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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충남 공주의 시골에 땅을 조금 구하고 이듬해 서둘러 그 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1993년, 32살 때쯤 했던 결심을 1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 실천에 옮긴 거였습니다.

시골행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좋게, 귀농 혹은 귀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당초 꿈은 귀연이었습니다. 귀연. 말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제 마음을 함축한 단어입니다. '귀연', 정말 제게는 '귀여운' 두 글자입니다.

미국에 살 때는 당연하게도, 미국의 자연으로 귀연을 고려해봤습니다. 캐나다까지 포함한 북미는 말 그대로 대륙입니다. 대륙은 다채로운 자연을 갖고 있습니다. '여자 좋아하지 않는 남자 없다'는 속된 말도 있지만, 자연은 어느 나라, 어느 구석을 가릴 것 없이 솔직히 다 좋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자연 중 하나만 택하라면 제겐 서부의 자연입니다. 그냥 좋은 거니까, 구구하게 이유를 대기는 뭐 합니다. 그래도 몇 가지 마음에 드는 점을 꼽으라면 약간은 헐벗은 듯 하면서 툭 터진 들판이 좋고, 무엇보다 습기가 없어서 좋습니다. 무더운 우리나라의 여름철은 가만히 있어도 반죽음 상태라서 정말 도망치고 싶습니다.

북미 대륙을 돌아다녀 보니, 사람도 대체로 서부 쪽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국인인 저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뉴요커나 보스토니안 등 동부 사람들은 좀 깍쟁이로 여기더군요. 물론 개인차가 크겠지만요. 서부 사람들, 특히 카우보이의 전통이 살아 있는 북서부 지방 사람들은 소탈하고 직선적인 경우가 많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자연 환경이 인심이랄까,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서부 풍경
 서부 풍경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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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는 무엇보다 아직도 낭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단순한 느낌을 주는 식당에서 만난 남자였는데, 꾸밈없이 너무도 서민적인 말투로 서부에서 삶과 일상에 대해 얘기해줬습니다(사진 왼쪽). 관광객을 의식한 것이기는 하지만 서부와 잘 어울리는 마차입니다(사진 오른쪽 위). 와이오밍 주의 캐스퍼라는 소도시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카우보이가 좋아 이 생활을 시작한 젊은이입니다(사진 오른쪽 아래). 동부쪽에서 유학 왔다 서부에 눌러 앉았다고 합니다. 말하는 모습이며, 행동거지가 담백했습니다.

사우스 다코타의 한 시골 거리
 사우스 다코타의 한 시골 거리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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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타, 콜로라도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영화촬영 세트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 사람이 사는 곳으로 우리로 치면 면소재지 같은 곳의 상점가입니다.

끝없는 평원
 끝없는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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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부 평원입니다. 평지라도 해발고도 최소 1000미터 이상인 곳들입니다. 멀리 산이 있고, 구릉이 펼쳐지는 이런 곳이 저는 좋습니다.

마운트 러시모어
 마운트 러시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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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타 주의 마운트 러시모어 국립 기념지입니다. 미국의 유명 대통령 4명의 얼굴을 바위 산에 부조 형식으로 깎아 놓았습니다. 턱에서 머리 끝까지 길이가 2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조각입니다. 눈길을 끌긴 하는데, 왠지 자연에 낙서를 해놓은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크레이지 호스
 크레이지 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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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원주민 전사인 '타슝케 윗코'의 조각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마운트 러시모어에서 차로 1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타슝케 윗코는 "그의 말은 미쳤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1876년 미군 기병대를 상대로 한, 저 유명한 리틀 빅혼 전투를 이끈 원주민 추장으로 숭앙을 받았습니다.

배드랜즈 국립공원
 배드랜즈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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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타 주 배드랜즈 국립공원의 일부 지역 모습입니다. 한때 미 공군의 폭격연습장으로 사용됐던 곳입니다. 국립공원이 되기 전에는 원주민 수(Sioux)족이 이 근처에서 대규모로 학살 당하기도 하고, 이른바 고스트 댄스 모임이 자주 열렸다고 합니다. 원주민들에게는 지금도 신성시 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곰의 숙소
 곰의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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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에 의해 악마의 탑(devils tower)으로 명명된 와이오밍 주의 명물입니다. 원주민들은 '곰의 숙소'로 불렀다고 합니다. 지상에서 꼭대기까지 높이가 약 390m입니다. 이걸 맨손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꽤 됩니다. 왼쪽 위 사진의 가운데 부분을 보면 등반가가 마치 개미처럼 암벽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여러차례 이곳에 올랐다는 한 젊은이의 표정은 철학자 혹은 도사 같은 이미지를 풍겼습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니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미국에는 랩이나 힙합에 열중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풍모와 생활태도를 가진 젊은이도 적지 않습니다.       

버팔로
 버팔로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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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서 평원에 들어서 난생 처음으로 버팔로를 봤습니다. 보다 공식적인 이름은 바이슨(bison)이라고 합니다. 한밤 중에 비포장 도로에서 차를 몰고 가다가 길을 건너는 버팔로 무리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오른쪽)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우리 황소의 2배쯤 되는 느낌을 주는 이 무리가 차를 들이받으면 전복될 것만 같았습니다.

아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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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입니다. 서부에서 동부로 갔다가 다시 서부로 오는 길에 배드랜즈 국립공원 한 귀퉁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 저는 울컥합니다. 아들과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사이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사춘기 시절, 저는 녀석에게 이 세상에 없었으면 하는 아빠이기도 했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 대략 보름 전까지만 해도 관계 개선은 그다지 많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둘이서 보름 가까이 여행을 하면서 극적으로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부자관계는 간단치 않은 경우가 많지만, 제가 유달리 기가 센 사람이어서 아들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011년 여름 대륙 횡단여행이 우리 부자에게는 치유의 여행이었습니다.

석양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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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랜즈 국립공원에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아들과 둘이서 계속 캠핑을 하면서 차로 이동했는데 정말 많은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이었는데, 이날 해지는 저녁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졌나 모릅니다.

프레리 독
 프레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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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평원 지역에는 프레리 독(prairie dog)이라는 설치류가 많습니다. 일어서서 망을 보고 저희들끼리 서로 연락하는 동물입니다. 귀여운 모습인데, 현지 농부 등에게는 골칫거리인 모양입니다. 아들이 프레리 독 옆에서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위). 프레리 독이 번성하면 여기저기 굴을 뚫어 놓아 땅이 엉망이 됩니다(오른쪽 아래).

야간 숙소
 야간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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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 다코타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 야간 풍경입니다. 레저용 차량(오른쪽)과 화물트럭이 저와 같이 이곳에서 밤을 났습니다. 이 때만 해도 차를 길이나 숲에 세워두고 자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몰랐을 때였습니다.

여행의 진화
 여행의 진화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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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온 날이 길어지면 그 나름 여행의 진화가 이뤄집니다. 달걀 프라이와 잼, 그리고 식빵이 여행을 시작한지 보름 여 만에 주요한 간편 식사 메뉴 가운데 하나로 추가됐습니다. 미국은 식빵, 달걀, 우유와 같은 생필품의 가격이 매우 안정적이며 상대적으로 값이 쌉니다.

동식물
 동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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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 대평원 지역은 살아있는 자연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야생 칠면조(왼쪽 위)와 사슴(혹은 노루)이 눈에 자주 띕니다. 로드 킬도 엄청나게 많이 발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에 자연적으로 산불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데, 소나무들이 그 같은 산불 발화에 맞춰 나름대로 진화해 왔다는 점입니다. 껍질이 굉장히 두꺼워서 산불이 나면 껍질부분만 타고 안쪽은 멀쩡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볼펜 크기로 미뤄, 껍질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오른쪽 위). 

덧붙이는 글 |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실렸습니다. sejongsee.net 세종시 지역의 비영리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아메리카 , #여행 , #서부 ,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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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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