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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린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오랫동안 나라를 이끌었다. 500여 년의 역사를 지킨 조선 왕조의 무덤 119기를 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왕릉(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빈이 묻혀 있는 원(13기), 대군·공주·옹주·후궁·귀인이 묻힌 묘(64기)로 구분하는데 왕릉 42기 중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 왕릉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조선의 27대 왕과 왕비 및 추존왕과 왕비의 무덤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유적지로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큰 봉분과 많은 석물들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자연을 중시하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아 자연친화적인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조선 왕릉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능(陵)이 여럿이다. 그중 영릉은 3기나 있다. 바로 4대 세종의 영릉(英陵), 17대 효종의 영릉(寧陵), 21대 영조의 맏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진종의 영릉(永陵)이 그러한데 우리나라 역대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 세종의 능이 영릉을 대표한다.

영릉(세종대왕릉) 입구 풍경
 영릉(세종대왕릉) 입구 풍경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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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22세에 임금으로 등극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32년간 재위하였다. 영릉(세종대왕릉)은 사적 제195호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세계문화유산을 알리는 표석이 정문 입구에서 맞이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왼편에 야외유물전시장과 세종전, 정면에 훈민문, 오른편에 세종대왕상과 재실이 있다.

야외유물전시장은 세종시대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시계·천상열차분야지도·자격루·관천대·측우기·혼천의·간의 등을 복원하여 야외에 전시하였고, 세종전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유물전시관으로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사용하거나 간행한 과학기구·악기·책을 진열하였고, 1970년 복원한 재실은 제관이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집으로 담장에 조선왕릉 40기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정자각과 영릉
 정자각과 영릉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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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의 한글에서 세종대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훈민문을 들어서면 물고기들이 노니는 연못(내연지)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맞이한다. 나무에 붉은색을 칠하여 신성 구역을 알리는 홍살문 앞에 속세와 신성한 지역의 경계역할을 하는 계류 위에 놓인 금천교가 있고, 홍살문을 지나면 정자각(丁字閣)과 왕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참도가 길은데 길옆으로 넓은 잔디밭과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이 있어 운치가 있다.

참도는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돌길로 왼쪽의 혼이 다니는 신도(神道)는 높게, 오른쪽의 임금이 다니는 어도(御道)는 낮게 만들어져 있다. 정자각은 왕릉에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지은 '丁' 자 모양의 집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 왼쪽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

수복방과 비각
 수복방과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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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의 왼쪽에 제례 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는 수라간, 오른쪽에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수복방과 영릉비가 서있는 비각이 있다. 영릉비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약력, 영릉을 옮긴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의 '조선국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가 왕비가 대왕의 왼편에 묻혔음을 알려준다. 영릉은 오른편의 소나무가 늘어선 계단을 올라야 만난다.

영릉(세종대왕릉)
 영릉(세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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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으로 국조오례의에 따른 무덤 배치가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둘러보면 멋들어진 낙락장송 앞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삼면에 둘러놓은 곡장,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설치한 봉분, 영혼이 나와 놀다 가는 혼유석,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장명등, 문인석과 무인석, 석양과 석마 등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영릉은 1446년에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헌릉의 서쪽에 미리 쌍실의 능을 만들었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이후 세조 때부터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주장이 있어 예종 때인 1469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봉분과 장명등 사이에 있는 혼유석 2좌가 합장릉을 알린다. 능에서 바라보는 아래편의 풍경도 아름답다.

그림자
 그림자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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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에서 내려오다 노송이 만든 멋진 그림자를 만났다. 하지만 그림자는 모양과 크기가 수시로 변하는 허상이다. 500여 년의 역사를 완전한 형태로 묵묵히 증명하고 있는 조선 왕릉의 가치가 크다는 것을 멋진 그림자가 알려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10월 4일 세종대왕릉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여주, #영릉, #세종대왕릉, #세종전, #훈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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