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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이다. 해고당한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것이 주된 일이다. 해고가 다반사인 우리 일상에서 해고당하지 않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부당해고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만 알고 대응하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억울하게 잘리고 뒤돌아서서 눈물 훔치지 말자. 우리 사회의 해고지수를 조금만 낮추어 보자는 바람에서 본인이 경험한 노동위원회 해고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기자 말

 

"위원님~ 00 해고사건 취하됐습니다."

 

조사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아니다. 해고구제신청을 하고 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이미 신청인 노동자는 복직을 포기하고 금전보상명령(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는 권리로, 법규상 인정되는 권리가 아니나, 노동위원회에 한하여 구제명령의 내용으로서 금전보상명령을 선택하도록 재량권을 행사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것) 신청을 한 상황이었다.

 

이번 해고사건 신청인 김명자(가명, 41세)씨는 전체 노동자수가 5인인 식당에서 일하다 10일 만에 해고됐다. 사장이 "마음이 안 맞아서 같이 일하기가 힘들겠다.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2명이 동시에 당일 해고되었다. 그런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접수한 것을 알게 된 사장이 "복직을 하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신청인들의 입장에서는 사장의 복직명령에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되었고, 정나미가 떨어진 이후라 다시 식당에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사장에 대한 괘씸함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1명은 복직을 포기하고 구제신청을 취하했다.

 

하지만 김씨는 "사장한테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구제신청을 취하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복직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대신 "지노위가 금전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협의해 달라"며 '금전보상명령 신청'을 하였다.

 

'당일', '구두'로, '정당한 사유없이' 해고한,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사용주도 '별 생각없이' 해고했다가 사실을 인지한 후 바로 복직을 명령한 사실만 보더라도, 100% 복직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금전보상명령신청, 노동자에게 불리할 수 있어요

 


경험상 해고구제신청의 30~40% 가량은 노동자가 복직을 포기하는 대신 금전으로 보상을 받는 것으로 합의를 한다. 그러나 부당해고를 다투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그 보상금이라는 게 보통 대단치는 않다. 일반적으로 부당해고로 판결이 날 경우 사용자가 지급해야 하는 기간 동안의 임금 정도의 범위가 고작이다.

 

한두 달 기본급 정도의 수준이다. 우리 노동자위원들이야 기를 쓰고 부당해고임을 밝혀내서 한 명이라도 더 복직시키려고 애를 쓰지만, 이미 노동위원회에 온 대다수 노동자들은 사업주에 배신감과 상처를 입은 경우라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가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당해고를 다투는 심판회의 과정에서 합의에 이르러 금전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와 정식으로 금전보상명령을 신청하는 경우의 결과는 명백히 다르다. 후자의 경우 신청한 노동자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금전보상은커녕, "당신은 복직할 의사가 없으니 구제신청을 한 이유가 사라졌음. 집으로 돌아가시오"라는 황당한 판결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고신청에 대한 구제실익이 소멸되었으니 사건을 기각함'이란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섣불리 금전보상명령을 신청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해고된 날로 3개월 이내에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할 수가 있다. 심판회의가 열리고 부당해고 여부를 판결하는 데에 소요되는 전체 기일은 총 60일을 넘을 수 없다. 문제는 그 짧은 기간 동안 노동자 스스로 구제신청서를 작성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요구하는 각종 증거서류를 준비하고, 심판회의에서 주장할 논리들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신청인 노동자는 공인노무사를 무료로 지원해줄 것을 노동위원회에 요청하거나 노동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조사관을 통해 조력을 받을 수 있다. 이때 화해할 것을 유도하거나 요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하루에도 수개의 해고사건을 다루는 담당자들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은 될 사건, 이것은 안 될 사건 그리고 이것은 화해시킬 사건"이 경험적으로 분류된다.

 

솔직히 말해 필자 역시 한꺼번에 두세 건의 해고사건을 검토하다 보면 기술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본인의 해고를 구제받는 일은 다른 어느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유일한 목적이 아닌가. 처음 구제 신청 했을 때, 그 마음을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의지가 강할수록 승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김명자씨의 경우, 심판회의를 하루 앞두고 신청을 취하했다. 그녀가 얼마의 합의금을 사장에게 받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녀가 원하던 사장의 사과는 받았을까? 잘 모르지만, 그동안 그녀가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처 받은 자존심은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으리라.

 

해고당한 노동자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 심판회의까지 와서 자신이 얼마나 부당하게 해고 당하였고 억울한지 마음껏 얘기하라. 그 이후에 무엇을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태그:#부당해고, #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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