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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대통령이 답답해 하시는 것 같아. 철도민영화 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쪽에서는 파업까지 나서고 있고. 원격 진료제도 마찬가지 논란이 일고 있으니..."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홍보 부족'을 질책한 배경에 대해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설명을 내놨다. 박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책임이 크다는 자책도 덧붙였다.

심기 불편한 박 대통령...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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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 대통령의 이날 질책은 다소 강도가 높았다. 수석비서관회의 모두 발언 중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정부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원격 의료제를 향해 제기되고 있는 비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얼마 전에 제가 시간선택제 일자리 박람회에 다녀와서, '이 제도는 다양한 일자리 수요를 충족시켜서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고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높여서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고, 또 그런 취지로 실제 실천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숫자 채우기라든가 또 다른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인과 장애인 등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동네 의원 중심으로 도입하려는 원격진료에 대해서도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가중될 것이다, 의료민영화 가능성이 있다 등의 논란이 있다."

박 대통령은 이같은 논란이 생긴 이유로 정책의 근본 취지가 충분하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정책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국민들이 잘 모르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정부정책에 대해 정확하고 투명하게 알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이전에도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홍보 부족'을 지적해 왔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정책이나 마찬가지"라며 청와대 참모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와 달라진 점도 보인다. 처음 박 대통령의 당부에는 국민들이 필요한 정책이 있는지 몰라서 소외되는 일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반면 최근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나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는 인식이 도드라진다.  

홍보 부족에 호통, MB도 그랬다

사실 홍보 부족을 탓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종교계까지 반대하고 나서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홍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며 호통을 쳤고 청와대는 물론 여당까지 부랴부랴 4대강 사업 홍보에 나섰다. 물론 반대 목소리를 수렴하겠다는 태도는 아니었다. 4대강 사업 반대는 잘못됐으니 '잘 가르쳐서 생각을 바꾸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질책 이후 그동안 두문불출하던 청와대 수석들이 기자실을 찾는 발걸음이 잦아졌다. 16일에는 최원영 보건복지수석이 논란이 일고 있는 원격의료제에 대해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해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는 정책"이라며 "일부에서 오해하는 의료민영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브리핑을 했다. 철도 민영화의 전초라는 의심을 사고 있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대해서도 민영화와는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청와대 참모들의 입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달라진 점은 없어 보인다. '반대나 비판에는 근거가 없다', '왜 정부를 믿지 못하느냐'는 다그침에는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대해 홍보 부족을 탓하는 대통령의 인식에는 '내가 옳다'며 정부 말만 믿고 따라오라는 독선이 번뜩인다. 홍보 강화가 오히려 불통을 강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홍보가 아니라 신뢰 위기

지난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 당시 모습
 지난 11월 26일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 당시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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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홍보부족 탓을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박 대통령이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철도 민영화 논란만 해도 박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국가 기간망인 철도는 가스·공항·항만 등과 함께 민영화 추진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고, 정부 출범 이후에도 누차 민영화는 없다고 했지만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들은 "정부 발표를 신뢰하지 않고 있는"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런 위기는 박 대통령이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대선 1주년 앞두고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다. 대선 때 반드시 지키겠다고 내놓은 복지공약들과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약속들은 줄줄이 후퇴한 탓이다. 

경고음은 새누리당 내에서도 울리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의 '입' 역할을 했던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펴낸 책 <대변인-길, 말, 글>에서 "총선·대선에서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대통합을 외쳤다.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등에서 민주당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이런 가치들을 제대로 실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이 돌아가야 할 결정적 장면

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3월 세종시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건설하는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자신의 미니홈피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치인으로서 지켜야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을 한순간만이라도 잊어버린다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고 만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홍보 강화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능케 한 결정적 장면, '세종시 특별법'을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이유로 지켜낸 그때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태그:#박근혜,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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