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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슬슬 많이 먹기 시작하는 녀석들
▲ 진격의 삼남매 슬슬 많이 먹기 시작하는 녀석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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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구르트 한 팩을 사도 하루 이틀 밖에 가지 않으며, 셋째가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로는 쌀의 소비량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아이들 앞으로 10만 원, 20만 원씩 준다고 기껏 생색을 내지만, 아이들 키우는데 그 금액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그런데 거기에다 얼토당토않은 사교육비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상상 그 이상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가계 수입이 절반으로, 아니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가장인 내가 철딱서니 없이 자신의 꿈을 좇겠다고 돈이 되지 않는 곳으로 이직한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 이야기 한 대로 투잡이라도 해서 돈을 보충한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는가?

안됐지만 이 역시 부정적이다. 나의 주 업무가 퇴근하는 직장인을 상대로 뭔가 벌리는 일이다 보니 저녁 시간도 만만치 않은 탓이었다. 돌아볼 때마다 몰라보게 커가는 아이들과 홀쭉해진 지갑. 과연 우리 가족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가계부 고정비 잡는 법, 보험 해지와 카드 자르기

쓸데없는 소비는 지양한다
▲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 쓸데없는 소비는 지양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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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봉급에 맞춰 살려고 하니 가장 먼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역시나 가계부였다. 현재 우리 가족의 지출에서 고정비와 변동비는 어떻게 되며, 고정비 중 어떤 금액을 줄일 수 있는지.

우선 아내와 내가 동시에 가리킨 것은 보험비였다. 실비와 같은 건강과 관련된 보험은 해지할 수 없었지만, 그 외로 들어가는 저축성 보험은 모두 해지하기로 했다. 물론 중간 해지에 따른 적지 않은 액수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어차피 저축성 보험의 특성상 돈을 더 넣는다고 10년이 지나 그만큼의 수익을 낸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이거 언제 해약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터였다.

다만 그와 같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보험을 해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은 그 보험을 들라고 권유했던 친구들과의 의리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 의리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가장 친한 녀석들이 지금 당장 어떻게 먹고 살 건지 고민하는 나를 도와줘야지, 설마 어떻게 보험을 해지할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진 않겠지.

적지 않은 손해에 배 아파하는 나를 보던 아내는 장모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보험 해약할 때는 손해 계산 대신, 보험회사에 돈을 내지 않아 그만큼 늘어날 내 통장 잔고를 생각하라는. 얼핏 들으면 조삼모사 같았지만 곱씹을수록 공감 가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보험이라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하여 현재를 저당 잡히는 것인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아니던가.

보험을 해약한 후 다음에 한 일은 신용카드 폐기였다. 물론 내가 평소에 할부를 많이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신용카드를 자른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내게 하나의 경각심을 일으켜 주었다. 어쨌든 이것저것 소비를 하면서 마일리지 등 때문에 쓸데없는 카드를 많이 만들지 않았던가. 더불어 신용카드 대신 쓰게 된 체크카드는 통장에서 돈이 바로바로 나가는 것을 보여주니, 조금이라도 더 돈을 아껴 쓰게 만드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가계부 변동비 잡는 법, 도시락 싸고 자전거로 출퇴근

건강과 절약 두 마리의 토끼
▲ 도시락 먹기 건강과 절약 두 마리의 토끼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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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비라는 고정비를 줄이고 나니 그다음 눈에 띄는 것은 변동비, 특히 그중에서도 내가 쓰는 교통비였다. 영업사원이었던 난 출퇴근 외에도 영업을 다니기 위해 차를 자주 몰고 다니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내직근무가 더 많은 터라 출퇴근 비용만 아끼면 되는 상황이었다.

아내는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라도 회사 가까이 이사를 하자고 했고 난 그 말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았다. 그동안 구로구 오류에서 인천 연안부두나 서울 답십리까지 1시간 넘게 회사에 다니면서도 굳이 이사를 하지 않겠노라고 내가 버틴 것은 출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 유일하게 가질 수 있었던 내 시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할 염치가 없었다. 돈을 적게 버는 대신 출퇴근 시간이라도 줄여 아내의 가사활동을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구로구에서 강동구로 이사를 기획하게 되었고, 이직하자마자 1주일 후에 강동구 강일동으로 이사를 왔다. 회사는 집에서 도보 20분, 버스 5분 거리로 가까워졌고, 아내는 내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좋아했다.

예컨대 이사 온 첫 달, 내 출근 시간이 2시간 정도 늦춰짐에 따라 아내는 아이 셋을 내게 맡긴 뒤 새벽 운동을 나가기도 했으며, 종종 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에 오기도 했다. 한창 아이들이 보채는 시간, 타요 혹은 록이(버스의 만화이름)를 타고 아빠 회사에 가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즐거워했고, 그만큼 시간은 잘 흐르기 때문이다.

이사 외에 우리의 교통비를 아끼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됐는데, 또 하나의 방법은 자전거 구입이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계속해서 똥배가 나오는 나의 건강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지만, 출퇴근에 드는 비용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 하루 왕복 2100원. 이제 아내에게서 용돈을 받지 않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써서 받는 원고료를 통해 개인적인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내게 자전거는 필수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교통비 절감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이왕에 돈 아낄 거 내게 도시락을 싸가라고 했다. 나는 아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또 점심시간이야말로 한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며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점심을 시켜먹는 경우도 허다했고 바깥의 짠 음식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아내의 권고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쨌든 돈도 절약하는 방법 아니던가.

결국, 난 책가방에 도시락통을 넣은 뒤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다니고 있다. 최근 시대의 유행이라는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되면서 도시락 싸는 일은 매우 드물어졌지만, 어쨌든 지금 난 예전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 분명하다.

남이 사면 내가 한번 안 사도 부끄러워 않겠다

맛난 건 언제든 환영
▲ 삼촌들 우리 맛난 거 사주세요 맛난 건 언제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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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을 해지하고 카드를 자르고 교통비와 식비를 줄이고. 그러나 기존에 받던 연봉의 절반으로 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일을 하겠노라고 결심한 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이야기했었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곤궁하니 내가 이 바닥에 있는 동안 웬만하면 얻어 먹고, 얻어 마시겠다고. 물론 농반진반의 이야기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상대방이 한 번 사면 내가 꼭 한 번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리기로 했다.

서로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한 친구 사이이며, 또한 지금 내가 하겠다는 일이 돈 벌기 바쁜 친구들을 대신해서 우리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로 만들려는 일 아니던가.

실제로 전 회사 거래처 담당 과장은 내게 좋은 일을 한다며 선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자신은 차마 현실의 무게 때문에 나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만, 이 대리가 하는 일에 격려하고 싶다며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보내준 것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래, 내가 하는 일이 아주 값어치가 없는 일은 아니구나.

그러나 위와 같은 지인 말고도 우리 가족을 돕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정부였다. 어느 날 주민센터에 다녀왔던 아내는 내게 희소식을 알려주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왜 이리 갑자기 소득이 많이 줄었느냐며, 이 정도 수준이면 보건소에서 하는 영양플러스 사업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는 아이들에게 영향 위험요인이 있느냐는 점이었는데, 보건소에서 검사를 해보니 막내에게서 빈혈 증상이 나타났다. 대부분 아기들이 모유를 줄이고 이유식을 시작하는 6개월 정도에 빈혈기가 조금 있다는데, 때마침 그 시기에 검사하게 된 것이다. 누나와 형에 비해서 덩치도 제일 크고 힘도 센 녀석이 어울리지 않게 빈혈이라니.

아내의 말에 따르면 영양플러스 사업으로 나오는 제품들은 꽤 훌륭하다고 했다. 채소들은 친환경 제품 위주로 짜여 있었고, 우유와 달걀은 하루 권장량 기준으로 제공되었다.

그래도 세상이 조금 좋아진 건 사실이구나. 어쨌거나 돈을 조금 번다고 국가에서 이렇게 먹을 것도 주고. 그러나 아내는 방심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금의 정부하에서는 그 보조금이나 지원 사업들이 언제 얼마나 깎일지 모른다고. 노인 연금 취소 등 지금 당장 우리는 그 꼴을 보고 있지 않느냐고.

강동구 선사축제
▲ 마을행사 참여하기 강동구 선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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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이너스... 대안은?

앞서서 언급했던 많은 절감의 노력들. 그러나 그럼에도 지난달 우리 가족의 가계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주원인은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차마 무시할 수 없는 경조사비용과 아직까지 간헐적으로 사 먹고 있는 외식 등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지금보다 배를 넘게 벌던 시절의 습관 때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역시 해결되겠지만, 과연 그때까지 우리의 잔고 액수가 버티는가가 문제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먹는 거야 적게 먹으면 되지만, 내년이면 6살 되는 까꿍이를 더 이상 집에만 있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월 10만 원이 되지 않는 국공립 기관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이겠지만, 국공립이 태부족한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녀석을 어디로 보내야만 할까?

또한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여행을 다니며 세상 견문을 넓히는 것인데, 이 역시도 지금의 경제적 상황에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다행히 내가 지역과 관련된 일을 하는 만큼 지역의 여러 행사를 참여할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와는 별도로 아이들과 함께 멀리 여행가고 싶은 것 또한 부모의 마음 아니던가.

멀리 가지 못해도 찾아보면 많은 지역축제들
▲ 한살림 가을걷이 멀리 가지 못해도 찾아보면 많은 지역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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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현실 속에서 꿈꾸는 가치 있는 삶. 물론 이 두 명제를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을 해결해보겠다고 사회적 경제에 투신하고는 있지만, 아직 짧은 시간 동안 일한 만큼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지역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바 그 해답의 가능성이 지금 바로 내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마을과 함께, 모두와 함께 하는 삶. 그것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절대 궁핍하지도 않는 삶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태그:#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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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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