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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된 유해는 흙을 털어낸 후 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것만 따로 모아 아세톤을 발라 건조시킨다.
 수습된 유해는 흙을 털어낸 후 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것만 따로 모아 아세톤을 발라 건조시킨다.
ⓒ 모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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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아?"

함께 유해를 수습하던 한 어르신이 물었다. 목장갑을 낀 손으로 호미질을 하다가 부서진 턱뼈 조각을 들어올리던 순간이었다. 턱뼈에 살짝 걸쳐 있던 치아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태어나 처음 접하는 사람의 뼈…. 난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충남 공주 왕촌 살구쟁이. 살구나무가 많아 봄마다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라 '살구쟁이'라 불리던 곳이란다. 하지만 1950년 7월 어느 날, 이곳에서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군경에 의해 총살됐다. 공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일부 수감자들과 보도연맹원들을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은 '인민군이 남하할 경우 동조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정이 전부였다. 이후 이곳은 죽일 살(殺), 원수 구(仇)를 쓴 '살구쟁이'로 그 뜻이 바뀌었다.

썩은 나뭇가지 같은 유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09년 1차 발굴로 4개의 구덩이에서 317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발굴단은 80여구의 유해가 추가로 매장돼 있는 것을 확인하고도 현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정부가 추가발굴 예산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5년 후인 지난 달 14일 충남도의 예산지원으로 남아 있던 유해 발굴작업이 뒤늦게 시작됐다.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를 하던 지난 달 15일, 유해발굴을 시작한다는 보도를 접하고 애잔한 마음에 내 발로 현장을 찾아갔다. 처음 찾은 살구쟁이 골짜기에선 음습함이 몸서리치게 몰려왔다. 가을볕이 따가운 한낮인데도 햇볕 한 줌 허락하지 않았다. 유해발굴을 책임진 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에게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박 교수는 다행히 흔쾌히 승낙했다.

치아와 함께 드러난 턱뼈와 금 보철 치아
 치아와 함께 드러난 턱뼈와 금 보철 치아
ⓒ 모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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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오전 11시께, 작업복을 갖춰 입고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유해와 대면했다.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구덩이에는 이미 수십 여구의 유해가 뒤엉켜 드러나 있었다. 구덩이 깊이는 놀랍게도 30~50cm 밖에 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반쯤 드러난 유해를 완전히 들춰내 개인별로 구분해 한지에 싸는 일이다. 흙 색깔이 유난히 검다. 조심스럽게 붓질을 하며 흙을 걷어내자 흡사 썩은 나뭇가지 같은 유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분 부서지고 쪼개져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다. 길쭉한 다리뼈와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둥근 모양의 머리뼈 조각이 검은 흙과 뒤엉켜 있다. 간간이 드러나는 치아가 사람의 뼈임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삭을 대로 삭은 유골은 손끝을 조금만 잘못 놀려도 바스러졌다. 그때마다 움찔 놀랐다. 손가락이 만지고 있는 물체가 사람의 뼈라는 생각에 신경은 곤두섰고 심장은 마구 뛰었다. 머릿속이 하얘질 만큼 무서웠다.

뼈에 붙은 흙을 털어 온전한 모습을 찾아주다

주어진 일은 수습한 유해를 개인별로 구분해 한지에 싸는 일이었다. 흙을 닦아낸 후 아세톤을 바른 후 잘 마르도록 늘어 놓는 일도 맡겨졌다.
 주어진 일은 수습한 유해를 개인별로 구분해 한지에 싸는 일이었다. 흙을 닦아낸 후 아세톤을 바른 후 잘 마르도록 늘어 놓는 일도 맡겨졌다.
ⓒ 모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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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사람의 뼈 중 가장 튼튼한 허벅지 뼈마저 삭아 없어진 유해가 많다"고 말했다. 64년이란 시간은 죽은 자들도 감내하기 힘든 긴 시간이었다.

유골들 사이로 벌레가 꿈틀거렸다. 손가락 굵기의 지렁이도 많았다. 평소 같으면 소리를 지르고 기겁을 했을 게다. 하지만 투박한 손놀림에 유골이 상할까 집중하다보니 벌레를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유해에 대한 두려움도 곧 사라졌다.

이날 해질녘까지 유해를 파내거나 발굴한 유해를 한지에 싸는 일을 했다. 이날 밤새 머릿속에는 낮 동안 수습한 유해들의 잔영이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또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 하루 사이에 20구 가까운 유해가 추가로 드러났다. 걷어낸 유해 아래로 또 한 겹의 유해들이 묻혀있었다. 구덩이조차 파기 싫어 좁은 공간에 겹겹이 묻은 것이다. 이들의 몸에 박혔던 탄두와 탄피도 한 움큼 발굴됐다. 오래된 안경도 나왔다. 그 세대에 유행했던 듯 김구 선생의 안경과 비슷한 둥근 모양이다. 흙을 털어내고 보니 금보철과 은보철한 치아도 있다.

이날도 수습한 뼈에 붙은 흙을 털어 온전한 모습을 찾아주는 일이 주어졌다. 이어 더 이상의 부식을 막기 위해 아세톤을 발라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아세톤 냄새가 골짜기에 고였다. 이후 팔, 다리, 갈비뼈 등 뚜렷하게 구분할 순 없지만 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것끼리 한지에 고이 쌌다. 번호를 매겨 이름도 지어준다. V-1-1, V-2-1, v-3-2… 모두 79다.

박 교수는 "아직도 유해가 묻혀있는 구덩이가 충남에만 여러 곳에 널려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일도 없는 힘겨운 작업... 모두 편히 잠드시길

수습된 유해를 한지에 싸기 전 분류하고 있다.
 수습된 유해를 한지에 싸기 전 분류하고 있다.
ⓒ 모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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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의 작업이 마무리됐다. 박 교수팀은 꼬박 2주일 동안 휴일도 없이 힘겨운 작업에 몰두했다. 며칠간의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행여 이들의 일을 방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빈말인지 모르지만 발굴팀은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발굴된 유해는 정밀 감식과 안치를 위해 모두 충북대로 옮겼다.

인근마을에 사는 철없는 아이들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수십 년 동안 발길을 끊고 고개를 돌렸던 살구쟁이. 유해발굴을 위해 잘라낸 나무 틈 사이로 이제야 햇살이 비춘다. 골짜기 전체에 따스한 온기가 퍼지는 듯하다.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혼백들을 위해 염원했다.

"불편한 사연 툴툴 털어버리고 모두 편히 잠드시길…."

살구꽃 만발한 살구쟁이 골짜기를 그려본다. 내년 봄, 살구나무 한 그루 심으러 다시 또 들를 생각이다.


태그:#살구쟁이, #공주 왕촌, #유해발굴,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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