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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유럽시장에서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쉐보레 차량을 수입하지 않기로 해 고용불안의 먹구름이 한국지엠을 엄습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글로벌 기업을 표방하는 지엠에 인수된 후 주기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려왔다.

한국지엠의 전신인 '대우자동차'는 1999년 8월 워크아웃이 결정됐고, 2001년 가을 최종 부도처리가 됐다. 당시 채권단인 산업은행은 지엠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다가 결국 2002년 4월 헐값으로 지엠에 대우차를 매각했다. 지엠은 그해 10월 17일 '지엠대우오토앤테크놀로지'를 출범했다.

지엠의 중·소형차 단순생산기지로 전락한 한국지엠

지엠은 대우차를 인수하고 생산물량의 90% 정도를 해외로 수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지엠은 지엠의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완성차 80만 대를 생산해 이중 80% 이상을 유럽 등지에 쉐보레(Chevrolet) 브랜드로 수출했다. 이 기간에 CKD(반 조립제품)는 그보다 많은 127만 6000대를 생산해 수출했다.

한국지엠의 중·소형 차종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지엠을 구해낸 효자 노릇을 했다. 아베오·크루즈·스파크는 위기에 처한 지엠을 극적으로 구한 '삼총사'라 할 수 있다.

국제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국제 경기가 침체할 때 수출주도형 산업은 치명타를 입는다. 안정적인 내수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지엠은 국제 경기 침체 등의 외풍에 쉽게 몸살을 앓는 체질이 됐다.

더욱이 지엠은 향후 한국지엠에서 새로운 차량을 출시할 계획이 없어, 한국지엠의 고용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신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리는 연구개발과 성능시험을 거쳐야 한다. 중·소형 차량 생산기지인 한국지엠에서 향후 몇 년간 신차 투입이 없다는 것은 안정적인 생산물량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사인천 만평>
 <시사인천 만평>
ⓒ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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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에는 노동자 1만 5000여 명이 직접 고용돼있다. 지난해 매출액 15조 9000억 원을 기록했고, 한국 부품업체 200여 개와 거래하고 있다.

한국지엠의 차량생산 공장이 위치한 인천·군산·창원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 하청업체들과 협력업체 등을 고려하면, 지엠의 한국지엠 생산물량 축소 방침은 한국 경제와 각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경영 실패를 노동자에게 전가

한국지엠의 중·소형차 경쟁력은 상당하다. 국내에선 기아·현대차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경쟁력을 제법 갖추고 있다.

중·대형 차량만을 생산해 취급해왔던 지엠에서 한국지엠의 중·소형차 생산능력은 상당한 위치에 놓여 있다. 대우차에서 연구 개발해 현재 글로벌 중·소형 차량으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 '크루즈'와 '아베오' 등은 전 세계에서 생산·판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엠은 한국지엠의 생산비용이 신흥시장 등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며 책임을 한국지엠에 돌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유럽이나 호주의 생산 공장과는 다르다. 한국지엠은 지엠이 인수한 이후 견실한 경영 실적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엠의 호주 법인인 홀덴의 경우 호주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았지만, 흑자를 기록한 해는 2년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지엠은 2002년 출범 이후 대부분 흑자를 기록했다. 2003년 4조 원 수준이던 매출 규모가 지난해 15조 9000억 원으로 성장한 것이 한국지엠의 경쟁력이 얼마나 높은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히려 지엠의 잘못된 경영으로 지적되는 '지엠대우' 시절 환율변동가능성을 막기(환헤지) 위한 선물환(=장래의 일정기일 또는 일정기간 내에 일정액의 외국환을 일정한 환시세로 매매할 것을 미리 약속한 외국환) 계약으로 인해 막대한 재정 손실을 입어 유동성 위기를 겪기도 했다.

또한 한국지엠의 CKD가 완성차보다 많이 수출된다는 것은 한국지엠의 기술력과 생산력이 다른 대륙의 생산기지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한국지엠 품질 대비 인건비는 여전히 경쟁력이 높다. 신흥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러시아·브라질 등의 인건비도 매해 큰 폭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가장 큰 시장인 브라질의 경우 최근 10년간 인건비 증가가 125%에 달했다.

한국지엠 사장 교체설 '파다'... 노조 "고용불안 대책 강구"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에서 철수가 발표된 후 한국지엠 사장 교체설이 퍼지고 있다. 외국인 사장에서 한국인 사장으로 교체될 것이란 소문도 퍼지고 있다. 이 소문이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 철수 시점에 맞물려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함께 나오고 있다.

'한국인 사장'설의 근원지는 전영철 한국지엠 부사장이다. 전 부사장은 지난해 실시된 한국지엠의 희망퇴직을 주도한 뒤 지엠 내 캐나다 법인에서 근무하다 6개월 만에 다시 한국지엠으로 복귀했다. 전 부사장은 한국지엠에서 생산부문을 총괄했던 인물이다. 특히 이번에 복귀해 인사 노무를 총괄한다.

전 부사장의 복귀에 대해, 익명처리를 요구한 인천지역 정치계 한 인사는 "전영철 사장설이 이미 파다하다. 노사 갈등이 빈번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인 사장으로 교체한다는 것은, 지엠이 한국인 사장에게 설거지를 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엠은 옛 '대우차' 인수 후 한국인 임원을 계속 줄이면서 친정(=지엠)체제를 구축해왔다. 만약 전 부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한다면 매우 이례적인 인사로 기록될 것이며, 한국지엠의 구조조정이 임박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쉐보레의 유럽 철수 발표 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지엠의 결정을 규탄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종환 한국지엠지부장은 최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사전 통보 없이 쉐보레 유럽 철수를 결정한 것을 규탄한다"며 "새 시장 개척과 신차종 투입, 내수시장 활성화 방안 등 대안 마련이 우선돼야한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는 이번 일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실시 등 고용불안 요인으로 악화되지 않게 하고, 고용안정실현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지엠 관계자는 "쉐보레 물량이 빠졌다고 군산공장 폐쇄나 매각설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지엠은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도 전혀 없을 뿐 아니라, 희망퇴직 등의 구조조정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사무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묻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사내에서 희망퇴직 관련 소문이 무성해 내부 망에 질문했고, 그것에 대해 사장이 필요하다면 고려하겠다는 정도를 밝힌 것이 전부지, 희망퇴직 등의 구조조정설은 말 그대로 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무직 희망퇴직설은 유럽 시장에 쉐보레 차량을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사무직 중 일부에 대한 희망퇴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에 한국지엠 소속 사무직 6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중 100여 명은 홀덴 등에서 흡수하고, 나머지 500여 명은 보직 전환이나 희망퇴직 등의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지엠, #희망퇴직, #구조조정, #대우자동차, #전영철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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