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대로 '통일'은 물 건너가게 되는가. 남과 북이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목 놓아 불렀던 그 노래는 까마득한 과거가 됐고, 화해와 평화, 상생 같은 말들을 입에 올렸다간 자칫 '종북'으로 몰려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코흘리개 아이들에게조차 통일은 종북보다 더 낯설고 어색한 단어가 돼버렸다.

얼마 전 한국사 수업 때다.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통일'을 언급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남과 북의 해석이 조금씩 다르고, 특히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그 차이가 더욱 크다는 걸 설명하면서, 적어도 남과 북이 두루 높게 평가하는 3·1 운동을 '교집합' 삼아 통일의 발판 삼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종북보다 낯선 단어 '통일'

통일을 당위로서 전제 삼았던 게 문제가 됐다. 요즘 아이들에게 통일은 월드컵 경기나 수능시험보다 훨씬 못한, 아예 무관심 영역이다. 그저 신라의 삼국통일 단원에서 살짝 언급되고 마는 교과서 속 수험용 지식일 뿐이다. 하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선생님, 통일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굳이 통일이 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이 없는데, 괜히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잖아요."
"말만 통하면 같은 나라인가요? 북한과 우리나라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십시일반 어려운 북한 주민들을 돕는 건 찬성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북한과 합치는 건 반대에요. 경제적 타격이 엄청날 거예요."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몇몇 아이들의 주장은 철저히 묻혔다. '원래 한민족이었으니까', '외세의 개입에 의한 분단이었으니까',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거나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존재감을 잃었다. 손들어 보라했더니, 충격적이게도, 통일을 반대하는 아이들이 갑절 이상 많았다.

십여 년 전 초임 교사 시절, 통일을 주제로 계기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바람직한 통일 방안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북 간 교류 확대를 통한 점진적 평화 통일은 모두가 수긍하는 하나의 '공식'이었다. 그땐 어른이고 아이고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 그 자체를 지금처럼 문제 삼는 경우는 애초 없었다.

분단을 실감하는 세대는 아니었지만, 정기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밑절미 삼아야 한다거나, 인기 스포츠의 교류를 통해 물꼬를 터야 한다는 통일 방법론들이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백두산과 휴전선 비무장 지대(DMZ)에 세계적인 환경 공원을 만들어 이익을 공유하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심지어 남북 도시 간 자매결연을 추진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나아가 통일되면 북한 지역 관광자원개발 전문가가 되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황금알 낳는 거위'라는 나름 치밀한 분석이 뒤따랐다. 서울대에 진학해 김일성대학과 손잡고 반세기 동안 갈라져 변한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밝힌 아이도 있었다. 하긴 한때 수능 언어영역에서 북한말과 우리말을 비교하는 문제가 출제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수십 년 간 군사독재와 반공방첩에 철저히 길들여졌다 해도, 그런 그들이 무럭무럭 커나가는 한 통일을 향한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확신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어른들은 그들을 게임에 중독된 세대라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대라며 손가락질해댔지만, 교사로서 그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통일 1세대'였다.

"종북세력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학생

그러나 세상은 불과 십년도 안 돼 완벽하게 뒤집혔다. 보수 정권이 집권했고, 남북 대치는 첨예해졌다. 남과 북의 경제력 차이만큼이나 정서적 거리감이 시나브로 커졌다. 통일을 노래하던 아이들의 입에서는 대신 'OECD'와 'G20', 'GDP'가 되뇌어졌고, 아이들이 '10억 원만 준다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며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일을 오로지 돈으로 환산하고, 굶주리는 북한주민들을 '거지'로 보는 아이들이다. 그들에게 북한은 그저 가난에 찌든 이웃나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그들에게 1980년대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과 1990년대 초 탁구 단일팀의 감동은 아니더라도, 남과 북의 지도자가 손을 맞잡은 6·15와 10·4 남북공동선언 정도는 기억할 줄 알았다.

그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여느 나라와의 정상회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날짜만 말해서는 당최 무슨 날인지 알지 못했다. 6·15는 6·25와 헛갈려 하고, 10·4를 두고서는 숫제 개천절이냐고 반문했다. 최근 들어 뉴스에도 잘 언급되지 않은 까닭이다. 분단 이후 남북 지도자간의 역사적 만남이라는 의미는 허공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해 공부하기에 앞서, 진도를 뒤바꿔서라도 분단과 통일 문제에 대해 먼저 가르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한반도에 분단이 고착화됐는지, 광복 직후 좌우의 대립과 6·25 전쟁의 영향에 대해 들려주려니 한 아이가 대뜸 또 다시 '종북 세력'으로 의심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농을 걸어왔다.

분단의 책임이, 소련은 몰라도, 미국에 있다고 해서도 안 되고, 더욱이 남한의 이승만 정권에 있다고 거론하는 순간 종북 세력이 된다. 백범 김구와 몽양 여운형 암살의 배후를 캐서도 안 되고, 6·25 전쟁은 오로지 김일성의 망상과 권력욕이 저지른 만행일 뿐이라고 못 박아야 한다. 만약 전쟁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는 순간 역시 종북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한 아이가 어디선가 읽었다며 우스갯소리처럼 알려준 '종북 감별법'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번외편 1부 '프레이저 보고서' 포스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번외편 1부 '프레이저 보고서' 포스트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간첩 신고'를 당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아이였다. 누구나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간첩으로 몰리고,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만 해도 죄가 되는 시절이 됐다는 걸 아이들조차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통일 운운하는 건 사치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서술의 문제점을 교사로서 지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인데도, 다짜고짜 종북 교사냐고 캐묻고,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한 고용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해도 종북 세력으로 내몬다. 어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부화뇌동해 낙인찍기에 여념이 없다. 일종의 '놀이'다.

한낱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간첩으로 몰렸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결국 수업시간 통일 이야기는 더 이상 이어가질 못했다. 아무리 조심해서 설명한다고 해도, 악의를 가지고 앞뒤 맥락을 잘라내 발언 내용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요즘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는 없었다.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조차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요즘이다. 교과서에 적시된 내용이라도 좌익 계열에 우호적인 말은 아예 피하는 게 상책이다. 괜히 구설수에 올라봐야 좋을 것 없다는, 이른바 '자기 검열'이다. 제자들과 학부모들이 감시자들이고, 그들의 손마다 들려있는 스마트폰이 도청장치다. 가히 무서운 시대다.


태그:#종북세력, #통일
댓글2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