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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고추는 완전 태양초를 말리려고 했고, 뒤에 고추는 한번 쪄서 말려 잘 말랐다. 고추색깔이 완전히 달랐다.
 앞에 고추는 완전 태양초를 말리려고 했고, 뒤에 고추는 한번 쪄서 말려 잘 말랐다. 고추색깔이 완전히 달랐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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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추 절반은 버려야 할 것 같다. 이것 봐. 이거 가위로 잘라서 잘 다듬어요."

널어놓은 고추를 보더니 동네 어른신의 걱정스러운 말이 계속된다.

"이거 아까워서 어쩌나?"
"그렇지요. 그래도 일단은 다 말려보려고요."
"지금이라도 쪄서 말려봐요. 완전태양초는 없어요. 완전 태양초 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파는 것도 다 기계에 쪄서 말리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마르고 있었다. 잘 말라가고 있는 고추를 보고 동네 어른신들도 "고추 잘마르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을 하려고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시꺼멓게 몰려오고 있었다. 고추를 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금 이 정도까지 말렸는데 비를 맞으면 여태까지 고생한 보람이 없겠지. 일찍 들어와서 널자' 하곤 외출을 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듯 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은 듯 했지만...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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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날 아침과는 달리 외출하자마자  햇볕이 어찌나 좋은지. 밖에 있으면서도 널지 못한 고추 생각이 절로 났다. 그 따가운 햇볕이 정말 아까웠다.하지만 그날의 외출은 생각지도 못하게 길어져 저녁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결국에는 고추를 널지 못했다.

그날 저녁 때부터 날파리같은 것이 거실에서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바로 그 고추에서 생긴 날파리였던 것이다. 아마도 축축해지면서 습기가 생겨 날파리가 생긴 것 같았다. 고추를 들춰보니 색깔이 하얗게 바랜 것도 많이 생겼다.

그런 고추를 보니 괜스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못 널었더니 이런 사달이 나다니' 속상했다.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고추를 널었다.

세상에나 따가운 햇볕에 고추는 바싹하게 아주 잘 말랐다. 그리고 저녁에 고추를 거두어 다듬기 시작했다. 거두어 들인 고추를 보니 하얗게 된 부분은 더욱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리보고 저리 보았지만 먹을 만한 고추는 없어 보였다.

가위를 들고 이리저리 오려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고추도 속을 들여다 보면 하얀 곰팡이가 씨까지 침투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버려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내놨다, 들여놓고 중간에 소나기라도 오면 뛰어나가 거두어 들이고 하던 생각이 나니 속상했다. 그리고 남편의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기도 했고.

곰팡이로 가득한 고추 속, 결국에는 모두 버렸다.
 곰팡이로 가득한 고추 속, 결국에는 모두 버렸다.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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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몇 번의 태양초 말리기에 성공을 했기에 이번에도 잘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태양초 만들기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 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고추 다 버려야 할 것 같아. 이것 좀 봐."
"그러게…. 할 수 없지 버려. 애초에 쪄서 말렸으면 괜찮았을 텐데."

남편의 대답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내년에는 처음부터 한번 쪄서 말려야겠어. 이번에도 한 번 찐 것은 잘 말랐는데."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만든다는 것은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야말로 온마음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절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태그:#태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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