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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실(實)은 집 면(?), 밭 전(田), 조개 패(貝)가 합쳐진 형태인데 부동산(田)과 동산(貝)이 집에 가득하니 이 얼마나 든든함이 느껴지는 글자인가.
▲ 實 열매 실(實)은 집 면(?), 밭 전(田), 조개 패(貝)가 합쳐진 형태인데 부동산(田)과 동산(貝)이 집에 가득하니 이 얼마나 든든함이 느껴지는 글자인가.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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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년 10월, 24살의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를 따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에 갔다가 당시 중국 최고 석학인 옹방강((翁方綱)을 만나게 된다.

옹방강은 조선의 젊고 영특한 청년 추사에게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글귀를 적어 선물하고, 이후 서신으로 연락하며 깊은 학문적 교감과 우정을 나눈다. 스승 박제가로부터 실학(實學) 사상을 전수 받았던 추사는 이를 계기로 더욱 실제에 근거한 학문 수양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추사의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는 "추위가 닥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는 <논어> 글귀를 인용하여 자신의 변함없는 지조를 대변하고 있다. <세한도>에는 궁벽한 집과 삐쩍 마른 소나무 외에도 일부러 종이를 오려 붙여 자신의 곤궁한 상황을 중국의 친구들에게 알려 도움을 구하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세한도> 발문에 중국에 함께 갔던 역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에게 감상하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이유로 보인다.

열매 실(實, shí)은 원래 집 면(宀), 밭 전(田), 조개 패(貝)가 합쳐진 형태로 집에 밭에서 나는 곡식이나 재물이 가득 쌓여 있다는 의미였다가 속이 꽉 찬 열매나 실재적인 사실, 진실의 뜻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힘이 되는 법인데(實與有力) 부동산(田)과 동산(貝)이 집에 가득하니 이 얼마나 든든함이 느껴지는 글자인가.

춘추시대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초(楚)와의 전쟁에서 '인의(仁義)'가 적힌 깃발을 높이 들고, 상대가 강을 건너거나 진을 치는 동안에 기습하는 것은 인의를 저버리는 일이라 여겼다. 상대가 전투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웠으나 무참히 패했다. 이를 두고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한다. 실리를 무시한 어설픈 구호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대로 전국시대 위(衛)나라의 오기(吳起)는 노(魯)나라 증자(曾子)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출세를 위해 귀국하지 않고, 제(齊)나라 아내를 맞이했다가 제나라와 전쟁이 벌어지자 아내를 죽이고 총사령관이 되려는(殺妻救將) 야욕을 드러낸다. 민심이 나빠지자 위나라로 돌아와 장군을 맡지만 곧 신임을 잃어 초(楚)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곳에서 대신들의 불신과 미움을 받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조국도, 가족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출세욕과 눈앞의 실리만을 쫓은 후과였다.

현실을 외면한 어떤 명분도 공허하며, 올바른 철학이 없는 실리 추구는 금방 위험과 불신에 직면한다. <세한도>가 이상적인 예술 가치 추구와 함께 현실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명분과 실리의 황금률을 찾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태그:#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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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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