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댓글 사건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으로 '대선 불복'을 선언한 야당의원을 비판하며 조롱하고 있는 14일자 남정욱 교수의 글
▲ 박근혜 지지한 1천 5백만은 바보? 댓글 사건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으로 '대선 불복'을 선언한 야당의원을 비판하며 조롱하고 있는 14일자 남정욱 교수의 글
ⓒ 조선일보PDF

관련사진보기


최근 국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현 상황은) 군사쿠데타가 필요한 사태'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대학교수가 중앙일간지에 '(김황식 전 총리의) 국회해산 발언 고마워해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해 눈길을 끌고 있다.

숭실대 남정욱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는 14일 <조선일보> 토요판 '명랑소설'이라는 지면에 '대선 1년이 되도록 대한민국은 개표중… '의원질'이란 새말 추가할 판'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이 칼럼에서 남 교수는 '(국회는) 국회해산 발언'을 고마워해야 하고, '(야당의원의 대통령 선거불복 발언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1500만명 유권자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국회해산 발언에 대해) 정치권과 국회의원들만 모릅니다. 여의도가 지금 완전히 고립된 섬이라는 사실을. 김황식 전 총리는 그나마 그 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분입니다"라며 "섬사람들은 (국회해산 발언을) 고마워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 교수는 "불복 선언 국회의원은 대통령에게 투표한 1500만명 유권자를 부정선거 관련자로 만들었습니다"라며 "비방 댓글에 넘어가 잘못된 판단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절반이 바보가 되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야당의원의 대선불복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행위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관련 글을 언론에 기고할 정도면 최소한 정치적 사실에 대해서는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남 교수의 견강부회(牽强附會)는 그 정도가 심하며 이런 글을 게재한 조선일보의 용기가 놀라울 정도다. 이에 더해 조선닷컴은 남 교수의 글을 토요일 저녁 주요하게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글을 작성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글을 생산해 트윗을 하고, 댓글을 달았다는 점이다. 군의 사이버사령부 직원 역시 같은 행위를 하여 현재 수사 중이다.  남 교수가 비아냥거렸던 장하나 의원의 '대선불복' 발언은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에 의해 공개된 법적 사실에 기초한 의사표현이었다. '바보' 운운하며 단순하게 조롱할 성질의 사안이 아닌 것이다.

박-문 두 후보가 초박빙 접전을 벌이던 12월 16일 밤 11시 경찰은 '국정원 직원 컴퓨터에서 문 후보 비방 댓글 발견 못해'라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뉴스는 이튿날인 17일자 조선, 중앙, 동아일보 1면을 장식했고 지난 대선 때 표심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는 12월 15일 문재인 후보가 역전한 '골든크로스'는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재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 바 있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결국 선거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지난 8월 한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국정원 선거개입, 경찰 수사발표가 대선에 미친 영향' 조사결과 역시 비슷한 결과를 전해준다. '만약 대선에서 국정원이 여당후보 당선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면 누구에게 투표했겠냐'는 질문에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13.8%가 '아마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당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치다.

갈팡질팡 <조선>, 칼럼과 사설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

군이 개입한 댓글 사건에 대해 '엄정한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나선 조선일보 13일자 사설
▲ <조선일보> 사설 '군 댓글 수사 뒷탈 남기지 않는 게 중요' 군이 개입한 댓글 사건에 대해 '엄정한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나선 조선일보 13일자 사설
ⓒ 조선일보PDF

관련사진보기


14일 남정욱 교수의 칼럼은 그러나 하루 전인 13일 이 신문의 사설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자행된 국가기관의 '댓글 사건'을 대하는 이 신문의 태도가 일관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13일 사설 '군 댓글 수사 뒤탈 남기지 않는 게 중요'에서 <조선>은 댓글 수사를 서두르지 말고 확실하게 규명해서 뒤탈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면서 진상규명을 강조하고 나섰다. 야당의원의 '불복선언'이 대통령에게 투표한 1500만 유권자들을 댓글에 넘어간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판한 남 교수의 태도와는 180도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외부칼럼이 신문사 입장과 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다른 이야기다.

사설은 "(댓글이) 헌법과 군형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군의 정치개입에 해당한다"고 진단했다. 이어서 "(댓글을) 부이사관급 군무원이 혼자서 결정해 지시할 수 있었겠느냐"며 "야당은 전·현직 사이버사령관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사이버사령부가 국정원과 함께 움직이면서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대선 관련 댓글에 가담한 인원이 최초 4명에서 50여명으로 늘어났고 활동 배경도 '개인' 생각을 표현한 것에서 '단장의 지시에 의한 조직적 행위'로 바뀌었다면서 "이러니 국방부 설명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국방부는 수사를 조기 종결하는 쪽으로만 움직일 게 아니라 사건을 확실하게 규명해 뒤탈을 남기지 않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사설을 통해서는 헌법과 형법을 어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에 대해 준열하게 호통을 치며 '확실한 진상규명'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외부 필진의 정치칼럼을 통해서는 '(댓글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 박근혜를 지지한 1500만명을 바보로 만드는 얘기'라면서 거세게 몰아세우는 글을 비중있게 게재하고 있다.

하루 사이에 댓글을 다루는 사설과 외부 칼럼의 내용이 저처럼 상반될 수도 있을까. 갑자기 요즘 유행어가 떠오른다. <조선일보>는 안녕한가?


태그:#조선일보, #남정욱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