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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하고 무더웠던 여름해가 저만치 물러갔다. 추석 전후에도 가을의 맛보단 여름의 맛이 강했는데 한줄기 비가 내린 후론 긴팔을 옷을 찾게 되었다. 그 가을의 맛과 느낌을 더욱 맛보기 위한 길을 떠났다. 이름도 거창한 세계순례대회 일환으로 떠난 순례길이다. 그런데 이번 길떠남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애들아, 이번 9월 28일(토요일)에 약 26킬로미터를 걷는 도보 여행이 있는데 갈래? 물론 마음에 내키는 사람만 가면 돼."

그러자 아이들은 "싫어요" "어떻게 걸어가요" "산도 타나요?" 등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아마 산은 안 탈거야. 타도 힘들지 않을 거 같은데. 참 이번 여행길에 이해인 수녀님도 온다고 하더라. 이번 기회에 마음 힐링이나 하자. 하늘도 보고, 들도 보면서 가볍게 떠나보게."

그렇게 해서 간다는 아이들이 처음엔 15명 정도 되더니 이삼일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빠진다는 아이들이 4명이 되었다.

전주 풍남문.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전주 풍남문.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 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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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첫 종이 전주풍남문에서 울려 퍼진 이번 순례대회는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5일까지 7박 8일 간 9개 코스 약 240킬로미터를 걷는 도보 여행이다. 우리는 첫날 순례길에 동참했다. 동참이라기 보단 아이들이 답답한 교실에서 벗어난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의 떠남이었다.

순례길에 앞서 난 11명의 아이들에게 이름과 멘트를 적어 이해인 수녀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선물했다. 책을 잘 읽지 않은 아이들이 책도 읽고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뜻 깊은 길을 떠나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세계순례대회는 4대 종교(천주교·기독교·불교·원불교)의 화합의 길이기도 했다. 순례길 가는 길엔 4대 종교의 성지와 유서 깊은 곳이 있기에 모든 종교가 참여한다 했으나 이번 순례길에 불교는 동참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거와는 상관없이 27킬로미터를 어떻게 걸어가느냐며 벌써부터 걱정을 한소쿠리 내놓았다.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순례 첫날 아침 풍경. 전주 풍남문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순례 첫날 아침 풍경. 전주 풍남문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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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정은 전주 남문인 풍남문에서 시작하여 완주 송광사까지였다. 풍남문은 전주 4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성문이다. 본래 동문(완동문), 남문(풍남문), 서문(패서문), 북문(공북문)이 있었는데 1907년 조선통감부의 폐성령에 의해 3대문이 철거되고 지금은 풍남문만이 남아 외로이 서있다. 풍남문 옆엔 야외공연장도 마련되어 세계소리축제 등 여러 행사 때 공연행사를 자유롭게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발걸음은 풍남문을 떠나 전동성당이 있는 태조로를 따라 한옥마을로 들어선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삶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서 살아있는 곳이다. 또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곳으로 느림을 체험할 수 있는 도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차향이 물씬 난다. 고즈넉한 가을빛 한옥에선 판소리 가락이 흘러나온다. 구경거리도 많아 물길 따라 쉼을 이루며 느릿느릿 걷다가 피곤하면 물래방아가 도는 정자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 된다.

또한 한옥마을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전을 지나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전승축하잔치를 했다고 전해지는 오목대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유명한 전주향교 방향으로 걷다보면 한옥생활체험관, 부채문화관 등 다양한 문화시설의 볼거리를 체험하고 눈요기할 수 있는 것들이 길손들을 잡아둔다.

그렇게 한옥마을을 벗어나 전주천 옆 시인묵객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한벽루를 벗어나면 천변 옆의 갈대숲을 볼 수 있다. 봄에는 유채꽃이 넘실대고 가을엔 갈대들이 하얀 머리칼을 반짝반짝 하늘거리는 천변은 시민들의 놀이터로서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는 곳이다.

한벽루.
 한벽루.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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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한다.
 떠남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한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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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수녀의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고

한벽루를 지나 치명자산을 향하는 길은 한가롭기 짝이 없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아 걷기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다사로운 가을빛을 듬뿍 받으며 걷는 길떠남에 그저 좋아한다. 어떤 녀석들은 많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춤을 추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사실 이번 길에 학생들은 우리 아이들하고 두서넛밖에 안 된다. 엄마하고 함께 나온 초등학교 4학년짜리 어린 친구와 여고생 둘 그리고 우리 아이들뿐이다. 11명이 무리지어 춤추고 노래하고 신나게 발걸음을 하니 어른들의 호기심이 이것저것 물어오면 아이들은 목청 좋은 대답을 한다.

뭐가 그리 좋다고 ^ . ^  가끔은 일상에 멈춰 새로운 길을 함께 하는 것도 좋다
 뭐가 그리 좋다고 ^ . ^ 가끔은 일상에 멈춰 새로운 길을 함께 하는 것도 좋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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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자산 가는 길은 가로수가 양쪽으로 놓여있다. 오른쪽엔 전주천이 흐른다. 눈쉼을 하고 싶으면 아무데나 서서 전주천이나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면 된다. 그렇게 30여 분 걷다보면 치명자산 쉼터가 나온다. 치명자산의 본래 이름은 승암산이다. 그런데 전주시민들에겐 치명자산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천주교성지로 호남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파하고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과 아내 이순이(루갈다)가 신유박해 때 순교하여 묻힌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들은 순교하기 전에 독실한 신앙생활을 위해 4년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쉼터에 도달하기 전 길 옆엔 이들의 묘지가 나란히 누워있다.

치명자산 쉼터에서 우리는 이혜인 수녀님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한 책에 사인을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혜인 수녀는 다리가 불편한 관계로 맨 마지막에 도착했다. 혜빈이는 수녀님이 앉을 화단 옆 자리에 목에 두른 스카프를 깔아놓았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화단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수녀님은 함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더니 조그마한 손가방에서 색연필과 여러 모양의 스티커를 꺼냈다. 그리곤 한 명 한 명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면서 정성껏 사인을 해줬다. 아이들은 그 모습에 감동 한 바가지 미소를 보내줬다. 난 그런 아이들의 모습 하나 하나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예쁘고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고, 인자한 할머니처럼 사진까지 찍어주는 이해인 수녀님. 이날 아이들에게 큰 행복과 즐거움을 주셨다.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예쁘고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고, 인자한 할머니처럼 사진까지 찍어주는 이해인 수녀님. 이날 아이들에게 큰 행복과 즐거움을 주셨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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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사진도 찰칵!!!!! 감사해요 수녀님!(아이들의 목소리)
 단체 사진도 찰칵!!!!! 감사해요 수녀님!(아이들의 목소리)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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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을 받고 나니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는 동안 훌쩍 가버린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유유자적이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다. 거기에다 평소 좋아하던 시인에게 예쁜 사인까지 받았으니 좋을 법도 했다.

걸으며 노래하며 장난치며 걷다보니 작은 시골마을 정자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낮 12시가 다 되어간다. 앞선 사람들은 식판에 밥을 받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월암 마을이다. 월암 마을은 조선최대의 역모사건(?)이라고 전해지는 기축옥사의 중심인물인 정여립이 태어난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기찻길이 바로보이는 모정엔 정여립 쉼터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정여립 생가 터'라는 푯말이 걸려있는데 비닐하우스가 몇 동 놓여있다.

월암마을로 가는 길
 월암마을로 가는 길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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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가는 산길 오르다 정여립을 생각하다

동네주민들은 모정이 있는 곳이 생가 터라고도 하고,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는 비닐하우스가 생가 터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지만 지금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주변이 생가 터인 것만큼은 분명한 듯했다.

정여립이 태어났다는 월암 마을의 정자(모정)와 생가 터. 그곳에서 마을 분들이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정여립이 태어났다는 월암 마을의 정자(모정)와 생가 터. 그곳에서 마을 분들이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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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옆에 정여립에 대해 설명해 놓은 이런 글이 적혀있다.

'조선중기(1546~1589)의 문신이자 사상가, 개혁가, 공화주의자인 정여립 선생은 이곳 월암마을에서 태어났다. 대동계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모반을 꾀한다는 죄목을 당한 정여립 선생의 생가 터는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지금은 그곳에 물을 채워서 만든 연못(파소)만이 남아 있습니다.'

기축옥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모반사건에 대한 조작설과 모반설이 양분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황상 동인을 제거하기 위한 서인들의 공격이라는 조작설과 실제 모반을 꾀했다는 설이 있는 이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정여립과 손톱만큼 관계가 있는 이들은 거의 목숨을 잃었다. 그 숫자가 무려 1000여 명이다. 그런데 많은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다.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주옥같은 가사를 썼던 정철은 정치적으로 반대파였던 동인들을 숙청하고 목숨을 빼앗는 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정여립과 수많은 죽음이 생각나고 그의 글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된다. 정여립의 생가 터에서 송강 정철을 떠올리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지 모른다.

먹는 일은 늘 즐겁다. 생가 터 푯말 쪽에 있는 하우스 안에서 먹는 점심
 먹는 일은 늘 즐겁다. 생가 터 푯말 쪽에 있는 하우스 안에서 먹는 점심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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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글 앞에서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아가씨
 정여립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글 앞에서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아가씨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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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정여립과 송강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해주니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정여립이란 인물에 대해 더 알아보겠다는 아이도 있다.

월암마을 모정에서 3미터 정도 지나 왼쪽으로 '정여립 선생 죽도 가는 길'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우리가 가는 순례 길의 방향이다. 죽도는 진안의 금강 강변에 위치해 있는 곳인데 정여립은 이곳 죽도에 서실을 지어놓고 자신의 호를 죽도라고 지었다. 당시 전주 일대에서 죽도 선생이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죽도는 훗날 정여립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여립은 대동이라는 만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꿈꿨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지금 마을에선 정여립이 죽도로 갔던 길을 보존하고 있는데 지금은 등산로와 순례길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조선시대 대동의 꿈을 품었던 한 인물을 잠시나마 생각하면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진안 죽도. 대동세계의  꿈을 키우다 역모에 몰려 스스로 자결한 곳.
 진안 죽도. 대동세계의 꿈을 키우다 역모에 몰려 스스로 자결한 곳.
ⓒ 진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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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례 길(죽도 가는 길) 따라 한 발 한 발....
 아름다운 순례 길(죽도 가는 길) 따라 한 발 한 발....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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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길 떠남을 통해 우정을 배우는 아이들

월암마을 뒷산인 죽도방향은 처음엔 밋밋하다. 산으로 오르는 길도 험하지 않다. 다리쉼 없이도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그러나 출발할 때부터 몸 상태가 안 좋은 효경이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단짝인 수미가 효경이의 손을 잡고 올라온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멀리 가서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자 아현이와 혜진이가 기다리고 있다. 내리막길은 한적하고 완만한 오솔길이다.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고 즐거워지는 길이다. 앞서가던 아이들은 가끔 메아리 울림으로 '선생님~~~' 하고 부른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쉼을 하며. 나무의 옹이가 특이하다
 내려오는 길에 다리쉼을 하며. 나무의 옹이가 특이하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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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연의 길을 따라가니 꽤 큰 호수가 나온다. 상관저수지다. 저수지 수변을 따라 오솔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이 호젓하면서 풍광이 좋다. 산길만 걷다 물을 만나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 앞서 간 아이들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한다. 저수지 오솔길을 나오니 하은이, 정연이, 백곰 현정이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투정을 한다.

"선생님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 우린 진즉에 왔는데."
"야! 약한 게 아니라 처진 애들 길동무 하느라 그런 거야. 너희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잖아."
"히히, 알았어요. 그냥 저희들이 그렇다고 봐줄게요."

위) 상관저수지 오솔길. 늦은 우리를 기다리다 놀리던 아이들. 하은이는 단소를 꺼내 피리를 불고 있다
 위) 상관저수지 오솔길. 늦은 우리를 기다리다 놀리던 아이들. 하은이는 단소를 꺼내 피리를 불고 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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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놀리더니 하은이가 단소를 꺼내 피리를 분다. 그런 건 또 언제 준비했는지. 그렇게 평길을 1시간 여 걷다 원불교 성지가 있는 만덕산을 2시간 40여 분을 오르내렸다. 효경이는 속이 메스껍다며 자주 쉰다. 그러자 슬기가 가방을 들어준다며 어깨에 멘다. 내가 이번 길을 떠나며 바라던 모습이었다. 힘든 과정 속에 친구간의 끈끈한 우정을 배웠으면 하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그것을 행하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했던 길떠남은 7시간을 넘게 걸은 뒤에나 마무리됐다. 본래 송광사까지 걸을 예정이었으나 너무 늦는 관계로 인덕두레마을에서 동네 분들이 마련한 비빔밥을 먹는 것으로 여정을 마쳤다. 아이들은 피곤하다면서도 모두 뿌듯한 표정으로 너무 좋았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해댔다. 그렇게 오래 걸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스스로 뭔가 해냈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태그:#전주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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