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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최 씨 부인 이미희 씨와 딸 별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고 최종범 열사 노제, 마지막 작별하는 딸 별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최 씨 부인 이미희 씨와 딸 별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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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회원들이 고인의 유지를 담은 만장을 들고 있다.
▲ 고인의 유지 담은 수많은 만장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회원들이 고인의 유지를 담은 만장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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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삼성전자 본관 건물들 사이로 검은색 만장을 든 노동자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 대열을 맨 앞에서 이끄는 트럭 위에는 젊은 청년의 영정이 있었다. 높은 삼성 빌딩 3개가 만든 그늘 아래 트럭이 멈췄다. 사람들은 잠시 기다렸다. 영정 속 젊은 청년이 그곳까지 오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는 지난 55일 동안 차디 찬 냉동고에 누워있었고, 이제야 영원히 쉴 곳을 찾아 가는 길이다.

24일,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이날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최종범(33)씨의 장례가 치러졌다. 천안 병원에서 발인한 그의 주검이 삼성 본관 앞에 자리를 잡자 노제가 시작됐다.

그는 지난 7월 설립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이하 지회)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10월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동안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삼성전자서비스 논란의 시작... 그리고 최종범 열사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유가족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모시고 있다.
이날 장례식은 최종범 씨가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장례식이 치러졌지만, 삼성전자는 정문 앞에 차벽을 세우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 고 최종범 열사 노제, 못마땅한 삼성전자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서 유가족이 고인의 영정 사진을 모시고 있다. 이날 장례식은 최종범 씨가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장례식이 치러졌지만, 삼성전자는 정문 앞에 차벽을 세우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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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열사정신 계승으로 노동자해방 쟁취하자며 조사를 하고 있다.
▲ 백기완 소장 "열사정신 계승하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열사정신 계승으로 노동자해방 쟁취하자며 조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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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목청껏 외치고 있다.
▲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뜻을 이어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겠다며 목청껏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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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를 토로하고 전태일 열사를 말하는 그의 유서 내용이 알려지자 삼성을 비판하는 여론의 화살이 쏟아졌다. 국내 최대 재벌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삼성에서 일하지만 삼성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제기하며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노조 삼성'에 정면으로 맞선 지회 소속 노동자들은 표적감사를 받거나 일거리를 받지 못했다.

지회 조합원들은 삼성전자 제품 수리하는 업무를 하지만 삼성의 직원은 아니다. 삼성의 각 지역 센터에서 계약한 하청업체에 고용돼 있다. 그 협력업체가 삼성의 A/S 업무를 대신한다. 그들은 하청업체에게 월급을 받고 업무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삼성의 마크가 새겨 진 옷을 입고, 삼성에서 교육을 받으며, 삼성이 정해놓은 수수료대로 급여를 받고, 업무지시 또한 삼성의 시스템을 통해 받는다.(연속기획 삼성A/S의 눈물 보기)

지회는 이런 형태의 고용관계를 위장도급으로 판단하고, 삼성이 실제 사용자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근로자위확인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1000여 명의 노동자가 여기에 참여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삼성 측은 이러한 의혹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이후 각 지역 센터에서 지회 조합원들에게 특별감사가 실시됐고, 일감을 줄이는 일이 생겨났다. 수리 건수당 급여를 받는 서비스 기사들은 일이 줄면 월급도 준다.

그러는 와중에 최종범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그는 천안에서 근무중이었고, 당시 돌이 지나지 않은 딸 '별이'가 있었다. 딸을 생각하며 남들보다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별을 보고 나와 별을 보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회 활동을 시작한 이후 회사는 그의 실적에 감사를 벌였고, 3년 전 서류까지 뒤졌다. 하청업체 사장은 그에게 임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관련기사 : 그는 왜 죽음을 택했나?)

"다시는 아빠 없는 아이가 있지 않도록..."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과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절을 올린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최종범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던 중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의 협상이 타결되자,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 고 최종범 열사 노제 참석한 신승철 위원장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과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절을 올린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최종범 씨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던 중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지 50여 일만에 금속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의 협상이 타결되자, 전국민주노동자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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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동생 전순옥 민주당 의원(왼쪽)과 전태삼 씨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최 씨 부인 이미희 씨를 위로하며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 최종범 열사 부인 위로하는 전순옥 의원 전태일 열사 동생 전순옥 민주당 의원(왼쪽)과 전태삼 씨가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고 최종범 씨 노제에 참석해 최 씨 부인 이미희 씨를 위로하며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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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후 그의 동료들은 '열사정신계승'이라고 적힌 두건을 맸다. 가슴에는 검은색 근조리본을 달았고, 그의 유서를 따르는 투쟁을 시작했다. 지난 3일부터는 삼성 본관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19일 동안 노숙투쟁이 이어졌다. 최씨의 부인과 형도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그 사이 있었던 딸 별이의 돌잔치를 아빠의 친구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은 삼성으로부터 작은 승리를 얻어냈다.

지난 21일 지회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업체들과 협상을 타결했다. 열악한 조합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외근 수리 기사들에게는 랜트카를 지원하기로 했다.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불이익을 금지하기로 했다. 최씨 유족에게도 보상을 하기로 했다. 형식적으로는 하청업체 사장들과의 합의지만 이것은 사실상 삼성전자서비스 본사 차원의 협상이라고 지회 측은 주장했다. 그들의 합의내용이 결코 하청업체의 권한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장례 치른다)

이날 55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도 그날의 합의가 있어서 가능했다. 장례를 치르기는 했지만 지회는 최씨의 유언을 계승하는 투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진행중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비롯해 하청업체가 아닌 삼성이 노조를 인정할 때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삼성 측은 여전히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하청업체와 노동자 사이의 문제라고 하면서도 유가족에게는 도의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라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이날 노제에서 "제가 아는 종범이는 평범한 젊은이였고, 죽도록 일만 했던 동료였습니다, 종범이가 죽음으로 항거한 지 55일째인 오늘, 이제 그를 보내려 합니다"라며 "종범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의 꿈과 희망이다, 고인은 삼성의 노예, 기계로 살다가 노조 활동을 통해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회사, 기계나 노예가 아닌 노동자로서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아내인 이미희(30)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아빠가 없는 아이가 생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며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를 대신해 동생의 옛 동료들 앞에 선 형 최종호(36)씨는 "종범이가 목숨 바쳐 한 싸움을 많은 분이 이어서 싸워준 것에 대해 유가족과 종범이를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삼성을 향한 싸움에서 최초로 승리를 얻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최초의 승리가 나중에는 최대의 승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씨의 노제가 끝나고 동료들과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영정 앞에 헌화를 했다. 장지인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였다. 장지로 향하기 위해 차량에 탑승했던 최씨의 부인이 다시 영정 앞으로 돌아왔다. 토끼 모양의 털모자를 쓴 딸 별이를 안고서. 별이가 마지막으로 아빠 앞에 꽃을 놓았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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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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