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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눈인사를 합니다. 아이 미소가 환한 조명보다 더 밝습니다.
▲ 미소 선생님과 눈인사를 합니다. 아이 미소가 환한 조명보다 더 밝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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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음악이 잘 어울리는 계절이죠. 낙엽은 조용히 떨어지는데 전남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화장실이 요란합니다. 꼬마 신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곧 열릴 연주회를 위해 옷 갈아입느라 난리법석입니다. 방금 받은 연주복이 왠지 몸에 착 달라붙지 않습니다.

화장실 한 가운데 서 있는 덩치 큰 꼬마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눈치를 살피니, 몸에 비해 옷이 너무 작네요. 위쪽 단추 두 개는 겨우 채웠는데 나머지 아래쪽은 속수무책입니다. 세면대 귀퉁이에서는 키 작은 아이가 바지춤을 잡고 울상입니다. 자세히 보니, 바지가 너무 큽니다.

손을 놓으니 바지가 줄줄 아래로 내려갑니다. 저를 쳐다보는 눈빛이 애처롭습니다. 지난 2일 오전, 목포시민문화센터에 도착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모두들 조금 들뜬 기분입니다. 넓은 공연장에서 멋지게 악기 연주할 생각 때문입니다.

웅장한 건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들, 한 해 동안 바이올린과 플루트 그리고 오카리나와 우크렐레(작은 기타같이 생긴 4현 악기)를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오늘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무대에서 뽐낼 모양입니다. 문화센터로 들어온 아이들이 객석에 앉아 공연장을 둘러봅니다.

깊어가는 가을, 목포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습니다.
▲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깊어가는 가을, 목포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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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우리아이사업단'과 함께하는 향상음악회가 전남 목포에서 열렸습니다.
▲ 음악회 제2회 '우리아이사업단'과 함께하는 향상음악회가 전남 목포에서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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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실내에서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니 긴장됩니다
▲ 대기실 어두운 실내에서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니 긴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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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연습했더라면... 무대가 두렵지 않을 텐데 아쉽네요

환한 조명이 눈부신 무대를 보니 긴장됩니다. 무대 천장이 참 높습니다. 바닥도 너무 넓습니다. 너무 매끈해서 잘못하면 넘어질 지경입니다. 모든 분위기가 아이들 가슴을 오그라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재밌고 친절하게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잠시 뒤, 맑은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무대 뒤 출연자 대기실로 자리를 옮긴 아이들이 리허설을 준비합니다. 어둑한 실내에서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니 긴장되고 설레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무대로 나가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아이들이 각자 챙겨온 빛나는 악기를 꺼내 들고 무대로 걸어갑니다. 차례로 줄 맞춰 자리를 잡았습니다. 뒤따라온 선생님이 손을 움직입니다. 아이들이 선생님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합니다. 긴장한 몇 명이 불협화음을 냅니다. 좁은 연습실에서 장난치며 보낸 시간이 후회됩니다.

좀 더 열심히 연습했더라면 넓은 무대가 두렵지 않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나마 리허설이 있어 다행입니다. 공연 시작되면 그동안 몸에 익힌 대로 연주할 도리 밖에 없습니다. 간단한 리허설을 마친 아이들이 휴게실로 자리를 옮깁니다. 잠시 기다리니 자원봉사에 나선 선생님들이 공연에 입고 갈 멋진 연주복을 가져왔습니다.

줄줄 내려가는 바지 고정시키는데 요긴한 물건입니다.
▲ 핀 줄줄 내려가는 바지 고정시키는데 요긴한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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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선생님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합니다. 긴장한 몇 명이 불협화음을 냅니다. 좁은 연습실에서 장난치며 보낸 시간이 후회됩니다.
▲ 리허설 아이들이 선생님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합니다. 긴장한 몇 명이 불협화음을 냅니다. 좁은 연습실에서 장난치며 보낸 시간이 후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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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종을 울려야 할까요? 선생님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 긴장 언제 종을 울려야 할까요? 선생님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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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터질 듯한 단추... 옷이 바쁜 걸음 붙잡습니다

헌데, 마땅히 옷 갈아입을 곳이 없네요. 선생님이 궁리 끝에 화장실을 택했습니다. 아이들이 손에 옷 한 벌씩 들고 모두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화장실에 들어가니 다른 팀 아이들도 많이 모여 있네요. 화장실로 밀려든 아이들이 옷 입느라 북새통입니다. 넥타이는 처음 걸쳐봅니다.

때문에 줄을 어떻게 잡아 당겨야 할지 난감합니다. 둥그런 모자는 아무리 매만져도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옷 입느라 보내고 있는데 화장실 밖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애타게 부릅니다. 옷이 크든 작든 대충 입고 나오면 선생님이 필요한 조치를 해주겠답니다.

그 말 듣고 화장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화장실에서 대충 옷 걸치고 나오는 꼬마 신사들, 한 해 동안 열심히 악기연습 했습니다. 사회서비스기업 '남도누리'라는 곳에서 진행하는 '제2회 우리아이사업단과 함께하는 향상음악회'에 출연할 아이들입니다.

오늘은 여덟모임이 무대에서 그동안 닦은 솜씨를 자랑할 참입니다. 그 소중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바쁜 발걸음을 붙잡네요. 어떤 아이는 바지춤 붙잡고 나옵니다. 뱃살 약간(?) 많은 아이는 단춧구멍에 겨우 단추를 끼워 넣어 거북스런 몸짓입니다. 금방이라도 단추가 터져버릴 듯 아슬아슬합니다.

점심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중한 악기는 잠시 잊었습니다.
▲ 악기 점심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소중한 악기는 잠시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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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가 선생님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합니다. 긴장됐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 집중 큰애가 선생님 지휘에 맞춰 악기를 연주합니다. 긴장됐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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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이 멋진 음악을 연주합니다.
▲ 선생님 공연 선생님들이 멋진 음악을 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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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눈인사 하는 아이, 환한 미소가 아름답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대부분 넥타이 줄이 엉망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최선 다해 옷 입고 선생님에게 달려옵니다. 한사람, 한사람 옷을 매만져준 후 선생님은 아이들을 휴게실로 이끕니다. 재빨리 점심을 먹어치우고 공연을 준비해야지요. 일회용 도시락이 예쁘게 줄맞춰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도 도시락 앞에 눌러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습니다. 선생님 마음은 바쁜데 아이들은 느긋하게 도시락을 즐기네요. 도시락이 모두 비워지자 또다시 선생님이 아이들을 재촉합니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른 모임 연주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요.

자신들 모임과 견줘 얼마나 잘 연주하는지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습니다. 앞서 나선 또래 아이들이 공연을 펼치는데 자신들보다 더 잘 연주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걱정 없습니다. 오늘은 순위 정하는 날 아닙니다. 그동안 익힌 곡들을 무대에서 마음껏 선뵈는 날입니다.

그래도 긴장되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한 여자아이가 화려한 조명이 아래서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객석을 바라보면서 환한 미소를 보냅니다. 얼핏 보니 선생님과 눈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여자아이 미소가 환한 조명보다 더 밝네요.

한해 동안 익힌 악기와 음악때문에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 공연 한해 동안 익힌 악기와 음악때문에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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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무대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이 무대 위에서 희망찬 미래를 연주했습니다. 음악이 아이들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심어줬습니다.
▲ 무대 텅빈 무대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이 무대 위에서 희망찬 미래를 연주했습니다. 음악이 아이들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심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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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연, 마음을 다스리는 방패 되길...

무엇이 저 아이를 환하게 미소 짓게 할까요? 선생님과의 교감이 미소를 머금게 했을까요? 그날 음악회, 참 아름다웠습니다. 서툰 연주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연습한 음악을 멋진 악기에 실어 연주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는 공연이 모두 끝난 후, 객석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이백 여명의 아이들은 그날 공연이 살면서 큰 힘이 될 겁니다. 또, 아이가 자라면서 음악이 삶의 여유가 되겠죠. 어려운 일 닥쳤을 때 마음을 다스리는 방패도 될 거고요. '향상음악회'라 이름 붙은 공연에 참여한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1년 동안 익힌 악기와 음악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물질이 부족한 것은 조금 불편할 뿐 함께 나누면 무겁지 않다는 사실도 깨달았겠죠.

그날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희망찬 미래를 연주했습니다. 음악이 아이들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심어줬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목포에서 아름다운 음악 여러 곡 들었습니다.


태그:#향상음악회, #바이올린, #우크렐레,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남도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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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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