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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청량한 새들의 노래 소리가 깊은 잠에 취해 있던 풍요와 나를 불러 깨운다. 아름답고 해맑은 새들의 노래 소리가, 숙면의 꿈결 속을 헤매이던 내 귀를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잠시 더 그렇게 침상에서 뒹굴거리며, 새들의 노래 소리를 감상하고 있자니, 풍요의 축축한 코가 내 손등에 와 닿는다.

"아빠, 더 주무실거예요? 오늘이 안내견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아침인데, 상쾌한 아침 바람 좀 쐐보시는게 어떠세요?"
"난 싫다..."
짐짓 모른 채, 쌩하니 돌아눕는 내 종아리에 다시 풍요의 따뜻한 혓바닥이 와 닿는다.

"풍요야, 아빠 조금 더 자면 안 되겠니? 아빤 아직 졸리단 말이야..."
"아빠, 잠시 그 늦잠 유혹에 못 이겨,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드실 수는 없잖아요. 아빠가 어디서 저 맑고 신선한 공기를 제대로 마셔볼 수 있겠어요? 저랑 함께 밖으로 나가봐요 네?"
풍요의 애교성 아양에, 마지못한듯, 침상을 정리하고 방 밖으로 나온다. 정말 신선하고 싱그런 맑은 공기가 세파에 찌든 내 폐부를 말끔히 씻어 준다.

"아빠, 제 말 대로 함께 나오시길 잘 했지요?"
"그래 풍요야... 우리 풍요는 어쩌면 이렇게도 이쁘고 착하니..."
"헤헤... 뭐 그런 당연한 말씀을..."
잠시 그렇게 다정하게 소근거리며 기숙사 앞 마당을 거닌다.

"풍요야, 너 배 안 고프니? 이제 밥 먹을 시간인데."
"왜 안 고프겠어요? 아까부터 꼬르륵 소리가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거 못 들으셨어요? 제가 얼마나 참을성이 강한지 그 모든 걸 꼭 참고 묵묵히 견뎌내고 있잖아요. 역시 전 1등 안내견이 될 자질이 충분해요. 그렇지요 아빠?"
"그래 풍요야, 그 천정부지의 자화자찬만 빼면 말이지..."
"잉? 아빠는 제가 언제 또 그랬다고... 자 아빠, 우리 이제 방으로 돌아가 오늘 하루 일과를 또 시작해보자고요..."
"그래 풍요야..."

풍요의 아침 식사와 배변, 그리고 깨끗하게 세면과 빗질을 마치고 나도 구내 식당에서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운다.

오늘은 합숙 마지막날로 오전엔 긴긴 탄천 주변길을 걷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탄천 옆 산책길을, 풍요와 더불어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처음엔 여유롭게 걸어가던 풍요가 얼마쯤이 지나자, 숨이 찬듯, 핵핵거린다. 뒤에서 우리의 보행 모습을 관찰하며, 따라오는 선생님께 내가 묻는다.

"선생님, 우리 풍요가 무더위에 너무 많이 걸어 힘든거 아닐까요? 너무 핵핵거리는 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합니다."
"개들은 숨구멍이 입이나 발바닥밖에 없는 거 아시지요? 이렇게 걷다가 체온이 상승하면, 체온을 발산하기 위해, 저렇게 입으로 거친숨을 내뱉어 뜨거워진 열기를 밖으로 내보내줘야해요. 사람들이 혹여 개가 힘들어 저렇게 거친 숨결을 내뱉나 오해를 많이 하는데, 그런 경우도 없지 않지만, 풍요 같은 건강하고 젊은 아이가 가쁜 숨을 내뱉을 때엔 그보다, 체온 조절을 위해 그러는 경우가 많지요."
"아, 그렇군요.."
"개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모르는 게 참 많아요 그렇지요?"
"네..."

그렇게 예정된 산책길의 반환점을 돌아, 잠시 나무 그늘 아래서 다리 쉼을 한다.

"시원한 수박이나 하나, 쪼개 먹었으면 좋겠네요. 옛시절엔 우리 선인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그렇게 둘러앉아, 수박을 나누어 먹으며 정담을 나누곤 했었다지요?"
"그러게요... 그런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요..."

잠시 그렇게 더 앉아 쉰 후, 안내견학교 구내 식당으로 돌아와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한다. 영양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도 직접 식판을 내게 가져다주신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잊지 않고 친절한 인사와 백만불짜리 미소까지 건네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한꺼번에 몰려나온 휴가 차량들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 풍요는 몹시 피곤한 듯, 차 바닥에 누워, 새근새근 깊이 잠들었다. 얼마를 그렇게 고속도로에 갇혀 서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하던 차량의 물결이 어느 순간부터, 쌩쌩 제 속도를 찾아, 달려간다. 그렇게 어렵게 달려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고, 빈집의 삭막한 정적만이 우리를 맞는다.

아내와 딸은 휴가차, 고향엘 내려갔다가 오늘 저녁에서야 돌아올 것이기에, 아무도 없는 빈집의 정적만이 낯선 풍요를 맞이하는 것이다.

"댁에 아무도 안 계시네요."
"네, 선생님. 집사람과 딸은 잠시후에 도착할 거예요. 어제 두 모녀가 고향엘 내려갔었거든요."
"네."
"선생님이 안 계신 사이, 두 분이 다정하게 휴가를 떠나셨군요."
"그렇지요. 아내와 딸이 잠시나마 두 모녀만의 여행을 하고 싶다기에, 그러라 그랬습니다."
"네"

"풍요야, 여기가 앞으로 네가 살아갈 너의 집이다. 우리집 어때? 한 번 둘러봐라..."
이방저방, 거실과 부엌을 고루 돌아본 풍요가 선생님이 옮겨오신 자기 짐을 신기한듯 바라본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깔아준 자기 요에 벌러덩 누워,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앞으로의 삶에 대해 숙고의 구상을 한다.

"오늘은 저녁 배변까지만 제가 살펴드리고,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8월 5일까지는 계속 풍요와 적응 훈련을 받아야하니, 제가 쭉 함께 할 것입니다. 아직은 완전하게 풍요가 선생님과의 보행 패턴을 익히지 못했으니만큼, 조심하시고, 제 허락 없이는 절대 혼자 멀리 나가거나, 복잡한 길로 가시면 안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허리에 벨트를 찬 풍요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
 아파트 베란다에서 허리에 벨트를 찬 풍요가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
ⓒ 김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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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히 통제하시는 선생님의 지시에 다소곳이 고개 숙여 이해를 표한다. 잠시 후, 고향에 갔던 아내와 딸이 돌아오고, 며칠만에 만난 풍요와 아내가 반갑게 상봉의 정을 나눈다.

"풍요야, 잘 있었지? 이제부터 우리는 한 가족이야. 행복하게 새로운 가족으로 열심히 잘 살아보자 알았지?"
"네, 엄마..."

이전에 슬기가 쓰던 집을 풍요의 집으로 단장하여 매트를 깔고 풍요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역시 슬기가 사용하던 요를 그 앞에 펴서 풍요가 편히 누워 쉴 수 있도록 해준다.

"풍요야, 이제 우리 풍요 식사할까?"
"아, 네..."

뛸 듯이 기뻐하며 사료통을 향해 달려가려는 풍요를 진정시켜 제 집에 들여보내고,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슬기가 평소 식당으로 이용하던 목욕탕으로 향한다.

"풍요야, 이리 와."

백미터 달리기를 하는 단거리 선수처럼 순식간에 달려온 풍요가 어느결에 한 그릇의 식사를 뚝딱 해치워버린다.

"풍요야, 맛있니?"
"그럼요, 얼마나 맛 있다고요. 아빠도 한 번 드셔보실래요?"
"아, 됐다. 나는 엄마가 해주시는 식사가 제일 맛있어."
"히히히."
"자 그럼 우리 용변 보러 나가볼까?"

앞장 선 풍요를 따라 내가 나가고, 그 뒤를 안내견학교 선생님이 조용히 따라 오신다. 슬기가 평소 화장실로 이용하던 아파트 뒷곁, 화단으로 나간다.

"풍요야, 여기서 우리 용변 보자."
"네, 아빠....."
잠시 후 시원스레 소변과 대변을 다 본 풍요를 데리고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온다.

"선생님, 저는 그럼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이 선생님의 평소 출근 시간에 맞춰 다시 오겠습니다."
"네, 선생님. 제가 여기서 오전 8시에 출근하니, 그 시간에 맞춰 오시면 될 겁니다."
"네, 그럼 풍요와 맞이하는 집에서의 첫날 밤, 잘 보내시고, 혹시 풍요가 달라진 환경에, 민감하여, 잠을 잘 못 이룰지 모르니, 선생님이 따뜻이 잘 보살펴주세요."
"내,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풍요와 더불어 맞이하는 첫날밤이 그렇게 깊어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홈피 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태그:#안내견 , #훈련, #새로운 다짐, #새로운 집, #풍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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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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