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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성택 처형을 보고, 독재자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관련자를 18시간만에 처형한 것이 생각났다는 누리꾼들
 북한 장성택 처형을 보고, 독재자 박정희 정권이 인혁당 관련자를 18시간만에 처형한 것이 생각났다는 누리꾼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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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이 정말 모반을 했을까? 아무튼 이번 처형은 인혁당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대법원 기각 20시간만에 전격 처형. 그때 그 사형집행자의 아드님은 현정권에서 장관 하신다고"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한 직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unheim)에 올린 글이다. 한인섭 서울대 교수(@truthtrail)도 "어느 나라나 조기집행일수록 정치재판임은 우리 경우에도 마찬가지. 인혁당(확정 다음날 집행), 김재규(확정 4일후 집행)등"이라고 말했다. 트위터리안도 비슷한 글을 올리고 있다.

오늘 장성택 처형으로 인해 인혁당 사건을 알아가는 젊은이 들이 많아졌다. 유신에 반대한다고 해서 8명을 간첩으로 몰아 하루도 안되 사형시킨 박정희의 딸이 정권을 잡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북한 장성택을 3일만에 처형시켰다고 비난하는 것이 낮부끄럽지 않나? @tgs******
박정희는 인혁당사건을 조작질하여 판결 18시간만에 사형을 집행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군사재판 직후에 역시 사형 집행했다 지금 박근혜가 하고 있는 장하나 양승조 제명시도 이게 다 똑같은 짓이다 @hl0*****
김정은이 장성택을 재판 하루만에 기관총 처형 한것을 두고" 종편방송등이 생방송으로 잔인무도한 나라라고 합니다. 당연한 논평이고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말이죠" 과거에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도 인혁당 8명을 하루만에 처형했습니다. 독재는 "악"입니다. @mul*********
장성택 선고 후 곧장 사형 집행 보도보고 독재, 공포정치 어쩌고 거품무는 사람들이 인혁당 판결 다음날 새벽 8명을 사형시킨 박정희에 대해선 경배와 찬양. @beoxymoron
뭘 북한의 장성택 숙청에 놀라시나... 남한도 박정희 독재자가 판결하자마자 사형시킨 인혁당 사건이 있는데.. @Ang*******
장성택의 3일만의 처형과 인혁당희생자들의 18시간만의 처형. 단시간에 처형되었다는 공통점외에, 최고존엄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처형. 장성택은 그래도 호화호식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민주주의를 찾아보려는 인혁당관련자들은 소신만으로 죽음을 당했다! @hee*****

인혁당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사람들은 장성택 처형과 인혁당을 연관시켰을까? 사람들이 떠올린 인혁당 사건은 '1차 인민혁명당 사건'(1965년)이 아니라,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1974년)이다. 독재자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 쿠데타'를 자행했다.

시민들은 '유신헌법개헌청원운동'을 펼쳤다. 독재자 박정희는 1974년 1월 8일 ▲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행위 금지 ▲헌법의 개정·폐지 발의 및 청원행위 금지 ▲ 이를 어기면 영장 없이 체포·구속·압수·수색하며 비상군법회의에서 15년 이하의 징역과 1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함 따위 내용을 담은 긴급조치 1호를 발표한다.

그해 4월 '민청학련이라는 지하조직이 불순세력의 배후조종 아래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해 인민혁명을 기도한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하면서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민청학련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학생을 주축으로 한, 정부를 전복하려는 불순 반정부세력'으로 규정한 후, 1천여명을 영장 없이 체포한다. 특히 250여명을 비상보통군법회의(군법회의)에 넘겼다. 일반시민을 군법회의에 넘긴 것 하나만으로도 박정희 정권 성격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군법회의는 5월 27일, 민청학련 배후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라고 발표한다. 이들이 인민혁명당을 재건해 민청학련의 국가 전복 활동을 지휘했다는 것이다.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또는 '인혁당재건위 사건'이다. 박정희는 이듬 해인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관련자들에게 최정 판결을 내리자, 18시간만에 처형했다.

동아일보 1975년 4월 9일 '인혁당 관련 8명 사형집행'기사와 옆에는 '고려대에 휴교령과 군진주'라는 제목. 박정희 정권이 어떤 정권이었는지 보여준다.
 동아일보 1975년 4월 9일 '인혁당 관련 8명 사형집행'기사와 옆에는 '고려대에 휴교령과 군진주'라는 제목. 박정희 정권이 어떤 정권이었는지 보여준다.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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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원(당시 나이 52. 전 대구매일신문 기자), 김용원(39. 경기여고 교사), 이수병(38. 일어학원 강사), 우홍선(45. 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송상진(46. 양봉업), 여정남(30. 전 경북대 학생회장), 하재완(43. 건축업), 도예종(50. 삼화토건 회장).

우리 역사는 이를 독재자 이승만이 1959년 7월 죽산 조봉암 선생을 간첩죄로 몰아 사형한 것과 더불어 '사법살인'이라고 부른다. 국외 법조인들도 분노했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연루자들의 사형이 집행된 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장성택 처형이 왜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게 했는지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정권이 "공포정치"를 한다고 말했는 데 박정희 독재정권 역시 8명을 단박에 처형시켰을 정도로 공포정치를 했다. 한편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 2007년 1월 23일 무죄선고를 받았다.

1975년 4월 8일 죄없는 인혁당 관련자 8명을 대법원 판결 18시간만에 죽인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을까?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박정희는 4년 6개월 후 심복 쏜 흉탄에 쓰러졌다. '김일성 왕조' 3대 왕인 김정은도 깨달아야 한다, 폭압과 공포정치는 영원하지 않음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혁당, #장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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