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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에서 잘리기 전부터 고혈압이 발생했고 지금은 고지혈증까지 생겨 약을 3알 먹고 있다.
▲ 현재 먹고있는 고혈압약 현대차에서 잘리기 전부터 고혈압이 발생했고 지금은 고지혈증까지 생겨 약을 3알 먹고 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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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약 끊으면 큰일 납니다. 절대로 끊지 마세요. 꼭 드셔야 합니다."

추석을 며칠 앞둔 9월 16일(월) 오후 6시경 2개월 만에 혈압약을 타러 동네 약국에 들렀더니 약사님이 야단을 쳤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혈압약 값 한 달치가 2만 원 정도 됩니다. 누구에겐 껌값도 안 될 돈이지만 저에겐 무지하게 큰 돈입니다. 혈압약 처방전 받으러도 일반 병원에 가지 않고 보건소에 들렀습니다. 병원엔 진료비와 처방전 비용만도 몇 천원 듭니다. 보건소에선 500원이면 고혈압 처방전을 발급 받을수 있어 좋습니다. 보건소 의사도 2개월 만에 가니 걱정을 했습니다. 혈압 조절을 잘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혈압만 높더니 얼마전부턴 고지혈증까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 전부터 혈압약과 고지혈증 약을 같이 처방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달 약값만도 2만여원이나 되었습니다. 2개월 동안 고혈압 약을 먹지 않으니 늘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어지럽기도 했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보건소에 갔더니 의사는 2개월치는 약값이 부담되니 한 달치씩 복용하라 했습니다. 한 달 한 차례 보건소 들르는 것도 부담이 되어서 두 달치씩 처방전을 받아 왔었습니다. 약값이 없어 2개월 정도 못 왔다고 하니 보건소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처방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고혈압 언제부터 생겼나 따져봤더니...

고혈압 약을 받아 오면서 고혈압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2000년 7월초에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일했었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하청업체라 그런지 아예 건강검진이란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4년 후 비정규직 노조가 생기면서 하청업체도 건강검진이 생겼습니다.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는 1년에 한 차례씩 건강검진을 합니다.

저의 마지막 건강검진은 2009년 가을 무렵이었습니다. 현대차에 다니는 정규직은 공장안에 있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시간도 넉넉하게 주어졌지만 하청업체는 외부 건강검진 차량이 와서 혈액, 소변, 심전도, 혈압, 허리 검사를 간단히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대체되어 있어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검진받고 다시 일하러 가야 했었습니다.

"혈압이 조금 높네요. 혈압 관리가 필요한 거 같습니다."

혈압을 재어보니 수치가 140에 육박해 나왔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매년 혈압을 재어도 120이던 혈압이 2009년부터 130이 넘었습니다. 현대차에 다니면서 고혈압이 생겼습니다. 주야 맞교대에 주말 특근까지 어느달엔 580시간까지 일했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심한 성격인지라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치게 보이려 애썼지만 속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나 봅니다.

겉은 속일 수 있어도 몸 속까진 속이지 못하나 봅니다. 저는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늘 혈압은 자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고혈압이라니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술담배도 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건강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살아 왔는데 스트레스도 고혈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현대차 하청업체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1년마다 재갱신되는 근로계약 시기만 되면 걱정이 앞섰고, 업체가 바뀔 때마다 또 잘리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2004년경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겨나면서 노조활동을 시작했는데 현대차로부터 갖가지 압력을 받을 때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2009년 절정에 달했습니다.

새로 업체가 또 바뀌면서 비정규직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계속 고용 못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또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이 시작되면서 매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3월 중순경 공장이 없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르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었습니다. 병원에 찾아가 진단을 받았더니 고혈압이라 약을 먹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교섭 중단이라니... 다시 혈압이 오릅니다

2010년 10월경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습니다.
▲ "정규직 전환 대상에 해당됩니다" 2010년 10월경 변호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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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당벌이 중입니다. 한 달 모아 봐야 얼마 되잖은 월급으로 근근히 버티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현대차 불법파견에 정규직 전환이란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에 불법파견 판정 내려진 후부터 희망으로 부풀었습니다. 현대차 하청업체에 어쩔수 없이 권고사직 당했었지만 변호사 자문 결과 "현대차는 불법파견이고 2년 이상된 노동자는 이미 현대차 정규직 직원으로 인정되어야 하므로 하청업체에서 권고사직으로 낸 사직서는 무효에 해당된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걸고 지난 3년 동안 비정규직 노조에서 하는 각종 집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고 함께하려 노력해 왔었는데 9월 16일날 본 비정규직 노조 소식지를 보니 또 혈압이 상승할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러 봅니다. 저에게도 희망이 되는 정보가 뜨려나 싶어서 버릇처럼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9월 16일 오후에 홈페이지를 열었었는데 또다시 절망스러운 내용이 떠있었습니다. '교섭파행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에 있다. 조합원 전원 전환 거부, 마지막 교섭 종료'라는 제목으로 소식지가 발행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투쟁을 이어오면서 이제나 저제나 '정규직 전환' 소식만을 기다려 왔는데 교섭 종료라니 허탈했습니다.

내용을 보니 비정규직 노조는 많은 부분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지만 현대차에선 신규채용을 내세우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어 보였습니다. 대법판결 이행하라며 또 3년여 동안 현대차를 상대로 싸워 왔지만 물거품이 될 거 같았습니다. 그동안 줄곧 비정규직 노조는 현대차 안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 전환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현대차에서는 신규채용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시켜 3500명 신규채용 계획을 언론에 발표하였고, 그 중 1588명이나 신규채용 해버려서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이 무의미하게 되어 조합원 정규직 전환으로 요구 수위를 대폭 낮추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정규직 전환 입장 불가를 고수하고 있으며 3500명 신규채용 선에서 1588명을 뺀 나머지 1912명을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신규채용 하는 것으로 협상을 끝내자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은 "현대차에서 내놓은 3500명 신규채용 안은 불법파견에 따른 정규직 전환할 대상이 아니라 8년 동안 정규직 자연감소분 보충인원을 뽑는 것일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현대차는 교섭과정에서 '신체 결함자는 정규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럼 지금까지 지난 10여 년간 1만여 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가 만든 차량이 모두 불량차를 만들어 왔다는 이야기이니 당연히 10년치 생산차량이 리콜 대상일 텐데 왜 리콜하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현대차는 협상자리에서 "조합원이 신규채용에 응할 경우 우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해고자는 일단 하청업체 재입사후 신규채용에 응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채용 불합격자 300명은 2017년 하청업체 신규채용으로 채용기회를 부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정규직 노조는 "신규채용을 정규직 전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근속과 체불임금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현대차에서 내놓은 안인 신규채용을 거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근속과 체불임금에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는 "현대차에서 신규채용안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불법으로 착취해간 체불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비정규직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철탑농성장. 철탑농성은 296일을 끝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우리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 주자! 비정규직 아버지를 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철탑농성장. 철탑농성은 296일을 끝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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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조는 '조합원 모두 정규직 전환'을 조건으로 일괄타결을 모색해 왔었습니다. 또한, "조합원 정규직 전환만 이행된다면 모든 행정소송도 중단하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차는 신규채용만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가 2003년부터 불법파견 투쟁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모든 해고자를 이번에 같이 정규직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대차는 2010년 말 25일간 1공장 점거파업 하면서 해고된 소수 인원만 하청업체에 재입사되도록 돕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와 같은 경우는 영원히 현대차에 불법파견 노동자로 10년 동안 일해왔어도 희망을 접어야 합니다.

이번 추석이 끝나면 다시 한동안 현대차와 노사협상은 없을 거 같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현대자동차 노조, 금속노조가 모두 선거에 돌입합니다. 현대차와 협상으로 제 일자리를 다시 만드는 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지금 추진 중인 집단소송이 대법 판결까지 끝나려면 또다시 8년여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 희망이라도 가져 보아야 할까요?

현대차를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로 혈압이 상승합니다. 추석이 다가오니 마음만 더 무거워지네요.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두통과 어지러움증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현대차에서 부당하게 권고사직 당한 후 4번째 추석을 맞이 합니다. 언제쯤 이 안쓰러운 현실이 마감 될지…. 현대차에 정규직 전환되어 복직만 될 수 있다면 고혈압에서 벗어날 것만 같은데 말입니다.


태그:#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울산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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