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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0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0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식에 참석하기 위해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오른쪽)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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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박정희와 함께 1961년 5월 16일 민주공화국 헌정을 유린한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리는 '운정회' 창립식에 참석해 한 말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먼저 깔아야 한다는 말은 옳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걸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고도 했다. 한 마디로 5·16은 '군사반란'이 아니라 '구국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김종필만 아니라, 그를 수행한 이들도 5.16을 '혁명'이라며 찬가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운정회의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운정(김종필)은 반세기 전 5.16 군사혁명을 기획, 주도했고 반 만 년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민족을 후원하는 데 기틀을 놓았다"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30대 후반의 혁명지도자로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며 김종필을 찬양했다.

대한민국이 어디라고 가고 있는가? 민주공화국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 국회의장을 지낸 사람이 아무리 사적인 관계가 깊다고 해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군사반란과 반란자를 칭송할 수 있는가. 치욕이요, 수치스러운 일이다.

누리꾼들도 격분했다. @Gre*********는 "5·16 쿠테타의 주범인 김종필이 21세기 대한민국 국회를 찾아 당당하게, 5·16은 쿠테타가 아닌 혁명이라 짖었군요!"라며 "헌정을 유리하고 민주주의를 짖밟은 쿠테타의 종범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날뛰어도 제지는 커녕"이라며 탄식했다.

@74bu*******도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배고픈데 무슨 민주주의냐?' 했다지? 온 천지에 망령들이 들끓는다"며 "하긴 지들이 국민들 눈치 안보고 맘대로 하던 그 유신시절이 그립긴 하겠네. 민주주의가 없으면 배고픔 해결할새도 없이 독재권력의 노예로 살아야함"이라고 지적했다. @arka******* 또한 "배고픈데 무슨 자유와 민주주의냐고? 김종필은 우리 민족이 생각 없이 사는 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가? 언제까지 민중이 친일숭미기득세력의 노예로 살줄 아는건가? 망언치고는 참으로 허황하구나!"라 분노했다.

박근혜 정권 고위공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5·16을 군사반란으로 말하지 못했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때 야당 의원들이 "5·16이 군사반란이냐, 혁명이냐"고 질문할 때 그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대해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 -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5·16 부분은 제가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를 결정할 정도의 공부가 돼있지 않았다." -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장관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직무 수행에 적절치 않다" -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후보자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교과서에 기술된 표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 후보자
"공직후보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 5·16에 대한 의견 밝히는 게 적절한가 하는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은 제가 잘 안다." -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자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5·16에 대한 공과는 여러 평가가 있다고 보지만 교과서라든지 여기에 기술된 내용을 보면 정치발전을 지연한 측면이 있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박근혜 정권 고위공직자 중 거의 유일하게 정홍원 국무총리만이 "5·16은 교과서에 군사정변으로 기술돼 있다"면서 "유신 헌법도 헌법가치를 파손시킨 반민주적 조치였다고 생각한다"고 5·16을 군사반란으로 정의했다.

남재준 국정원장도 '국정원장'이 아니라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5·16은 쿠데타였지만 그러나 잘 살고자 하는 국민 여망의 결집이었다. 지금 이 답변은 국정원장 후보자로서가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개인으로서의 입장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로 오늘의 풍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5·16이 경제 풍요를 이끌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기사 박근혜 대통령도  5·16군사반란을 "구국의 혁명"이라거나, 4월 혁명을 계승한 것이라고 했다.

"4·19 의거는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희생을 무릅쓰고 일어난 혁명인데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5·16혁명도 그런 의미에서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목숨까지 버렸는데 4·19 후 혼란의 와중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나." - 2012.09.13 <오마이뉴스> 30대 박근혜 "5·16 없었으면 공산당 밥 됐을 것"

4월 혁명을 '의거'로 표현한 것도 역사인식 부재를 드러낸 것이지만, 5·16군사반란을 4월 혁명 뜻을 계승하고 "5·16 없었으면 공산당 밥 됐을 것"이라는 표현은 섬뜩한 느끼마저 준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민주공화국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비극이다. 그러니 민주주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에서 군사반란 주역이 "5·16혁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태그:#김종필, #5.16군사반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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