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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모텔에서 막 나온 남녀를 태울 때는 어떤 심정이 드나요?" "머리속이 복잡해집니다. 보, 보, 복잡한 심경이...호기심이 발동한다고 할까."

택시운전사의 일상을 일기로 기록해 펴낸 <달리는 인생>(오마이북) 출간기념 '김창현과 함께 하는 저자와의 대화' 시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묻자 저자 김창현씨는 그날을 떠올리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어갔다.

200여 석의 울산북구청 대강당에서 지난 30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날 행사는 오연호 대표의 15분 미니특강 '행복지수 세계1위 덴마크에서 배운다'에 이어 저자 인사말, 오 대표와 김창현의 북콘서트 순으로 진행됐다.

진보정치인이 택시노동자를 선택한 이유

30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김창현 전 울산 동구청장이 대화하고 있다
 30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된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에서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와 김창현 전 울산 동구청장이 대화하고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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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사무총장과 울산동구청창을 역임한 김창현의 인생은 평범하지는 않았다. 그는 학생운동-강제 징집-노동운동을 이어오다 결혼 후에는 소위 서울남부지역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경험했다. 1998년 울산 동구청장으로 당선된 직후에는 다시 영남위 사건으로 구청장직을 잃고 감옥살이를 했다.

국가보안법 문제 등으로 구속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는 오랜기간 민주노동당 혹은 통합진보당 울산시당위원장을 맡는 등 진보정치 실현에 매진해 왔다. 정치판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그는 돌연 택시노동자의 길을 선택했다.

<달리는인생>은 김창현씨가 2012년 7월부터 1년간 택시노동자로 일하며 울산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면서 승객들과 나눈 대화와 에피소드를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10대 청소년에서부터 젊은 여성, 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민들은 택시기사인 그와 대화하면서 고민을 털어놨고, 그러면서 그는 어느새 카운슬러가 되어 있었다.

김창현씨는 "왜 택시노동자를 선택했나, 다시 정치인이 되기 위해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일종의 쇼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울산 북구가 어디입니까? 노동자들의 아성, 진보정치의 1번지 아닙니까? 질 수 없는 선거(2012년 총선)에서 지고난 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당직을 내놓고 노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정치였는데, 택시노동자로의 시작은 정말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노동자를 말하면서도 땀을 흘리지 않았던 이중성을 벗어나고 싶었죠. 그런데 막상 일을 하려니 받아주는 데가 없는 겁니다. 택시도 마찬가지였죠. 마침 사장이 대학 선배이고 노동조합이 공동경영을 하는 '화진택시'여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인생>에 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여성들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방법을 배웠다. 특히 친정어머니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승객의 80%는 여성입니다. 대화를 하다보니 소통하고 공감하는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정말~' '진짜~', '그래요~' 하고 거들어야 해요. 승객의 고민을 끌어내려면 공감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았죠. 잘 들어주면 됩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들과 가장 많은 대화를 했어요. 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시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만큼 키워줬으니 받아야 한다는, 그래서 고부갈등이 시작되나 봅니다."

저자는 1년간 택시 운전을 하며 어느새 여성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김창현씨의 어머니와 장모가 함께 울산 북구 같은 아파트 위아래층에 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연호 대표는 저자와의 대화에서 아내와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물었다. 아내인 이영순씨는 그의 뒤를 이어 울산 동구청장에 당선되었고,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나요?
"대학 1학년 때 만났어요. 하지만 그때부터 사귄 건 아니고요. 저를 좋아하는 많은 여학생 중 한 명일 뿐이었어요.(웃음)"

-<달리는 인생>을 보면 여성편에 주로 서 계시던데. 남편으로서 부인에게 어떻게 잘해주시는지?
"부부가 자녀문제 이외에 대화가 없으면 곤란합니다. 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하죠. 부부는 같은 취미와 가치관을 가지고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집에서 설거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이때 객석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여기 시어머니(김창현씨 어머니)가 와 계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소리친다. "장모님(김창현씨 장모)도 오셨어요."

좌중의 웃음과 함께 설거지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카운슬러가 된 택시노동자

30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달리는 인생> 김창현 저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30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달리는 인생> 김창현 저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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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달리는인생>에서 서민들의 애환, 비정규직노동자의 설움, 청소년들의 고민, 부부간의 갈등 등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이야기를 생생하면서도 위트 넘치게 묘사했다. 특히 자신이 경험한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임금체계와 노동환경을 여러차례 언급해 놓았다.

"택시 운전 1년은 보람과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택시안에서 갑자기 치고받고 싸우는 부부를 봤고,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이 앉지도 못한 채 12시간 일하는 사연도 들었습니다. 고3 학생들은 저마다 '인서울'을 외치죠. 서울 가야 인간답게 산다는 풍토가 심각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별에 피눈물을 흘리고, 중소기업 사장은 재벌 후려치기에 대해 하소연을 하더군요"

<달리는 인생>에서 저자는 서민들과 나눈 대화에서 애환을 발견하고 나름의 대책도 제시한다. 부부간엔 공동의 가치관과 문화가 있어야 하고, 학생들에겐 여행을 떠나라고 조언하고, 청소년을 예비범죄자로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등이 책에서 저자가 내놓은 해법들이다. 공교육 강화와 대학평준화도 대안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택시노동자로 일하면서 이 사회의 여러가지 모순점도 발견했다.

"이곳 북구청장이 중소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할인점 코스트코를 막으려다 고통을 겪었잖아요. 그런데 승객들은 코스트코가 너무 좋다는 겁니다. 진보정치를 하면서 많은 주장을 했는데, 승객들 말을 자꾸 듣다보니 고민이 깊어지는 겁니다. 우리의 주장이 과연 옳았나 하는."

저자 김창현은 1년간 택시노동자로 일하면서 지난 20년간 해온 진보정치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고도 고백했다.

"카운슬러가 되려면 들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진보정치인들은 짧은 시간에 자기 말만 하려고 하죠. 말하려 하지말고 들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그들의 입장을 들어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저자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여러 에피소드를 경험했다. <달리는인생>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소개돼 있다. 바람 피우는 남편을 미행하는 아내, 새벽에 모텔에서 나오는 중년 여성 등.

<달리는 인생> 중간중간에는 택시노동자들의 고달픈 삶도 전해진다.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새벽 5시부터 12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그들의 삶과 기본급 30여만 원에 '무노동 유사납금'에 시달리는 택시노동자들의 고통 말이다.

"택시가 많아지면서 택시노동자는 최저임금도 못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노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제도의 문제입니다.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만들어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택시운전자의 친절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는  어느새 택시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보람과 배움의 시간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비정상적 임금체계를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사실 보름 일하고 그만두려고 했어요. 요령을 몰라 하루종일 택시 운전을 하니 허리가 너무 아파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택시는 사납금이라는 고통스러운 덫에 걸려 있어요. 택시기사에게는 화장실도 없습니다. 그때 그때 해결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같은 택시노동자의 삶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루하루 독자가 생기더니 어느새 마니아층까지 생기더란다. <달리는 인생>이란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연호 미니특강] 덴마크의 행복 키워드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는 30일 오후 7시부터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 시간에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15분 미니특강을 진행했다.

오 대표는 지난 4월과 6월 덴마크에 다녀온 일을 이야기하며 덴마크의 행복 키워드를 소개했다. 그는 덴마크의 첫번째 행복 키워드가 자유라고 설명했다. 덴마크 국민 스스로가 선택해서 얻는 자유는 즐겁다는 것.

그는 "덴마크 학교 교육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것"이라며 "교장은 성적이 아닌 능력을 칭찬하고 학생들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미래를 설계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1년간 인생설계를 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대학 졸업 후에도 마찬가지다. 1년간 인생설계 후 진로를 찾는 것이 덴마크 국민들이 행복한 주요인이라고 오 대표는 소개했다.

특히 회사가 직원들의 가정의 평화까지 신경 쓰는 부분은 놀라웠다고 전했다. 회사에서 저녁 도시락을 배달해주면서 가족들과 대화하도록 시간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또한 덴마크 행복의 키워드인 평등도 소개했다. 덴마크에서는 택시기사와 의사가 동등하게 대우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평등한 사회는 스스로의 자부심과 철저한 사회안전망에 기인한다고 오 대표는 덧붙였다.

오연호 대표는 "주치의와 교회 목사, 학교 교사와 촘촘한 사회안전망이라는 4개의 네트워크는 덴마크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주요 장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연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달리는 인생 - 김창현의 택시일기

김창현 지음, 오마이북(2013)


태그:#달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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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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