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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조합 설립과 운영의 권리가 박근혜 정부에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바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법외노조 시도 때문이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는 설립 신고조차 받아주지 않고 있으며, 전교조는 노조 자격을 박탈하는 법외노조 통보를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공익을 해치는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어떤 단체든 설립할 수 있고 여기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 결사의 자유 원칙이 아닌 별도 조항으로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두 개의 조직이 있다. 헌법 제8조에 명시된 정당과 제33조에 적시된 노동조합이다. 그만큼 정당과 노동조합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민주주의 구현에 필수적인 조직이다.

그런데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조합의 자주권이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2013년에 목도하고 있다. 10%도 안 되는 노조 조직율을 가진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그나마 존재하던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까지 해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사라진 노조해산권, 법외노조로 부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전교조 탄압 규탄, 법외노조 결정 철회 촉구 전국교사대회가 열리고 있다.
▲ 전교조 결의대회 "참교육 한길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전교조 탄압 규탄, 법외노조 결정 철회 촉구 전국교사대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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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도 하지 않았던 이런 반헌법적 시도를 박근혜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무지와 노동에 대한 천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에서 노조해산권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이 조항은 사라졌다.

1953년 3월 제정된 노동조합법 제31조는 노조 해산의 사유를, 제32조는 해산명령을 규정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노조는 규약과 파산, 노조의 결의 등 자체 이유에 의해 해산하는데, 특별히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하였을 경우에 행정관청은 노동위원회의 결의를 얻어 해산을 명할 수 있다"는 별도 조항을 두었다.

그러다가 5·16 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1963년 노동조합법을 개정하며서 해산명령 관련 조항을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의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하거나 공익을 해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해산을 명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애초의 "공익을 해하였을 경우"가 "공익을 해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바뀐 것이다. 독재정권이 자의적 판단에 의해 노조해산을 훨씬 쉽게 만든 셈이다.

이후 유신시대와 5공군사정권에서 여러 차례 노동조합법이 개정되었지만 노조해산 명령에 관한 조항은 특별한 변화 없이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까지 계속 유지되었고, 그 사이 실제로 많은 노동조합이 이 조항을 근거로 해산되기도 했다.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1987년 11월 노동조합법이 개정되면서 군사독재정권의 잔재였던 제32조(노조 해산 명령) 조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이렇게 해서 행정관청에 의한 노조의 해산은 노조의 임원이 없거나 2년 동안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는 방법만 남았다. 그나마도 노동부가 노조를 해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없어진 노조의 해산을 노동부가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인하는 절차다.

그런데 이렇게 군사독재의 유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노조 해산권이 다음해인 1988년 노태우 정권에 의해서 노조 아님 통보라는 변칙 조항으로 부활했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국회 입법으로는 노조해산명령권을 부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령인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한 것이다.

1996년 기존 노동조합법이 폐지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으로 통합될 때에도 노동조합 해산 명령권은 부활하지 못했는데, 이어서 만들어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에 일부 조항과 문구만 바뀌어서 노조 아님 통보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정부에 의한 강제적 노조 해산 명령은 실제로 발동된 사례가 없으며, 시행령에 의한 노조 아님 통보 조항 역시 적용된 사례가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시도를 하면서 사실상의 노조해산명령이 이름만 바꾸어 부활한 것이다.

즉, 노조해산명령은 권위주의 시절 노동자를 탄압하던 군사정권의 잔재였는데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라는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 또 다른 군사정부인 노태우 정권에 의해 시행령으로 숨어들어 명줄만 유지하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노조 해산명령과 법외노조 통보 조항의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그것이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조해산 명령이 사라지는 역사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이 강화되는 역사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 민주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과 방하남 고용노동부(노동부) 장관만 모르는 듯 하다.

1500여 명의 해직 교사는 왜 발생했나

1989년 발생한 1500여 명 교사들의 해직장면은 지금도 상당수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교원노조는 대한민국 건국 당시에는 불법이 아니었다. 교원노조를 불법이란 이름으로 탄압한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독재정권이었다.

실제로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교사와 공무원의 노동3권을 금지하지 않았다. 제헌헌법은 노동3권을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했으며,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3권을 금지하는 특례규정도 없었다. 즉, 제헌의회 당시에는 교원노조를 만드는 것이 합법이었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후 1953년 제정된 노동조합법에서도 군인과 경찰, 교도관과 소방관의 노동기본권은 금지했지만, 일반 공무원과 교원의 쟁의행위를 제외한 노동기본권은 인정했다. 이렇게 인정되었던 교원의 노동기본권은 1961년 박정희의 5·16 쿠데타 후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

쿠데타 후 들어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9월 국가공무원법을 공무원의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을 위한 집단행동을 금지하도록 개정하고, 1962년 12월 헌법 개정을 통해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3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쿠데타 세력은 교육민주화를 요구하며 설립된 최초의 자주적 교원노조 4·19교원노조를 강제 해산하고, 1500여 명의 교사들을 용공세력으로 몰아 해직시켰다.

강제 해산된 교원노조와 박탈된 교사들의 노조설립권은 유신과 5공을 거치면서 여전히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다시 교원노조가 움트기 시작했다. 6월 항쟁 후 교원노조 설립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되면서 1989년 3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회복하는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은 "군인, 경찰공무원, 교정공무원, 소방공무원을 제외한 6급 이하의 모든 공무원에게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가입할 수 있고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이로써 5·16 쿠데타에 의하여 강제해산된 교원노조가 거의 30년만에 다시 빛을 볼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법 개정안이 무산됐다.

당시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등 야당들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주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교원노조는 다시 불법노조로 낙인 찍혀 4·19교원노조처럼 1500여명의 해직교사가 생겨났다. 즉, 노태우 군사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없었다면 전교조에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지도 않았고,1500여 명의 해직교사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 당시 1997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전교조 합법화에 대한 노·사·공익 3자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입법화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해 1999년 1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드디어 전교조가 합법화되었고, 뒤이어 노무현 참여정부 출범 후 공무원노조가 합법화됐다.

전교조를 합법화시킨 것은 김대중 정부이지만 가장 크게 공헌한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13대 국회에서 이해찬, 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인방이었던 노 대통령은 교원노조의 당위성에는 찬성하지만 분단 현실에서 당장은 어렵다던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원노조가 제헌의회 때부터 합법이었던 점과 군사정권 시절에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는 점, 구체적으로 4·19와 6월 항쟁이라는 우리 사회 민주화의 분위기가 최고조였을 때 설립되었다가 두 번 모두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거나 불법화되어 교사들이 대량 해직의 고통을 겪었다는 점 등은 교원노조의 역사가 곧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악법 인정한 새누리당?... 즉답 피한 환노위 간사

박근혜 대통령.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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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노조는 설립과 탄압을 반복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군사정권의 탄압을 뚫고 어렵게 합법화된 교원노조가 다시 존재 자체가 부정될 위기에 처했다.

전교조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세력뿐 아니라 UN인권위, ILO의 권고, OECD 가입조건 등에서 알 수 있듯 전 세계 양심적 민주세력의 지지로 합법화되었다. 그런 면에서 전교조를 탄압하는 정권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아래 환노위) 국정감사장에서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은 "악법도 법인 만큼 현행법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새누리당 스스로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지하는 현행 노동법이 악법임을 인정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새누리당 환노위 위원들도 이상하리만치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한국노총 사무총장 출신인 환노위 새누리당 간사 김성태 의원은 전교조 법외노조와 관련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환노위 차원에서 노동부와 전교조를 중재하는 작업을 했는데 성사가 안 되었다"면서 공식적인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핀란드 등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교원노조를 탄압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UN결사의자유위원회나 ILO가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은 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는 권고를 수차례 대한민국에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시민단체뿐 아니라 민주당과 진보당 등 야당과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를 비판하고 나선 상황에서 여전히 노동부만 법외노조 통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위헌 헌법소원이나 법원에 제기될 가처분 신청,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UN인권위나 ILO 제소 결과에 따라 노동부의 이 고집이 대한민국 정부를 국제적으로 망신시키고 박근혜 정권을 곤경에 빠뜨리는 자충수라가 될 것이라는 경고에 이제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태그:#박근혜, #전교조, #법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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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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