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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방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이다. 해고당한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것이 주된 일이다. 해고가 다반사인 우리 일상에서 해고당하지 않기란 하늘의 별따기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부당해고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만 알고 대응하면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억울하게 잘리고 뒤돌아서서 눈물 훔치지 말자. 우리 사회의 해고지수를 조금만 낮추어 보자는 바람에서 본인이 경험한 노동위원회 해고 사례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기자 말

"짤렸다."
"아니다, 스스로 나갔다."

자신이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생각한 노동자가 지방노동위원회(아래 지노위) 심판회의에서 사용자와 이러한 이견으로 다투게 된다면 해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해고가 '부당한' 해고인지, '적법한' 해고인지 노동위원회에 억울한 심경을 성토하고 심판 결과를 기대하는 신청인에게 최근들어 노동위원회는 '인정'(부당해고임)이나 '기각'(부당해고가 아님)이 아닌 '각하' 판정을 빈번하게 내리고 있다.

'각하'란, '심사청구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거나 청구기간을 경과하여 그에 대한 심리를 거절하는 것'이다. 부당해고구제신청에서 각하하는 경우는 '이 사건은 해고사건이 아니다'라거나, '이미 복직이 이루어져 판결의 의미(실익)이 없음'이라고 판단할 경우인데, 이러한 법의 허점을 악용해 해고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사례가 해고 노동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

청소노동자 이성철(가명, 61)씨의 경우 시청에 위탁받은 청소용역업체에 고용되어 도로 청소를 해온 청소 노동자이다. 이 업체는 지자체와 청소용역계약을 한 상태였고 2015년까지 계약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업체는 인력에 대한 계약(1년)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이 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에게 사직서를 강요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성철씨는 사직을 거부했다.

근로조건 후퇴 담긴 계약서 작성 거부... '사직되었음' 통보한 회사

하지만 업체가 요구한 사직서는 실제 사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계약을 위한 것이었다. 업체에서는 사직서와 동시에 계약서를 다시 쓸 것을 요구했지만 기존에 1년 단위로 작성하던 계약서 대신 6개월 계약서를 쓸 것을 요구했고 이성철씨는 이를 근로조건의 후퇴라고 주장하며 계약서 작성을 거부했다. 회사는 이를 이유로 이성철씨가 스스로 근로계약을 거부했다며 '사직되었음'을 통보하였다.

지노위 심판정에서도 회사의 주된 주장은 "회사는 해고한 적이 없다. 스스로 사직한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신청인 입장에서는 사장이 면담 과정에서 그만두라고 종용하고 협박하는 녹취록이나 다른 노동자들과 다른 계약조건을 요구하는 정황 등을 들어 부당노동행위임을 주장하였지만 회사는 이에 맞대응해 '정당한 해고'임을 주장하기보다 '해고가 애초에 성립되지 않음'을 주장하며 부당해고 정황 등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지노위는 '각하-해고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사직을 했음'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노동위원회가 '각하' 판정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하여 원천적으로 부당해고 여부를 다투는 것을 포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 이를 악용한 사업주가 해고의 적법성을 다투기 전에 해고 여부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더 나아가 설령 부당해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사용주는 해당 노동자를 복직시킨 뒤 다시 부당한 근로계약서 체결을 강요하면서 스스로 복직을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성철씨의 사례처럼 기존의 근로계약기간을 단축시키는 계약조건을 강요한다던지, 아니면 낮은 임금조건 등을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는 일이 바로 그러한 사례이다.

근로기준법 3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기존의 근로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이상 개인이 근로기준법을 들먹이며 이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노동위원회에서 본인의 부당한 해고를 다투고자 한다면 ▲ 해고통보를 (서면, 구두로)받기 전에는 반드시 출근을 할 것 ▲ 저하된 근로계약서를 요구하는 경우 '본인은 부당한 근로계약을 거부하는 것이고 근로할 의사는 있다'는 것을 사용주에게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저희는 당신을 해고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사직한 것 아니었나요?"라는 황당한 주장을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태그:#노동위원회, #해고구제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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