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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온천지구 장군봉아래 밤 모습. 모텔촌에서 내품는 불빛이 번쩍이고 있다.
 동학사 온천지구 장군봉아래 밤 모습. 모텔촌에서 내품는 불빛이 번쩍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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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봉 아래 동학사 온천지구에는 수십 여곳의 모텔이 이미 들어서 있다.
 장군봉 아래 동학사 온천지구에는 수십 여곳의 모텔이 이미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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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 네온사인, 노래방, 무인텔, 또 무인텔.... 여기는 계룡산 장군봉 아래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 6·7번지 일대.

계룡산 국립공원과 동학사로 들어서는 길목 오른쪽에 위치한 장군봉 아래. 현란한 모텔 불빛이 반짝였다. 계룡산 장군봉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낼 만큼 빛의 파장은 길었다. 색은 화려했지만 분위기는 음산했다. 웅장한 장군봉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노랗고 빨간 빛은 눈을 찡그리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대 말 행정수도 입지로 점찍어 두었던 공주시 장기면 인근. 계룡산의 동쪽 첫 등선. 국립공원 계룡산과 장군봉이 배후에 버티고 있는 곳.  장군봉은 장군처럼 위엄이 있고 기운이 센 장군대좌형의 명당이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단다. 주민들은 '임금봉'이라 부른다. 하지만 지금 장엄하다는 명산이 거느리고 있는 건 수많은 모텔이다. 능선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모텔이다. 

장군봉 아래 온천지구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변경결정도. 황색부분이 숙박시설 부지로 전체 부지 용도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라색 용지도 상업시설부지다.
 장군봉 아래 온천지구 도시관리계획(지구단위계획)변경결정도. 황색부분이 숙박시설 부지로 전체 부지 용도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보라색 용지도 상업시설부지다.
ⓒ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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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키던 이곳의 개발은 환경부와 충청남도가 주도했다. 충남도는 지난 1987년 이 일대를 '동학사온천개발지구'로 지정하고 관광자원 개발에 나섰다. 가족 단위의 레저·휴양시설을 갖추겠다고 큰소리쳤다. 앞서 환경부는 이 지역을 '동학사 제2집단시설지구'로 지정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휴양시설은 없고, 수십여 곳의 무인텔, 모텔만 즐비하다.

해가 저물기 직전 찾은 온천지구는 굴착기 굉음으로 흔들렸다. 쉴 새 없이 대형트럭이 오갔다. 또 무인텔 공사였다. 5곳에서 동시에 모텔공사를 벌이고 있다. 바로 장군봉 아래다.

장군봉만 보고 사는 사람들 "너무 속상해요"

학봉리마을에서 본 계룡산 장군봉. 산 기슭에 무인텔 공사가 한창이다 (붉은 원안). 주민들은 무인텔이 준공되면 경관을 해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학봉리마을에서 본 계룡산 장군봉. 산 기슭에 무인텔 공사가 한창이다 (붉은 원안). 주민들은 무인텔이 준공되면 경관을 해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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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봉만 쳐다보고 사는 주민들이 있다. 장군봉 아래 100여 가구가 모여 있는 학봉리 사람들이다. 5대 째 터전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느 집에서나 방문을 열면 장군봉이 시야에 꽉 찬다.

"식당이나 카페도 산 쪽으로 창을 두어 장군봉을 집안으로 끌어 담아 바라보고 있어요. 장군봉은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다르지만 내 집에 있는 듯 보여요"

이양숙씨도 장군봉이 좋아 귀촌한 경우다. 그는 수년 전 장군봉에 매료돼 농가를 구한 뒤 아예 작은 마을 도서관을 차렸다. 그의 하루는 장군봉을 마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그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장군봉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아침에 장군봉을 올려다보니 건물을 짓기 위한 철재 뼈대가 올라섰더라구요, 달려가 보니 무인텔 공사를 하고 있더군요. 깜짝 놀랐어요. 공사가 완료되면 장군봉 바로 아래 산 중턱을 모텔이 차지하게 됩니다. 너무 속이 상합니다"

수많은 모텔이 들어섰지만 학봉리 마을 쪽에서 주민들의 시야에까지 장군봉 기슭을 침범하고 들어선 모텔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가 집단시설지구 조성계획을 포기하고 관리주체를 공주시로 이관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공주시는 2010년 도시관리계획 변경용역을 벌였다. 하지만 공주시는 올해 초 관리계획을 최종수립하면서 당초 환경부가 지정해놓은 기존 숙박시설 부지를 그대로 인정했다.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난개발을 막을 기회였지만 토지소유주들의 요구에 밀려 한 치도 수정하지 않았다.

장군봉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무인텔 공사현장. 학봉리 마을쪽에서 장군봉 경관을 가리고 있는 구조물이 이 곳이다.
 장군봉 경관을 훼손하고 있는 무인텔 공사현장. 학봉리 마을쪽에서 장군봉 경관을 가리고 있는 구조물이 이 곳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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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 막을 기회 차버린 '공주시'


이어 공주시는 사업주들이 잇따라 신청한 무인텔과 관광호텔 공사를 모두 허가했다. 사업주들은 이미 들어선 모텔들이 성황을 이루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사허가서를 제출했다. 주민들은 한창 공사를 벌이고 있는 관광호텔의 경우에도 무늬만 관광호텔이지 대형모텔이라며 손가락질했다. 주민들은 올 상반기에 관광호텔 공사에 반대한다며 공주시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허사였다. 공주시는 지난 7월 관광호텔 신청 건에 대해서도 건축허가서를 내보냈다.     

주민들은 더 이상 모텔이 들어서게 해서는 안 된다며 공사 중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경관조망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서명도 받고 있다. 하지만 공사를 허가한 공주시 관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주시 관계자는 "당초 환경부에서 지정한 숙박시설부지를 그대로 지구단위 계획에 반영해 확정했다"며 "관련법에 근거해 건축허가가 나간 이상 중단시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공주시의회 우영길 의원은 "보는 사람마다 장군봉을 다 버렸다고 한탄한다"며 "올 상반기 의회에서 추가 모텔 공사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내봤지만 집행부에서는 허가를 안 해 줄 법적근거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계룡산 장군봉 아래 온천지구는 모텔공사로 한창이다. 현재 5곳에서 모텔공사가 진행중이다.
 계룡산 장군봉 아래 온천지구는 모텔공사로 한창이다. 현재 5곳에서 모텔공사가 진행중이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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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공주시가 토지주 요구만 수용... 직무유기다"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난개발로 (계룡산이) 몸살을 앓고, 주민들이 조망권 침해가 예측되는데도 기존 지구단위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한 후 (개발을) 허가해준 것은 공주시의 직무유기와 토지주만을 위한 편파행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사박물관 인근에서 만난 한 등산객들도 혀를 찼다.

"이게 뭐예요. 안 그래도 죄 모텔인데 공사를 또 하다니요. 자치단체가 이런 걸 규제해야지 무더기로 허가를 내주면 어쩌자는 거예요. 눈꼴 사나워서 장군봉을 어찌 쳐다봐요. 더군다나 여기는 계룡산 관문이잖아요"   

앞의 이씨가 기자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지금이라도 공주시가 허가를 취소하면 되잖아요. 모텔 건축주들이 장군봉이 갖는 큰 의미를 깨닫고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면 되잖아요."


태그:#계룡산 , #동학사, #장군봉, #학봉리, #온천개발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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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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