의 '대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딱하게 나열된 밴드들의 정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인디 음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물씬 묻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의 표지 뒷면에 적힌 "모든 위대한 사랑이 서툰 고백에서 시작되듯, 모든 위대한 음악은 서툰 상상력으로 완성에 다가간다"는 문장처럼, 이 책에 가득 채워진 글들은 인디 음악에 대한 그의 수줍은 고백과도 같다.

크라잉넛은 저항하지 않는 록 음악도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밴드다. 아니다. 크라잉넛은 발랄하게 저항하고 쓸쓸하게 내지르는 밴드다. 이들은 "인디밴드는 제멋대로 하면 되니까 쉬운 음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 무척 난감하다고 했는데, 나는 크라잉넛이 '제멋대로' 하는 음악을 사랑한다. 우리에게 크라잉넛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크라잉넛이라는 개념을 고안해야 했을 것이다. (본문 34P중에서)

음악과 밴드에 대한 정보와 뒷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개인적 감상과 더불어 인용된 노래의 가사들은 많은 밴드가 지닌 오밀조밀한 색채를 훌륭하게 드러낸다. 음악과 글의 만남은 <당신이 들리는 순간>에서 각자 다른 장르를 결합시킨 퓨전음악처럼 서로 다른 표현방식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름도 장르도 개성있는 뮤지션들

책에 소개된 밴드의 이름을 살펴보다 보면, 그 기발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산울림·안녕바다·가을방학처럼 친숙한 한글로 된 이름도 있다. '옥상달빛'은 멤버인 두 명의 소녀가 각각 좋아하는 단어인 '옥상'과 '달빛'을 나란히 붙인 것이라고 한다. 10cm(십센치)는 두 멤버의 키 차이가 팀 이름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에피톤프로젝트·델리스파이스·킹스턴루디스카처럼 길지만 독특한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름만큼이나 각 밴드의 음악은 독특하며 나름의 개성을 드러낸다. '저항'의 정신을 드러내는 록 음악을 주요 장르로 내걸고 있는 '브로콜리너마저'같은 밴드가 있는가 하면, '옥상달빛'은 차분한 멜로디로 "수고했어, 오늘도"라며 이 시대의 청춘들을 조용히 다독인다. '검정치마'는 나긋하게 사랑을 속삭이며, 재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한국재즈1세대밴드'도 있다.

한국에서 록을 알린 지 35년이나 된 '산울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그 뚝심에 찡한 느낌이 든다.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모르지만 누구보다 멋진 음악을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강산에'는 천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뮤지션을 파고들어 음악을 공부하려는 시도에서 발전된 '에피톤프로젝트'의 탄생배경은 그 특이함이 흥미를 끈다.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된 뮤지션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글도 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음악을 남기고 떠난 '김광석'에게는 "스스로 음악을 짓는 인디 뮤지션에게 음악적 푯대가 되었다"며 편지를 띄우기도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숨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의 이야기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사망하고 난 뒤에서야 그의 안타까운 사연과 히트곡이 알려지면서 101개 팀의 밴드가 노개런티로 열었던 추모공연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너무 늦게 터진 그의 '역전만루홈런'이 수많은 음악팬들을 울컥하게 만든 셈이다.

홍대 인디음악 길잡이 같은 책, <당신이 들리는 순간>

저자는 기자로서 객관적인 글을 기사로 써야 하지만, 음악을 사랑한 나머지 주관적인 느낌으로 글을 적어나갔던 자신을 '종종 본분을 망각했다'고 적었다. 음악을 글로 옮긴다는 일에 대해서도 상당히 곤혹스러웠던 모양이다. 누군들 아니었겠는가. 글과 음악은 서로 표현방식이 너무도 다르건만, 좋은 음악을 만난 글쟁이는 글로 그 느낌을 담아내야 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들리는 순간>을 읽다보면, '갈피를 못잡고 휘청거리는 기자'가 아니라 '음악에 한껏 매혹된 어느 작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아마도 저자는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인디 음악을 생생하게 종이 위에 활자로 옮기고 싶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음악을 듣고난 뒤 자신의 감각을 독자에게 체험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셈 아닐까.

CD와 MP3의 범람에 밀려서 수천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것에 그치더라도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어야만 하는 홍대 인디 음악계. 그 척박한 현실에서 많은 뮤지션들이 어려움을 겪고 궁핍한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지 않았기에 홍대는 여전히 뜨거운 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짐작컨대 그 이유에는, 그만큼 인디 음악이 주는 독특하고도 강렬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이 들리는 순간>은 인디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더불어 몇몇의 밴드를 통해 인디 음악에 호기심이 이미 생긴 사람에게도 더욱 다양한 밴드에 대해 폭넓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이 책으로 인디 음악의 바다로 뛰어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연히 알게 된 어느 밴드의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에서 '당신이 들리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덧붙이는 글 | <당신이 들리는 순간> (정강현 씀 | 자음과모음 | 2013.07. | 1만3000원)



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13)


태그:#당신이 들리는 순간, #홍대 인디밴드, #인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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