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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었던 샌드바 호텔. 조금 외진 곳이지만 바닷가 경치를 즐길 수 있어 괜찮았다.
 우리가 묵었던 샌드바 호텔. 조금 외진 곳이지만 바닷가 경치를 즐길 수 있어 괜찮았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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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주년을 기념해 아내와 함께 필리핀 관광에 나섰다. 저가항공에 저가여행이라 조금은 염려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핀리핀 세부까지 가는 시간이 4시간 쯤이니 서울에서 열차 타고 여수까지 오는 시간이면 세부에 도착한다.

그러나 여행경비를 줄이기 위해 오가는 비행기에서 2박을 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것도 발을 제대로 뻗기 힘든 비행기 안에서라면.  어쨌든 경비 절감을 선택했으니 어쩔 수 없다. 참고 즐기는 수밖에.

필리핀 사람들의 발인 지프니. 혼잡한 교통사정이지만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필리핀 사람들의 발인 지프니. 혼잡한 교통사정이지만 그런대로 참을만 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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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은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살 수 없어 작은 용지에 포장된 일회용품을 산다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은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살 수 없어 작은 용지에 포장된 일회용품을 산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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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필리핀의 매력은 바다와 섬에 있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섬들과 백사장. 에메랄드 빛 바다가 만들어 내는 풍경은 모든 이들을 설레게 한다.

태풍 피해 찾기 어려운 세부 현장

교통이 좋다는 건 관광 하기에 좋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교통이 좋다는 게 관광에 꼭 좋다고만 할 수 없다. 필리핀에는 교통이 불편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원시적인 섬과 정글이 존재한다. 역설이겠지만 이런 교통 불편이 필리핀을 관광 천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 세부 막탄섬에 있는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가이드 박정후씨가 필리핀 운전사와 함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필리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지진이 났다는 소식과 레이테 섬에 사상최고의 태풍이 몰아쳐 세부도 엉망이 된 줄 아는 한국인들이 관광을 오지 않아서 아주 힘들었습니다. 저도 2주 만에 처음 관광객을 받는 겁니다. 이곳 현지인들도 한국인이 오지 않아 경제가 잘 안 돌아갑니다. 이제 돌아보시면 알겠지만 이곳은 태풍 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그랬다. 필리핀 지도를 보니 세부는 태풍 피해가 컸던 레이테 섬과 가까웠다. 그러나 세부와 막탄섬을 3일 동안 돌아보는 내내 태풍 피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산토 니뇨 성당에서 지진피해 모습만 구경했을 뿐이다.

피곤에 절어 새벽에 도착한 샌드바(Sand Bar) 호텔은 바닷가에 있었다. 배낭여행도 아니고 패키지여행도 아닌 자유여행이라 아내와 단 둘이 가이드를 독차지한 채 여행하는 게 불안했지만 물가가 엄청싼 필리핀이라 그런지 경비를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과 스케줄에 쫒기지 않아 여유가 있었다.

식료품가게에서는 닭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도 판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주인의 손 앞에는 파리를 쫒기 위한 팬이 간헐적으로 돌아간다.
 식료품가게에서는 닭고기와 소고기 돼지고기도 판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주인의 손 앞에는 파리를 쫒기 위한 팬이 간헐적으로 돌아간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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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얼까? 산호섬인 세부는 석회질이 섞여 물을 그냥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에 길가에서 물을 판다.  사진은 물을 파는 코인 자판기다.
 이게 무얼까? 산호섬인 세부는 석회질이 섞여 물을 그냥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에 길가에서 물을 판다. 사진은 물을 파는 코인 자판기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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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9시 반까지 호텔 앞에서 기다리면 안내하러 오겠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늦잠을 잤지만 평소처럼 7시에 일어나 해변을 걸었다. 푸른 바다와 하늘, 야자수와 우거진 녹음이 열대에 온 것을 실감케 했다.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 

마닐라에 이어 필리핀 제2의 휴양지인 세부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동남아 관광도시다. 동남아란 의미는 열대, 값싼 물가, 편안함과 자유를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지닌 세부는 리조트가 몰려 있는 막탄 섬과 도시인 세부시티를 포함하는 전체 섬의 이름이다.

우리가 묵었던 샌드바 호텔에서 바라본 해변의 모습
 우리가 묵었던 샌드바 호텔에서 바라본 해변의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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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행 중 가장 즐거운 것 중 하나는 과일이 무척 싸다는 것이다
 필리핀 여행 중 가장 즐거운 것 중 하나는 과일이 무척 싸다는 것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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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섬은 마닐라에서 550㎞ 남쪽 네그로스 섬과 보홀 섬 사이에 있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섬 가운데 석회암 고원지대가 자리한다. 인구 350만 명인 세부는 마닐라에 이어 필리핀 제2의 도시다. 공용어인 영어와 타갈로그 외에 일상생활에서는 이곳에서만 사용하는 세부아노를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묵은 샌드바 호텔은 막탄섬에 있다. 막탄의 중심가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어 밤에 시내 구경을 못 나갔지만 치안이 불안하다는 소문 때문에 시내로 나갈 엄두를 못냈다. 며칠 전 한국인 두 명이 세부에서 피살됐다는 보도가 있어 호텔에서 조용히 휴식만 취하기로 했다. 피살된 사람들이 원한 관계에 얽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원주민들과 관계를 잘해야 한다고 가이드는 말했다.  

세부 도착 첫날 일정은 스킨스쿠버 다이빙이다. 여행 경험이 많지만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처음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물속에 들어가 귀가 먹먹해질 때 하는 이퀄라이징 훈련, 잠수 안경에 물이 들어갔을 때 물을 제거하는 법, 산소마스크와 잠수복 착용법 등의 생소한 훈련을 받았다.

드디어 보트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산소마스크와 잠수복을 입고 물속으로 잠수해보니 크게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겁이 많은 아내는 걱정스런 얼굴이다. 누가 그랬던가? 수중 세상을 보지 못 했으면 세상의 절반을 못 본 것과 같다고.

산호초와 물고기가 어울려 사는 수중세상
 산호초와 물고기가 어울려 사는 수중세상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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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세상을 못 보면 세상의 절반만 본 것이라는 데---. 과연 별천지였다
 수중 세상을 못 보면 세상의 절반만 본 것이라는 데---. 과연 별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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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 세상은 별천지였다. 각종 산호초가 자라는 모습과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주변을 헤엄쳐 다닌다. 물결 따라 흔들거리며 예쁜 색깔을 뽐내는 산호 옆에 바다장어 한 마리가 숨어있다. 손을 내미니 빠르게 도망간다.

한국에 있으면 한겨울 추위로 물속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낼 텐데…. 좋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미안했다. 20여분 쯤 바닷속 세상을 구경하고 물 위로 올라오니 겁은 아내가 하얗게 질려있다. 구경도 못하고 물까지 마셨다고 투덜댄다.

시내를 거쳐 돌아오는 길에 재래시장엘 들렀다. 시내의 모습은 우리의 1970년대 모습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곳곳의 도로포장공사 탓에 길은 막히고 먼지가 날리가 날렸다. 도로포장재료는 아스팔트가 아닌 시멘트다. 그것도 예산이 세워지면 공사를 하고 없으면 다시 중단한다니, 한국처럼 동시에 공사가 완료될 수 없다고 한다.

정치인들의 부패와 부유층 사치로 후진국으로 전락해

한글 간판만 보면 여기가 필리핀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듯.
 한글 간판만 보면 여기가 필리핀이란 게 믿어지지 않을 듯.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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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30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후 미국의 통치를 받은 필리핀은 1946년에 독립했다. 이후 정치인들의 부패와 독재 및 부유층의 사치가 계속되면서 후진국이 되었다. 못사는 나라인 줄은 알았다. 하지만 필리핀은 한국전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 무렵 한국에 원조를 제공한 나라다. 

한국관광객이 많아 어디를 가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들의 환대가 싫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다짐한 게 있었다. 정치인들이여! 국민을 위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똑바로 해라! 때마침 TV에서는 북한 장성택 처형 뉴스가 나와 관광기분을 잡쳤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필리핀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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