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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 차례 북한 여행을 다녀온 뒤 내게는 북한에 두고 온 수양딸과 수양조카가 생겼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정을 나눈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더 많은 북한 동포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올해도 다시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6일까지 한 차례 그리고 9월 4일부터 13일까지 또 한 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새 연재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를 통해 북한 동포들의 지금과 북한의 여러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말

배에서 내려 다가가는 우리에게 천막 그늘에 앉아있던 북한 주민들이 손을 흔든다. 내가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외치자 깜짝 놀라며 더 큰소리로 환호한다. 한 여성이 일어나 묻는다.

"조선사람입니까?"
"네, 맞아요. 조선사람이에요."   
"외국 관광객들과 함께 있어 우리는 외국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어서 그늘로 들어와 앉으시라요."

통일의 '순대춤'을 덩실덩실

북한 주민들과 함께 천막 그늘 아래서(모자를 쓴 사람이 나).
 북한 주민들과 함께 천막 그늘 아래서(모자를 쓴 사람이 나).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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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예쁘게 치장을 하고 피서를 왔나 보다. 많은 여성들이 정성스럽게 화장을 했을 뿐 아니라 목걸이도 하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멋진 선글라스를 쓰거나 머리 위에 액세서리처럼 얹어놨다. 몇몇 사람은 귀걸이까지 하고 있다. 평양의 가스맥줏집에서 여성들이 귀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함경도 해변에도 세련된 귀걸이를 한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다.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들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동그라미를 그려 보인다. 표정들이 아주 밝고 명랑하다.

"어디서들 오셨어요?"
"청진에서 단체로 왔습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미국에서 왔어요."

어디서 왔느냐고 하면 이제는 거리낌 없이 "미국에서 왔다"고 답한다. 처음 북한에 왔을 때는 내 국적을 말하기 좀 꺼렸다. 미국이라면 사람까지도, 나아가 동포라 할지라도 증오할 것이라는 게 내 선입견이었다.

"아! 멀리서도 오셨네요. 미국에도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나요?"
"네,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에는 '아바이 순대'라는 함경도 음식점까지 있을 정도예요."

해칠보 해변에서 북한동포들과 함께 춤을...
 해칠보 해변에서 북한동포들과 함께 춤을...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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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순댓집이 있다는 말에 함경도 북한동포들이 감동을 한다. 우리 민족음식 '순대'라는 말 한마디가 서로의 마음을 순식간에 연결할 줄이야! 한 사람이 상기된 목소리로 제안한다.

"야, 우리 모두 나가서 허리 잡고 순대처럼 길게 늘어져서 춤 한 번 추자꾸나!"

가무를 좋아하는 북한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꼭 스피커를 갖고 다니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판을 벌인다. 어디 그뿐이랴. 장구, 아코디언, 기타도 빠지지 않는 필수 악기다. 한층 더 신명을 돋운다. 그들이 틀어놓은 음악과 춤이 이념을 내포한 혁명예술일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이들은 그저 평범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리듬에 흥겨워한다. 북한사람들은 호전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나도 그들의 허리를 부여잡고 함께 섞여 '순대춤'을 춘다. 감동을 몸에 담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을 한데 묶는 이 춤이야말로 내겐 '통일의 춤'이다. 환희 속에 차오르는 감격의 눈물이 마음을 타고 흐른다.

▲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 북한주민들, 이렇게 논답니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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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람들의 즐거운 모습, 처음입니다"

게임을 즐기는 북한동포와 유럽 관광객
 게임을 즐기는 북한동포와 유럽 관광객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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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춤판이 끝나자 게임을 한단다. 이번에는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일부 유럽 관광객들까지 합세한다. 게임의 방식은 간단하다. 관갱객과 북한동포를 끈으로 느슨하게 엮고 멀리 세워놓은 목표물을 돌아 출발점에 먼저 도착하면 된다. 맨 먼저 도착하는 이들에게는 상품을 준다. 예전 학교 운동회 때 많이 해봤던 게임이다.

북한 여행이 처음이라는 네덜란드 관광객이 우리에게 다가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남편과 대화를 나눈다.

"I can't believe that North Koreans can be as hilarious as we see right now. I've never seen smiling North Koreans in the picture. What I saw about North Korea in the media before this trip were the military parades in a huge square and the miserable kids begging the crust in the muds."
(북한 사람들이 이렇게 희희낙락할 수 있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껏 사진에서 북한 사람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내가 북한에 오기 전 매스컴에서 본 북한은 커다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나 하고 비참한 어린아이들이 진흙탕 위에서 구걸하는 모습들이었어요.)

"You are not alone to think so. So did I before my first trip to this northern part of my fatherland. True, this country, as we witnessed it through the rural area, is obviously experiencing economic difficulties. Though, these people look quite O.K., don't they? They seem to have been belied by the scenes of this country demonized by the West."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에요. 나도 내 조국 북부에 처음 오기 전까지는 그런 장면들만 봐왔어요. 우리가 농촌을 지나면서 본 대로 이 나라가 분명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 보면 그런 대로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서방에 의해 악마화 된 북한의 모습 때문에 이들이 잘못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동포들이여, 부디 행복하시길

해칠보 해변의 북한동포들
 해칠보 해변의 북한동포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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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에서 한동안 신바람 나게 땀 흘리며 게임을 하더니, 이번에는 물속에서도 게임을 계속한다며 모두들 바다로 뛰어든다. 아! 나도 수영복이 있었더라면 함께 뛰어들 텐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북한동포'라고 하면 대개 텔레비전에서 본 '꽃제비' 아이들의 불쌍한 모습부터 떠오른다. 나도 이들의 모습 때문에 '북한동포들은 모두 가난하고 불행하다'는 선입견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북한여행을 통해 그런 모습이 북한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동포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조개죽을 끓이기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북한 아주머니
 조개죽을 끓이기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북한 아주머니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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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인정 많은 동포들이 함께 점심을 먹자고 권한다.

"곧 조개죽을 끓일 겁니다. 드시고 떠나십시요. 가마솥에 장작을 태워서 만드는데 정말 맛있습니다. 맵지 않으니 외국사람들도 좋아할 거예요. 함께 드시고 가시라요."

정말 한술 얻어먹고 싶었다. 가마솥 안에서 솔솔 피어오르는 고소한 조개죽 냄새를 맡는 순간, 굳이 권하지 않아도 한구석에 슬그머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조개죽 한 사발을 얻어먹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물론 '같이 먹고 가라'는 따뜻한 말이 먼저 내 마음을 붙들었지만. 못 이기는 척하고 앉아 있으려니 설향이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갈 길을 재촉한다. 예약해 놓은 식당에 가야 한단다. 처음으로 설향이가 야속해 보인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은 모래 속에 푹푹 빠져만 간다. 얼마쯤 가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자 북한동포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준다. 그들의 마음과 눈길 역시 떠나는 우리 뒷모습에 머물러 있다. 동포들의 다정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해변을 걸으며 속삭인다.

"사랑하는 동포들이여, 부디 행복하시라. 조국이 통일되는 그날, 우리 모두 이 해변에서 감격의 통일춤을 또다시 덩실덩실 추자꾸나. 서로서로 허리를 부여잡고서…."

북한동포들과 헤어지기 두렵다

해칠보 해변가 식당의 상차림
 해칠보 해변가 식당의 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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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사장 끝자락에 붙어 있는 식당. 안에 들어가니 기다란 상이 차려져 있다. 남편은 사람들이 채 앉기도 전에 상위에 있는 '대동강 맥주'부터 집어든다. 그러더니 목을 쭈욱 빼고 건너편 모래사장을 응시한다. 남편의 마음은 해변에 있던 동포들에게 달려가고 있다.

이 식당도 조개죽을 내놓는다. 그러나 내 마음 또한 보글보글 끓고 있던 저 건너 가마솥에 머물러 있다. 줄을 서서 죽 한 그릇 받아들고 천막 그늘에서 북한동포들과 어울려 앉고 싶다. 맨 손가락으로 김치 한 점 입에 넣고 눈을 맞추며 정을 나누면서 말이다.

게살을 발라내 남편의 입에 넣어주는 독일어 안내원 오수련
 게살을 발라내 남편의 입에 넣어주는 독일어 안내원 오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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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에는 털게찜이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다. 독일어 안내원 오수련이 게살을 발라내 연신 우리 입에 넣어준다. 동포의 정은 매 순간 내 가슴에 자꾸 쌓여만 간다. 이들과 헤어져 미국에 돌아가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실 생각을 하니 두려움마저 고개를 빼꼼 든다.

김일성대 졸업반 실습생
 김일성대 졸업반 실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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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티셔츠를 입은 김일성대 졸업반 실습 여학생이 맞은 편에 앉았다. 아직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나 보다. 낯설다는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 실습생은 옷에 따라 목걸이를 달리하곤 하는데, 오늘은 검은색 티셔츠에 금색 목걸이를 찼다.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할 이 아이의 미래가 목걸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길 기원한다.

모래사장 쪽에서 아직도 신명나게 놀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꾸 그곳으로 마음이 쏠린다. 이렇듯 한 번이라도 옷깃을 스친 북한 동포들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머문다. 떨어져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오랫동안 말이다.

살아 숨 쉬는 북한의 자연

어랑비행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어랑비행장으로 되돌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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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친 우리는 함흥으로 가기 위해 청진 어랑비행장으로 돌아간다. 버스에 오른 영어 안내원 방은미가 "이제까지 우리가 본 칠보는 진정 칠보의 만분의 일도 안 된다"며 안내 방송을 이어간다. 게다가 '칠보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일생을 이곳에서 살아봐야 한다'는 선조들의 말씀도 덧붙여 소개한다.

원래 일정에 따르면 우리는 해안가 도로를 따라 청진 어랑비행장으로 가게 돼 있었다. 그런데 그 도로의 일부 구간이 수리 중이라 칠보산으로 넘어오던 길로 되돌아가야 한단다. 또 다른 모습의 동해안 절경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탄식을 내뱉는다. "나중에 또다시 올 테니 여운을 남겨두자"는 말로 그를 위로한다.

칠보산으로 올 때, '언제 절경이 나오려나'라는 생각을 이제나저제나 했던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지금, 내 마음과 눈길은 칠보산의 명물 기암괴석이 아닌 도로변에 흐르는 개울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고개를 넘는 동포들에게 멈춰져 있으니 말이다.

자전거를 끌고 칠보산 고개를 넘는 남녀
 자전거를 끌고 칠보산 고개를 넘는 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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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내려 휴식을 취하는 북한 관광객들
 버스에 내려 휴식을 취하는 북한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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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으로 향하는 북한 관광객을 태운 버스 몇 대가 개울 옆에 서 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그곳에서 10분쯤 쉰다고 한다.

맑은 개울물 속으로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작은 개울이긴 하나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비록 북한동포들은 지금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연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들의 앞날이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이웃의 쌀독에 무관심할 때, 공동체는 파괴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함경북도의 여인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함경북도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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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버스는 칠보산을 벗어나 평지를 내달린다. 북한식 헤어 스타일을 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여인네들이 마을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촌 마을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북한의 농촌을 보면서 문득 조국과 미국의 농가를 비교하게 된다. 미국의 농가는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몇 마일씩이나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농촌 사람들은 방대한 농지 한가운데에 집을 짓고 외로운 성주처럼 살아가곤 한다. 불안한 마음에 갖가지 총기를 집안에 진열해 놓은 채로.

그러나 우리네 농가는 마치 하나의 울타리처럼 무리 지어 사이좋게 붙어 있다. 옆집에 수저가 몇 개 있는지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웃의 쌀독에 무관심할 때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그 마을은 황폐해져 흉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변하는 걸 많이 봐왔다. 괜스레 이런 상황이 남북이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울
 어랑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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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가까이 닿았는지 어랑천이 다시 보인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강은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내 어머니의 옛 친구 '오랑아줌마'께서 통일이 돼 고향을 찾으실 때도 쉽게 알아보실 수 있으리라. '자연을 경애하라', 칠보산에서 내가 얻은 교훈이다.

지난해 고향 대구에 갔을 때 낙동강에서 봤던 '콘크리트 괴물'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수십조 원의 혈세를 들여 민족의 젖줄을 파괴해 놓은 모습에 할 말을 잊었다. 동행했던 지인은 "강물이 녹색으로 변해 여름의 푸름을 한층 더해주는 것 같다"며 비꼬듯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범죄'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단다. 책임은커녕 범죄를 앞장서 저질렀던 '공범자'들에게 정부는 표창을 했다고 한다. 참 답답한 일이다.

함흥으로 향하며
 함흥으로 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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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스튜어디스
 함흥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남편과 스튜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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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도착하니 러시아산 AN-24 프로펠러 비행기가,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디스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마치 태초의 자연에서 문명 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런 게 바로 북한 관광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 북한 동포들의 따뜻한 정을 가슴에 안고 비행기는 함흥을 향해 떠오른다. 창밖을 보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안녕, 칠보."


태그:#북한, #통일, #민족, #함경북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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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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