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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남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중등) 교사다. 지역 아동센터하면 대개 초등부 학생들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그들 때문에 전쟁이 안 난다는 중학생 30여 명과 생활하고 있다. 전임자가 그만두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처음 6개월만 버티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던 중학생들과의 생활이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처음 만나던 날, 나를 바라보던 낯선 경계의 시선들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물론 그들은 나와 장르를 초월해가며 수많은 영화(?)를 찍은 끝에 이제는 모두 졸업했다. 방과 후에 만나는 아이들과의 하루하루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오늘도 내일도, 심지어 주말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때가 많다. 돌아보면 지난 시간은 힘들기도 했지만, 꽤 유쾌하고 즐거웠다.

 

제주도 여름캠프, 어린이날 행사, 동아리 발표회 등 프로그램도 꽤 열정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했다. 때로는 아이들이 귀찮아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다. 유독 센터에서 하루하루가 힘들게 지나간다. 이제까지는 뭔가를 시작하면 앞에서 끌고 다녔는데 올해는 팔다리 꽁꽁 묶인 채 꼭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것만 같다.

 

성남시 청소년 육성재단 청소년 프로그램 공모사업에 선정되다

 

지난 3월 '성남시 청소년 육성 재단'에서 '마을이 멘토다'라는 슬로건으로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작년에 정자 청소년 수련관 '미디어 서포터즈'팀의 지원을 받아서 본 센터의 아이들과 잠깐 영상 관련 수업을 했던 것이 무척 기억에 남았다. 더욱이 영상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 중 몇 명은 또 할 수 없느냐고 종종 묻기도 했다. 중학생 시기의 아이들은 무엇보다 영상에 민감한 시기이다. 

 

나 또한 평소에도 아이들과 영상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다 싶어 마감 당일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서 공모사업에 응모를 했다. 그렇지만 처음엔 무척 망설였다. 이런 거! 굳이 안 해도 될 일이니까. 이제껏 하던 일만 잘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러기엔 또 뭔가가 허전했다.

 

프로그램 제안서를 작성하면서 사전에 '성남 미디어센터'와 협의했다. 아이들 영상을 지도해주실 선생님을 보내주시고 장비와 공간도 실비로 대여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발표가 났다. 운이 좋게도 4개 기관 중에 한 기관으로 선정이 되었다.

 

하지만 선정이 된 기쁨에 앞서 '에구! 또 이렇게 일을 저질러버렸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기질이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 데 덜컥 일을 만들어 놓고 팍팍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오백만 원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끝까지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금방 싫증을 내는 아이들이 처음엔 호기심으로 열심히 하다가 금방 포기해 버리지는 않을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환경·인권·평화를 열쇳말로 한 뼘 영상 제작하다

 

이번 공모전의 열쇳말은 '마을이 멘토다'이다. 마을은 진정 멘토가 될 수 있을까? 마을이라는 따뜻한 '품'은 사라지고 정서적 개념이 흐릿해진 시기에 우리가 만들어 나갈 마을은 진정 우리들의 '멘토'가 될 수 있을까? 이번 영상 수업의 승패는 거기에 달린 셈이다. 자치회의를 통해서 영상수업에 참여할 아이들을 뽑았다. 30명 중 절반 정도가 참여하고 싶어했다.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 수업을 맡아 줄 강사 선생님과 처음 만났다.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진행해야 하는 나나 모둠별로 영상을 지도해 줄 선생님이나 저마다의 표정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왜냐고? '중.학.생!이니까.' 어르고 달래고 또 협력해야 하니까. 한편 이 예상 불가능한 아이들과 함께 어떤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설렘 같은 것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이제껏 아이들과 함께 해왔던 모든 프로그램이 그랬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는 폭풍 같은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나는 모니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수화기를 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우선 모둠은 셋으로 나누었다. 모둠별로 '인권', '환경', '평화'라는 열쇳말을 제시하고 형식이나 내용은 강사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자유롭게 정하도록 했다. 수업 첫날은 센터에서 간단히 영상에 대한 기초이론을 배우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선생님들과의 친밀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으레 그렇듯이 아이들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세 선생님에게 그날 수업을 끝날 때까지 외면까지는 아니지만, 처음 내가 느꼈던 그런 낯선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2차시부터는 성남 미디어 센터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시설과 장비를 갖춘 곳에서 하는 영상 수업은 역시 분위기도 달랐다. 첫날과 달리 두 모둠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금방 친해졌다. 역할분담과 시나리오도 제법 진행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결성이 된 모둠은 '떨거지 모둠'이라며 수업내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담당 선생님도 일정이 있어서 도중에 먼저 자리를 떠나야 했고 임시로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하셨다.

 

3차시부터는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될수록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겼다. 아이들이 나에게도 출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엑스트라로.  다른 모둠의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나 그림자' 같은 사람인데.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처음엔 기겁하며 거부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요구는 집요했다. 그래 출연까지는 좋다. 뭐! 엑스트라니까. 지금껏 판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니까.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그리고 밧줄에 꽁꽁 묶인 나!

 

1모둠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과도한 체벌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 나눈 뒤 그것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짰다. 물론 나는 그 과도한 체벌을 한 선생님 중 한 명으로 등장해야 했고 게다가 마지막엔 그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받는 내용이었다. 비록 시나리오상의 설정이고 게다가 한 학생의 꿈속에서 나오는 장면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밧줄로 꽁꽁 묶이고 그들에게 갖은 원망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하여 막상 촬영을 진행할 때는 내용 수위를 두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알 수 없는 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자는 지도 선생님과 아이들의 의견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밧줄에 꽁꽁 묶인 나! 너무 안쓰러웠다. 반면에 아이들은 너무나 신이 났다. 평소에 쌓인 걸 한꺼번에 풀려는 기세였다. 이런 게 바로 역지사지던가!

 

2모둠은 '평화'를 열쇳말로 인터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스톱모션'이라는 생소한 촬영 기술을 접목한 방식이었다. 우선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라는 전제로 가까운 사람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물론 나도 한 꼭지를 출현해야 했다. 근데 평화, 그거 뭐지? 내가 도대체 카메라 앞에서 뭐라고 말한 거지. 미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은 내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부터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2모둠은 섭외에 한계를 느꼈는지 토요일에 별도로 촬영을 더 하기로 했다.

 

거리의 시민들을 만나서 그들이 생각하는 평화를 담아 오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시도한 인터뷰는 생각지도 못한 거물 인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수많은 인터뷰 내용 중에 나는 평화는 자신의 조용함이라고 말한 OO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왜? 그가 수업시간에 조용하면 그 시간은 정말 평화로우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직 비디오... 학생 미혼모의 눈물!

 

의외의 반전이었다. 첫날 '떨거지 모둠'이라고 잔뜩 입술을 내밀고 고개만 푹 숙인채 앉아 있던 3모둠은 선생님의 강한 카리스마 앞에서 한팀이 되었다. 가장 늦게 시작했으면서도 촬영이나 섭외 등은 가장 빨랐다. 실화를 바탕으로 미혼모의 아픔을 주제로 한 뮤직비디오였다. 물론 나는 이 모둠에서도 다시 한 번 원하지 않는 엑스트라, 학생 미혼모를 심하게 꾸짖는 아버지로 출연해야 했다.

 

여름 방학 내내 진행한 촬영은 이제 마지막 순서만을 남겨두고 있다. 처음 영상 수업을 시작 할 때의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나의 예민한 신경을 긁었다. 그래도 최대한 평정심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16일 수요일 저녁 '성남 미디어센터 미디어홀'에서 아이들의 부모님과 후원인, 자원교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한뼘 영상 발표회를 진행했다. 물론 발표회를 진행하는 과정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사회, 촬영 그리고 발표회 진행까지 모두 학생들이 직접 준비하고 진행했다. 발표회는 기대이상이었다. 과분하게도 한편의 독립영화를 본 것 같다는 평도 있었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서 준비한 사전 질문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열띤 질문과 답변이 오고갔다. 

 

한편의 작은 축제를 무사히 마친 아이들의 표정에선 알 수 없는 자긍심! 뭐 그런 것들이 조금 엿보이기도 한다. 하긴 그들도 나만큼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을 것이다. 조만간 다시 본래의 그 악동같은 표정을 드러 낼테지만. 센터에서 아이들은 매번 두드린다. 책상을 두드리고, 바닥을 두드린다. 그러다 보면 위에서 수시로 아래층에서 항의가 빗발친다.

 

때로는 제법 떨어진 건물에서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로 항의가 들어온다. 두드리면 시끄럽다. 두드리면 소리가 난다. 두드리면 울림이 있다. 이 영상수업의 또 다른 제목은 두드림(Do Dream)이다. 우리는 최소한 이번 만큼은 책상이나 바닥이 아니라 각자의 꿈을 두드렸다. 항의와 비난이 아니라 당분간은 하염없는 칭찬이 필요하다.

 

이번 영상 수업을 통해 충분이 두드렸고 그것은 더이상 소음이 아닌 각자의 영혼 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아 소중히 간직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사업비 정산 보고의 무한 압박감, 아! 한 달 전에 잃어버린 영수증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성남투데이>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태그:#마을, #청소년 육성재단, #지역아동센터, #한뼘 영상, #성남 미디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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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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