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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장항마을 인근의 해안가에서 발견한 죽은 조류 사채. 이곳은 방제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 죽은 조류 사채 남해군 장항마을 인근의 해안가에서 발견한 죽은 조류 사채. 이곳은 방제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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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냄새에 그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을 먹었어요. 기절할 정도로 냄새가 심했어요."

지난 9일 경남 남해군 서면 장항마을에서 만난 주민이 기억을 더듬으며 꺼낸 말입니다. 전남 여수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0일째, 환경운동연합(환경련) 공동조사팀과 함께 피해 지역 상황 점검에 나섰습니다.

앞서 언급한 장항마을에서 만난 주민의 집 인근 해안가에는 기름이 범벅된 방제물품과 해양쓰레기 등이 뒤죽박죽 널려 있었습니다. 갯바위 인근에서 발견한 죽은 조류 사체를 보여주자 그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불쌍해서 어쩝니까. 피해가 정말 심하네.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요 며칠 키우는 닭이 기운이 없어서 혹시 냄새가 지독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여기는 아직 방제작업 안 하는 곳인데..."

오후 5시 20분. 여수를 출발하며, 예상한 피해보다 심각한 상황을 직접 목격하자 공동조사팀 사이에는 긴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찾은 여수시 신덕마을. 사고발생 열흘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기름제거를 위한 갯닦기 작업이 한창이다.
▲ 여수 신덕마을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찾은 여수시 신덕마을. 사고발생 열흘이 지났지만 곳곳에서 기름제거를 위한 갯닦기 작업이 한창이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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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신덕마을, 방제작업 여전

9일 오후 1시 30분께, 피해지역 상황 점검을 위해 첫 번째 목적지 여수시 삼일동 신덕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코끝에 와 닿는 기름 냄새가 먼저 피해 지역이란 것을 짐작케 합니다.

발길을 해안가 방향으로 옮겼습니다. 도로 옆 제방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자 하얀 방제복과 방제장비를 착용해 겨우 눈만 노출한 중년의 남성이 보입니다. 그는 고압세척기를 이용해 제방 방제작업을 했습니다.

맞은 편에서는 방제 장비를 배분하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는 금방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이 해경 직원에게 안전교육 등을 설명 받고 있습니다. 곳곳에 방제작업에 사용한 물품과 유출된 기름에 오염된 것들이 담긴 하얀 포대가 눈에 띕니다. GS칼텍스 로고가 부착된 텐트와 차량, 장비 등도 보입니다.

해안가에는 하얀 방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방제포를 이용해 '갯닦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여러 개의 드럼통이 난로로 활용됐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10일이 지났지만 신덕마을 해안가에는 유출된 기름이 여전합니다.

오후 2시 즈음, 공동조사팀은 또 다른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신덕마을을 떠났습니다. 유조선 우이산호가 충돌사고를 일으킨 GS칼텍스의 원유2부두 인근에 다다르자 파손된 원유 이송관이 보입니다. 해상에는 유출된 기름으로 검게 변한 오일 펜스도 보입니다.

여수환경운동연합 소속 박근호씨는 "유출된 기름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까지 제대로 파악되고 있지 않다. 짐작컨대 현재 발표된 것보다 많은 양의 원유와 나프타(납사)가 유출된 것으로 예상된다. 초동 방제를 실패한 탓에 피해 지역도 커졌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조사팀은 폭 넓은 피해지역과 방제작업 상황 등을 점검하기 위해 경상남도 남해군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방제작업 끝났다고 하더니... 남해군 해안가 일대 기름범벅

 남해군 염해마을은 해경의 ‘방제작업 마지막 단계’라는 발표와 달리 유출된 기름으로 곳곳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 산더미 방제물품 남해군 염해마을은 해경의 ‘방제작업 마지막 단계’라는 발표와 달리 유출된 기름으로 곳곳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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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0분경. 남해군 고현면 화전마을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제방을 따라 방제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피해 정도를 확인했습니다. 해안가가 온통 기름범벅입니다. 비교적 방제작업이 상당히 진행된 여수 신덕마을과 극과 극 상황입니다. 하지만 신덕마을에서 봤던 것과 달리 GS칼텍스 로고가 부착된 물품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 주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서너 명의 주민이 다가와 대답했습니다.

"사고가 난 그날, 기름이 (항구로) 몰려와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이곳(화전마을)은 사고지점과 (해상 거리로) 7km 정도 되는 곳이다. 얼마나 많은 기름이 몰려왔는지 해안이 전부 시커멓게 변했다. 겨울이면 굴 까고 미역해서 먹고 살았는데, 다 오염됐다. 천지가 기름범벅인데 GS칼텍스에서 방제를 하거나 물품을 지원해 주는 것은 없다."

다시 해안가를 따라 이동해 남해군 서면 염해마을의 항구에 차량을 주차했습니다. 항구 한 편에서 한 주민이 경운기에 방제물품을 수거한 하얀 포대를 하역합니다. 언뜻 보아도 상당한 양입니다. 그는 "매일 이 정도는 나온다"며 방제작업이 아직도 초기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인근에서는 해경이 방제작업에 사용한 물품을 담은 포대를 항구에 내려놓고 있습니다. 해경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을 배로 이동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항구 인근 굽이진 갯바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곳곳이 검은 기름으로 뒤범벅이었습니다. 방제작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장비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 하천까지 기름유입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까지 바닷물이 역류해 기름에 오염, 주민들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 하천까지 밀려 온 기름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까지 바닷물이 역류해 기름에 오염, 주민들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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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해마을의 또다른 사고현장을 찾았습니다. 주민들이 하천에 나와 방제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출된 기름이 밀물 때 역류해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하천까지 유입된 것입니다. 콘크리트 하천 둑에 묻은 검은 기름띠가 당시 수위를 가늠할 수 있게 선명하게 그어져 있습니다.

염해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바로 옆 해안가는 자갈 밑으로 기름이 새어 들어 겉보기만 멀쩡하다"고 말합니다. 곧바로 현장으로 차량을 몰았습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5분여 달려 도착한 해변에는 자갈이 가득합니다. 자갈을 한 겹 걷어내자 검게 변한 돌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방제작업이 거의 마직막 단계에 와 있다는 해경의 발표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장소를 옮겨 남해군 서면 장항마을로 향했습니다. 지금껏 거쳐 온 피해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해안가에 유출된 기름이 떠밀려와 검게 변해 있습니다. 기름범벅 된 자갈들을 담아 놓은 드럼통이 해안가에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후 4시 40분께, 장항마을 해안가에는 방제물품만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기름범벅된 해안가에 파도가 밀려오자 바닷물에 유막이 뜹니다.

방제작업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물품들이 해양쓰레기와 함께 해안가에 밀려온 모습도 확인했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조세윤 남해지회 의장은 "해경의 방제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며 "초동 대처에 실패한 해경이 방제작업도 대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5시 30분 즈음,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현장확인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다시 여수로 향합니다. 되돌아오는 길, 해상에 정박해 있는 대형 유조선들이 더 이상 평화롭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여수 GS 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 9일 공동조사팀은 사고가 발생한 부두 인근을 찾아가 보았다.
▲ GS 칼텍스 원유2부두 지난달 31일 여수 GS 칼텍스 원유2부두에서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했다. 9일 공동조사팀은 사고가 발생한 부두 인근을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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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수, #기름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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