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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태어난 아이는 11월 현재 11킬로그램의 몸무게와 76cm의 키를 자랑하는 우량아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잘 키웠다고 부러워도 하시고, 어떻게 저렇게 크냐며 놀라기도 하신다. 선물로 들어오는 옷이 죄다 몸에 맞지 않아 한 치수 큰 옷으로 바꾸러 다니는 게 일상사가 됐고, 제 엄마와 외할머니는 벌써부터 아이를 오래 안아주는 게 버겁다고 한다. 목욕을 마치고 몸을 닦아주려고 앉혀 놓으면 툭 늘어진 배가 보이는데 소아 비만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에게 닥친 가장 큰 곤란은 몸무게나 키 같은 게 아니다. 충분한 보살핌, 이게 문제다. 육아와 맞벌이를 동시에 하는 부부의 공통 문제이자 풀리지 않는 난제라고나 할까. 아내의 눈물과 내 술잔의 원인이며, 관계기관에 대한 불만 토로의 시작이다. 이는 막상 닥치지 않고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하는데, 아내가 출산과 육아휴직을 각각 3개월씩 사용할 수 있어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동안은 큰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고 육아휴직 3개월이 시작될 무렵에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보육시설에 관한 소름 끼치는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도, 아이가 너무 어려서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나중을 생각해 동네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놓긴 했지만, 최소한 돌은 지나야 남의 손에 맡길 엄두가 날 것 같았다.

누군가 육아를 도와줘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양가 부모님밖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내 쪽은 광주에 살고 계시고 아내 쪽은 집안 사정상 아이를 맡을 수 없는 상황. 그럼 아이를 광주로 보내야 할까?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은 '생이별'을 하게 된다. 과연 우리가 아이와 떨어져서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핏덩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 고민은 깊고 길어졌다.

자식 일 때문에 난폭해지는 부모, 저였습니다

이 작은 것을 닦는데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 분유 젖꼭지 씻기, 쉬워보이나요? 이 작은 것을 닦는데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 강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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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나는 사람을 만나면 '애를 어떻게 키웠느냐'며 묻고 다녔는데, 뜻하지 않게 회식 자리에서 답을 얻었다. '아이돌봄 지원사업'이 답이었다. 이 서비스는 여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운영하는 육아지원사업으로 가정에 육아 도우미를 파견하고 가정 형편에 따라 단계별 비용과 시간 혜택을 준다고 했다. 종일제 서비스(종일 아이를 돌봐주는 도우미 파견)를 받게 되면 광주로 애를 보내지 않고도 맞벌이가 가능하다. 사설기관의 도우미 서비스야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정부에서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관련 정보는 아이돌봄 지원사업 누리집 참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지난 9월 초부터 관련 정보를 챙기기 시작했다.

9월 중순께,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기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또 다른 번거로움이 시작됐다. 나는 현재 송파구에 거주하고 있는데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의 혜택을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유관기관을 거쳐야 한단다.

① 거주지 주민센터(동사무소) : 필요 서류 접수받아 구청에다 아이돌봄 지원사업 신청 자격 심사 의뢰.
② 구청 : 자격심사를 해 등급을 판정하고 건강가정지원센터로 통보.
③ 건강가정지원센터 : 구청의 통보를 받고 아이돌봄 지원사업 실무 진행.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서류를 들고 찾아간 동사무소. 그곳에서 나는 꽤나 우울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연타로. 종일제 서비스를 받으려면 대기를 걸어놔야 하는데 1년을 기다려도 답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일단 대기를 걸어두면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그 순간부터 정부의 양육수당은 끊긴다는 것(그런데 이 부분은 송파구 건강가정지원센터에 확인한 결과 오해가 있었다, 해당 건강가정지원센터로 문의하면 종일제 서비스 대기와 보육수당수령이 동시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휴직 중인(당시 아내는 육아휴직 상태였다) 상태로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에 대한 대기 신청은 가능하나 실제 이 서비스를 받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이유는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양육의 공백'이 있다고 판단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유관기관에서는 육아휴직이 끝나고 아내가 회사로 복귀한 시점부터 서류를 검토한다고.

때때로 부모들이 자식 일 앞에서는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기도 하는데, 그때 그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알아본 바, 구마다 사정이 조금씩 달랐다. 어떤 구는 신청하면 바로바로 서비스가 제공되기도 했지만, 송파구는 예산과 인원 탓에 서비스가 제공되기까지 대기 기간이 짧지 않았다.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형편껏 대책을 세우고 기다릴 수밖에….

그래, 예산과 인원이 한정돼 있으니 기다리는 건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휴직 중에는 서비스 신청을 하지 못한다는 거다. 맞벌이 부부임이 증명돼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행정상으로는 기준을 분명하게 세운 듯하지만, 속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런 근시안 행정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제 아이돌봄 지원사업도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돌봄 지원사업 누리집
 아이돌봄 지원사업 누리집
ⓒ 아이돌봄 지원사업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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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를 신청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당장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으니 절박한 마음으로 찾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아이를 돌본다는 건 단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이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일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직장을 다니는 순간부터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으면 난감하다. 그런데 동사무소에서 서류가 넘어가서 구청에서 서류 심사를 하고 나서도 며칠은 더 걸려서 가정지원센터로 서류가 넘어간다. 그럼 당장 출근은 해야 하는데 서비스가 시작될 때까지의 공백 기간은 어찌하라는 걸까.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는 전국민 대상으로 하는 보편복지가 아니라 일종의 선택적 복지제도다. 그런 만큼 만인이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예산과 인원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절차의 불합리함은 고쳐야 하지 않을까. 맞벌이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휴직 상태에서 사전에 예약을 받고, 서류 심사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아이를 맡아주고 책임진다는 막대한 책무에 비해 행정의 빈틈은 크다.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시간제 서비스를 선택해 신청서류를 넣고 답을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아내의 육아 휴직이 끝나는 시점부터 얼마간 내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돼 숨 돌릴 여유는 생겼다.

그런데 시간제 서비스도 신청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매칭이 돼야 한단다. 결혼정보업체 매칭과 비슷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도움이 일을 하실 수 있는 선생님이 계셔야 서비스가 시작된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기다려야 한다. 기약? 없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곧 될 거라고 말은 하지만 그 말은 희망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 나는 센터 직원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를 맡길 다른 대안이 없는 맞벌이 부부에게 실효성이 있는 제도인가요? 언제 매칭이 될지 예측은 불가능한 건가요? 제가 '다'군(소득이 낮은 순서로 '가'부터 '라'까지 네 단계가 있다)이라서 안 되는 건가요?"

센터 직원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이 돌아왔다.

① 시간제 서비스는 육아를 전담하는 성격이 아니다. 종일제 서비스와는 다르다.
② 매월 초에 지난달에 서비스를 신청한(심사가 끝나 자격을 부여받으면 아이돌봄 지원사업 누리집에서 서비스 신청을 할 수 있다) 내용들이 집계된다. 따라서 월초가 돼야 도우미 선생님이 배정 여부를 알 수 있다. 월초에 안 됐다고 해도 월중에 되는 수도 있다.
③ '라'군도 서비스 혜택을 받는 분들이 많다. 등급과 매칭은 큰 상관이 없다.

차분한 음성의 말들이 오갔던 건 아니다. 난생 처음 혼자서 애를 보느라 신경은 곤두설 때로 곤두섰고, 잠도 모자라서 머리는 멍하고, 눈은 늘 토끼눈이 돼 있었다. 나는 고성과 짜증으로, 센터 직원은 차분한 어조로 일관했다. 하지만 건강가정지원센터 담당자나 나나 둘 다 알고 있었다. 답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둘이서 뭔가 해결책을 찾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저 한쪽이 가만히 들어주면 한 쪽은 신세 한탄을 하는 정도가 최선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정보라도 알려주셔야죠

하지만 답답함은 남는다. 요즘은 동네 은행에서도 대기표를 나눠주고 자신이 언제 서비스를 받게 될지 가늠하게 해준다. 정확한 시간까지는 아니더라고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계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를 준다. 가정지원세터에서는 어떤 정보를 주는가? 없다. "곧 될 것"이라는 말뿐이다. 내 경우에는 서류를 넣고 한 달 조금 안 되게 기다렸다. 이 기간이 긴지 짧은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단 10분이라도 망망대해에 떨어지면 죽을 것 같지만, 이정표가 분명한 길 위에서는 몇 날 며칠 걸을 수 있는 게 사람 아닌가. 유관기관들이 이런 심정을 좀 알아주면 좋겠다.

나는 ▲ 지금까지의 통계자료를 정리했다면, 등급별·시간대별·계절별로 평균대기 기간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 인터넷으로 접수되고 정리되니, 구별 현황판 만들어 대기인 수와 도우미 선생님의 숫자 정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등을 물어봤다. 이 부분에 대해서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시행 준비 중'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9월 중순께 넣은 시간제 아이돌봄 지원사업 서비스 신청, 우리 부부는 약 한 달을 기다린 뒤에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아내의 출근과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다.

바라는 것은 많고 작은 불편에도 발끈했던 건 모르는 게 많은 나의 자격지심에서 나왔을지 모른다. 앞으로 이런 예민함은 무뎌지고, 미숙함은 능숙함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애태우고 기다리던 도우미 선생님이 출근을 시작한 뒤부터는 아이돌봄 지원사업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는 이런 아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에는 아빠 품에 폭 안겨 행복 충만한 미소를 짓다가도 저녁이면 악을 쓰며 울어댄다. 변화무쌍이란 게 이런 걸까. 아이가 하루하루 크는 속도에 비하면 내가 배우고 적응하는 속도는 참 느리다. 그래서 육아는 어렵다. 그래도 애면글면 초보 아빠의 육아는 한고비를 넘어 전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아날로그캠핑' 카페와 블로그(http://blog.naver.com/manandtext)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육아, #아이돌봄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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