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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이란 보람되기보다 참 우울한 일이다. 우선 지방노동위원회의 구제승인율이 그다지 높지 않고, 다수의 신청인들은 실질적인 복직보다는 이 과정에서 적절한 합의에 이르기를 바란다. "회사의 주인인 내가 맘에 안 들어 잘랐는데 뭐가 문제냐"는 사용자들의 핏발 서린 주장에 맞서 설령 구제가 되더라도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일하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이다. 민주노총 소속의 위원이고, 필자와 같이 민주노총 소속인 노동자위원은 경기지역에만 십수 명이 있다. 일 년 남짓 노동자위원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해고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리 사회가 해고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사용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권한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한 나머지 근로기준법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그 결과 너무 쉽게 사람들을 잘랐다. 반면 대부분의 신청인들은 해고를 현실로 받아들였다. 홧김에 '사장, 엿 먹어라'하고 구제신청을 낸 사람, 이렇게라도 해야 몇 푼의 합의금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 심판 회의가 있는 당일, 위원회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니면 위원회 로비에서 조사관을 붙잡고 합의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열에 두세 명이다. 실제로 복직의 의지가 있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심판회의를 하면서 사용자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하나는 "노동위원회는 해고자를 구제하기 위한 기관임을 알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떠한 경우라도 해고는 최후의 수단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위원회는 법원과 달라서 해고 사건을 갑과 을, 계약자 당사자간의 다툼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곳이다. 해고된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최대한 구제를 해주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하는 곳이 노동위원회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보통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된 해고 사건이 법원으로 가면 부당해고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신청인에게 회의가 끝나면 꼭 이야기해준다. "위원회에서 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민사 가세요.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부당해고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만 알아서 현장에서 대응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몇 가지만 알고 대처하더라고 원하던 곳으로 복직이 되든, 부당하게 해고된 기간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든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부당해고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만 알아서 현장에서 대응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몇 가지만 알고 대처하더라고 원하던 곳으로 복직이 되든, 부당하게 해고된 기간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든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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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민사에 가려면 변호사 비용을 비롯해 소송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이기면 확보된 임금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지만 해고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모험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부당해고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만 알아서 현장에서 대응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적어도 아무리 치사하고 더러워도 자필의 사직서는 쓰지 말 것, 열 받는다고 무단으로 결근하지 말 것, 강압적인 징계나 사직 권유는 반드시 녹취하거나 기록으로 남길 것 등등. 이런 몇 가지만 알고 대처하더라도 원하던 곳으로 복직이 되든, 부당하게 해고된 기간의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든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억울하게 잘리고 뒤돌아서서 눈물 훔치지 말자. 우리 사회의 해고 지수를 조금만 낮추어 보자는 바람에서 본인이 경험한 노동위원회 해고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병역특례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
-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다 해고된 김동식씨의 사례

91년생. 산업기능노동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병역특례로 A사에 근무하던 김동식(가명)씨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해고무효구제신청을 했다.

추간판탈출증(허리 디스크)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고 A사에 산업기능요원으로 취직한 김씨는 병역특례 복무기간인 26개월 근로계약을 하고 자재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다. 회사는 김씨를 채용할 당시 김씨의 병력을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특례병을 사용해오던 관행대로 큰 문제로 삼지 않고 김씨를 채용했다. 김씨는 잔업과 휴일근로도 회사가 요구하는 만큼 거의 빠지지 않고 했고, 타 부서 회식에도 불려갈 만큼 회사내 평판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씨의 3개월 수습기간 중에 발생했다. 자재를 옮기던 일을 하던 중 김씨가 허리가 삐끗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업무상 재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회사에 산재나 공상을 요구하면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웠던 김씨는 회사에 연차 하루와 반차를 요청해 병원치료를 받았다. 회사는 김씨가 공상이나 산재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씨의 부상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치료비조차 김씨 사비로 지출했다.

이후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관리자는 김씨를 불러 "허리가 좋지 않은데 일할 수 있겠느냐, 그만 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사직을 권고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군복무 대신 병역특례를 선택한 김씨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고, 회사도 이를 받아들여 김씨의 수습기간을 두 달 연장하여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회사는 돌연 수습기간을 연장하기로 계약서에 서명한 바로 다음날 김씨에 대해 "실시한 업무평가에서 '동료들과 업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김씨를 해고한다.

위원회 심판회의에서 신청인인 김씨는 ▲ 본인의 업무는 자재창고에서 혼자하는 일인데 무엇을 보고 동료들과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고 평가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 제품에 대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납품기일에 단 한 차례도 차질을 빚은 적이 없다 ▲ 오히려 회사에서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며칠 치료를 위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회사가 요구한 잔업과 특근을 모두 다 했다고 주장했다.

회사 역시 회사의 업무평가서에 주요한 해고사유로 명시된 "동료들과의 업무가 원활하지 않다"는 표현이 평가자에 의해 다소 주관적인 사유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오히려 김씨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편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회사는 사전에 제출된 자료와는 다소 다르게 "최근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어 인턴사원이나 계약직 근로자들 30명에 대해 계약을 해지하였으며 김씨가 설령 복직하더라도 다시 구조조정될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회사는 "김씨가 26개월 계약기간이 정해진 산업기능요원이므로 기간제노동자의 처우에 준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산업기능요원은 근로기준법이 일반인과 똑같이 적용되고 3개월 수습기간이 지나면 정규직 노동자 신분을 갖게 된다.

최후 진술을 마친 뒤 각 위원들의 변론이 있었는데, 이례적으로 사용자 위원까지 "공무상 재해를 입은 자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큰 차질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 점, 또한 해고될 경우 다시 군복무를 해야 하는 특수한 처지라는 점을 들어 해고의 이유를 포괄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는 취지의 변론을 하였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5일, 최종 이번 사건을 부당해고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태그:#해고, #노동위원회, #노동자, #해고구제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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